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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Nov 22. 2022

새벽밥을 짓다.

오늘도 알람 소리가 울리기 직전에 눈을 떴다. 인간의 뇌란 참 신비하다. 조금 늦잠을 자도 되는 주말조차 평소 일어나던 시간에 일단 눈이 떠진다. 하지만 눈을 뜬다는 것과 몸을 일으킨다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중력이 더 작용한다. 가족의 아침을 위해 가장 먼저 일어난다는 건 20년 가까운 시간의 경험이 쌓여가도 여전히 힘겹다. 그건 겨울로 가까워질수록 더 그렇다. 해님도 더디게 일어나는 어슴푸레한 아침에 홀로 서는 부엌은 쓸쓸하다.

이제는 제법 쌀쌀해진 새벽 기온에 양말까지 챙겨 신고 부엌으로 나가 밥을 짓는다.

아직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이 깨지 않게 최대한 숨죽여 쌀을 씻고 밥을 안친다.

밥을 안쳤다는 말에서는 어쩐지 밥 냄새가 난다. 밥을 한다는 말보다 뜨겁다. “밥 안쳤어. 조금만 기다려! ”이 말을 나는 몇 번쯤 듣고 자랐을까?

압력솥이 인덕션 위에 안착했다. 늦지 않았다.


어제는 오랜만에 우리의 단골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코로나로 최대한 외식을 줄였기에 가끔의 외식은 더욱 설렌다. 그 많은 식당들 중에 단골집이 되는 이유는 한결같은 맛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그 한결같은 맛이 변했다. 메인 음식은 여전히 맛있었지만 밥이 이상했다. 둘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식혜의 밥알 같은 식감이다. 그날 우리는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는데  그 밥 하나로 모든 것의 맛이 떨어진 것이다.

찰지고 고슬고슬했던 단골집의 밥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먹는 내내 우리는 ‘밥’ 이야기를 했다.


생각해보면 밥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밥이 기본이다. 갓 지은 밥은 김치 하나만 얹어 먹어도 맛있다.

요즘은 햅쌀로 더욱 호사를 누리고 있는데 가을이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가을, 겨울 햅쌀은 수분이 많아 평소에 비해 물을 적게 잡아야 질지 않고 맛있다. 오랜 시간 살림을 하면 경험으로 알게 되는 지식들이 있다.

밥맛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품종, 신선도, 도정날짜, 물의 양, 솥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나는 그때 알았다. 나는 밥 부심이 있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조금 비싸도 맛있는 쌀을 산다. 아이들이 엄마 밥이 제일 맛있다는 건 진짜 밥에 있었다는 걸 그 식혜 밥을 먹으며 깨달았다. 엄마의 밥에는 마음이 더해진다.


갓 지은 밥을 밥공기에 담는 아침은 마음속까지 하얀 증기로 데워진다. 가끔 빵도 시리얼도 아침으로 내놓지만 밥을 먹여 보낼 때의 마음만큼 든든하지는 않다. 뜨끈한 소고기 뭇국은 햅쌀밥과 함께 최상의 맛을 낸다. 겨울의 빵은 너무 빨리 식고 시리얼은 차갑다. 11월에는 그래서 밥이 좋다.

 다른 반찬 이도 더할  없이 맛있는  지은 , 그런 밥을 먹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서 밥은 짓는다고 하나보다. 밥이 마음에 들어와 집을 짓는다.

밥이 지어지는 그 집은 온기로 내내 따스하다.



매일을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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