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 된 아이가 무언가 뿌듯한 얼굴로 말을 시작할 때가 있다. 마치 어려운 종이접기를 혼자 해냈던 어느 날처럼, 인생에서 무언가를 깨친 아이의 표정에는 나만 알 수 있는 신호 같은 것이 있다.
클수록 그런 일은 줄어들지만 여전히 엄마인 내게 가장 먼저 들려주어 고마운 너의 재잘거림들
“엄마! 내가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는지 알아요? “
“공부해야지 하면 마음이 힘들잖아.
일단 그냥 책상에만 앉자 하고 나한테 명령을 하는 거야.
앉으면 잘했어하고 나한테 칭찬을 하는 거지.
그리고 그다음엔 연필만 들어! 하고 말해
들었으면 또 잘했어하고 칭찬을 해줘.
그리고는 인강 하나만 보자 하고 눌러.
그러면 그때부터는 쭉 공부가 되는 거야.”
침대에 누워 쉬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는 것은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참으로 힘든 일이다. 너는 그 힘겨움을 물리치는 법을 스스로 찾아내었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을 때 해야만 한다는 마음은 무겁고도 무겁다. 그 무거운 마음을 버리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가벼운 주문을 너는 알아낸 것이다.
집안일이 밀려있을 때 대청소를 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하지 않는다. 식탁 위만 치우자. 설거지만 하자. 하고 시작하면 어느새 한 단계 한 단계 진행되는 집안일처럼 인생의 모든 문제들은 하나에서부터 천천히 풀어가는 것이다. 열 가지를 모두 떠올리면 이내 포기하고 싶어 진다.
목적지를 떠올리지 않고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지치지 않는 비법이 된다.
나 역시 너와 같은 방법으로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먼 미래를 떠올리며 불안해하지 않는 일, 오늘 이 순간만이라도 좋은 엄마가 되는 것,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매 순간을 짧은 다짐들로 채워가고 좀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다.
너는 공부를 하지 않을 때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공부할 때 느끼는 안도감. 나도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나는 고등 시절 내내 신경성 복통을 앓았었다. 불안감에서 기인한 통증이었다. 수능이 끝나자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던 통증
내가 최선을 다 했었더라면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겠지.
생각해 보면 언제나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힘든 것이 내게 닥친 더 큰 문제였다.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우리는 움직이고 나아가야 한다.
요즘의 너를 보면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공부라는 것을 해야 하지?라는 그 시절 나의 질문에 답을 찾은 듯도 하다.
단지 대학을 가기 위한 도구가 아닌 인생에 닥친 시련을 이겨내는 첫 번째 훈련이 ‘공부’가 아닌가 싶다.
시련을 견디고 그 안에서 찾아낸 너만의 방법들이 너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니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나는 기꺼이 기뻐해 주리라. 잘 해냈다고 잘 이겨냈다고 꼭 안아주고 다음에 닥칠 너의 미션도 너는 분명 잘 해낼 거라고 너를 믿어줘야지.
하기 싫은 일들을 해내고 그 속에서 성취감과 나름의 즐거움을 찾고, 하고 싶은 것들을 참으며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가는 참으로 귀한 시절이다.
아이를 보며 학창 시절에는 몰랐던 것들을 나는 다시 보고 다시 살아간다. 때론 아이를 걱정하고 때론 아이를 존경하고 때론 아이를 가여워하며 나도 고삼의 시절을 다시 산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어둑어둑한 교문을 빠져나오는 아이들을 보며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작고 작은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 이만큼 자라고 이만큼 감당해주어서 고맙다고……. 잘할 거라고 잘 살아갈 거라고 온 마음으로 너희들의 한걸음 한걸음을, 오늘을 응원한다.
내일은 잠시 잊어도 괜찮다. 순간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