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자 미루고만 싶었던 고3 엄마라는 딱지가 내게로 날아왔다. 언제나 이웃집 아는 언니의 이야기 같았던 그 일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그 일은 생각처럼 멀리에 있지 않았다.
허겁지겁 아이를 키우며 좌충우돌 해왔는데 이제 곧 종착지란다. 나는 아직 내릴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차창밖을 보며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싶었던 시간들은 그저 간이역 몇 개를 지나치고 나니 끝이나 있었다.
아이를 키우며 후회되는 것들은 그때 영어유치원을 보낼걸..... 이런 것들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쉬운 것은 함께 보낸 시간이다. 못다 한 이야기다. 아이는 금세 중학생이 되고 더 빨리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는 주말에도 학원을 다니고 공부를 하느라 눈을 맞출 시간 또한 길지 않다.
어느 때고 함께 바다를 보러 나설 수 있었던 그 많던 날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아이와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하루는 생각보다 너무 짧았다. 그렇게 아이로 하루를 채우던 날에는 몰랐다. 손을 잡고 좀 더 많이 들판으로 나갔어야 했다.
“언제 이렇게 컸니?”라는 말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 자주 맴돌아 입버릇이 되었다. 키가 크는 속도만큼이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분명 곁을 지키고 있었는데 놓친 것들이 너무 많다. 엄마답지 못했던 기억들만 한아름인데 시한부 선고를 받은 기분이다.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정말 얼마 없다. 너를 위한 근사한 위로의 말들을 나는 좀 더 많이 준비해 두었어야 했다.
대학에 가고 직장을 가지고, 사랑을 하게 되면 내가 그랬듯 엄마라는 존재는 네게 점점 더 옅어져 갈 것이다. 엄마의 위로보다는 동료의 위로가, 연인의 위로가 네게는 더 절실해지겠지.
어느 늦은 밤 와인의 취기를 빌린 남편의 말이 떠오른다. 만약 내일 당장 내게 죽는다면 첫 번째로 아쉬운 일은 못다 한 효도가 아닌 아이에게 못다 준 사랑일 거라고…….
그 고백이 나를 꼭 닮아있어서 눈시울이 붉어졌었다.
부모로 산다는 것은 후회로 남을 나 자신과 자주 대면하는 일이다. 그렇게 대면했던 나를 고이 접어 마음에 평생 품고 사는 일이다.
손주들을 보며 너무 예뻐 어쩔 줄을 모르는 노부모의 마음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놓쳐버려 아쉬운 건 젊음이 아닌 짧았던 한때의 사랑이다.
고 3 엄마는 마음이 조급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