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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Jun 26. 2022

홀가분한 삶을 산다는 것

주변을 정돈하는 일은 단지 집안을 정돈하는 일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을 정돈해 가는 일이기도 했다.

하나, 둘 물건을 버리며 연연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이사 오기 전 많은 물건들을 정리했다. 신기하게도 물건을 버리자 불필요한 관계 또한 맺고 싶지 않아 졌다.

이제 중요하지 않은 것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더 이상 나눠주지 않는다. 그러기에 마흔은 참으로 적당한 때였다.

현관문만 열면 지인들로 가득한 동네에서 6년을 보냈다. 하지만 새 보금자리에서는 자발적 고립을 택했다. 우선순위를 ‘나’로 정했기 때문이다.

허겁지겁 물건을 사들이던 취향 없는 살림에 나만의 취향이 묻어나고 기준이 생기듯 인간관계 역시 그렇게 채우고 싶어졌다.


설레지 않는 물건은 버려야 하듯 설레지 않는 만남 역시 버려야 한다.

기분 좋은 만남은 에너지를 얻고 돌아오지만 묘하게 에너지를 빼앗기는 기분이 드는 만남들이 있다. 균형이 무너진 대화는 자존감을 떨어트린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밥을 먹고 무의미한 수다를 떠는 일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만남은 뒤돌아선 후에도 산뜻해야 한다. 끊임없이 나에게 반문하는 지인이 있었다. 나의 사소한 취향이나 육아관에 대해 설명하다 보면 묘하게 기분이 가라앉았다.

나를 나 자체로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만인에 대한 사교성을 지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주는 사람을 만나라”라고 했다. 타인의 시선으로 내 기준이 흔들린다면 온전한 내 길을 갈 수 없어진다.     

단지 오래 만난 인연이기에 지속되는 만남과 필요 없지만 계속 소유하고 있어 내 공간을 어지럽히는 물건은 묘하게 닮아 있다. 모두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한다.

물건을 정리하고 정돈해 관리해야 할 물건을 줄이는 것과, 불필요한 만남을 줄이는 것은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만드는 기반이 된다.

많은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만남 속에서 드는 공허함이 삶을 더 외롭게 한다.

모임에서 너무 많은 말들을 내뱉고 돌아온 밤엔 쉽사리 잠이 오질 않았다.

큰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더 이상 학부모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모임에 나가 공감과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그보다 나의 주관이 흔들리는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주관이 흔들린 엄마는 아이를 흔들어 댄다. 늦게까지 긴 수다가 이어지는 날이면 다음날까지도 머릿속이 개운하지 않았다. 하소연을 하거나 조언을 구하는 일도 결국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아이는 저마다 모두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의 교육도 정답이 될 수 없다.

내 아이에게 맞는 방법은 결국 아이와 내가 함께 찾아야 한다. 내 고민을 나만큼 고민하는 타인은 없다. 사실 나는 언제나 답을 알고 있다. 다만 실행하기까지의 어려움이 있었을 뿐이다.

. 물건들이 뒤엉켜 있는 공간에서 열쇠를 찾는 일은 어렵다. 내 안을 정돈할 때 답이 보인다. 집안을 정돈하고 마음 속을 정돈하면 아이에 관한 고민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다.


진정 필요한 하나를 소유하는 일처럼 소중한 소수와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은  인생을 좀 더 깊이 있게 살게 한다. 즐겁지 않은 모임은 유지하며 정작 사랑하는 엄마와 영화 한 편 볼 시간이 없다면 그것은 우선순위를 잃어버린 삶이다.

좋은 사람들에게 먼저 좋은 사람이 되기로 한다. 정리는 한다는 것은 내 삶의 우선순위를 찾아가는 일이다.

그렇게 가볍고 홀가분 한 삶을 살기 위해 버려야 할 때를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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