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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Dec 28. 2022

나의 애틋한 좌탁 이야기

우리 집에는 아주 오래된 좌탁하나가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여기서 밥도 먹고 종이접기도 하고 레고를 만들기도 했었다. 지금은 주로 차를 마시거나 과일을 먹는 다과상의 용도로 사용 중인데 이 좌탁은 놀랍게도 내가 어릴 때 쓰던 친정집 식탁이다. 그러니 족히 30년은 넘은 오래된 가구인 것이다.

새 식탁을 구입하며 아버지는 헌 식탁의 다리를 톱으로 잘라 지금의 좌탁으로 만드셨다. 아버지의 지혜로움으로 나는 오랜 추억 속의 식탁을 실물로 지금껏 간직하게 되었다.

자른 단면에는 다이소에서 파는 가구용 바닥보호 부직포를 붙였다.

나는 요즘에도 종종 이 좌탁을 어디서 샀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30년이 넘는 세월 앞에서도 무색한 견고함과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는 뜻 같아 나는 그런 질문들이 무척이나 반갑다. 상판의 들뜸 조차 전혀 없이 요즘 만들어낸 물건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모습이라니 이걸 고른 엄마의 안목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단지 작은 크기였는데 그래서 더욱 좌탁의 용도로 안성맞춤이다.

이 좌탁은 결혼 후 아이를 낳고 우리 집으로 가져왔는데 그 당시 모서리가 둥근 안전한 좌탁은 만나기가 어려웠었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이 식탁이었던 좌탁은 나의 어린 시절과 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고스란히 담게 되었다.

나의 중년을 함께하고 노년 역시 함께하게 되겠지.

여기에 십 년의 세월이 더해진다고 해도 나는 이 좌탁을 버릴 생각이 없다. 아니 이제는 절대 버릴 수 없는 그런 물건이 되어버렸다.


좌탁 앞에 앉으면 어쩐지 마음이 고요해진다. 이 좌탁이 식탁이었을 때의 모습과 그 식탁이 놓여있던 자리를 기억한다. 레이스로 덮개를 만들어 씌운 레트로한 펜던트 등 아래 젊은 부모님의 모습과 어린 나와 동생을 기억한다. 내 아이들의 고사리 손이 바삐 오가던 풍경이 떠오른다.

바쁜 일상 속에 추억으로 가는 열쇠처럼 오래된 가구는 내게 많은 말을 건넨다. 더없이 애틋하다.

비움은 반드시 세월의 순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훌륭한 만듦새를 가진 물건들은 오래도록 곁에 두게 된다. 세월이 쌓이고 손때가 묻어 멋을 더해가고 의미를 더해간다.

새것이 언제나 최상의 물건은 아니다. 오래 쓴다는 것은 결국 환경에도 꽤 괜찮은 일이다. 가구가 그저 소모품일 수 없는 이유다.

물건을 소유하는 일에 연연하지 않지만 물건과의 인연이 결코 가벼울 수는 없다. 나로 인해 존재하는 모든 물건에는 책임감이 따른다. 함부로 버리지 않도록 함부로 사지 않는다.

그렇다면 가구를 구입할 때 가장 고려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격, 소재, 디자인, 쓰임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이 모든 것들이 적정 기준에 들어 통과할 때 비로써 나와 함께할 반려 가구가 된다. 모든 살림살이 중 가구만큼 곁에 오래 머무는 것은 없다. 이처럼 길게는 수십 년을 함께 한다. 단연 가장 큰 덩치인 살림인 가구를 구입한다는 것은 과장을 보태자면 배우자를 고를 때만큼이나 신중해야 한다. (가구의 반품도 배우자의 반품도 매우 어렵다.ㅎ)

절대 시간에 쫓겨 결정하지 말 것.

인터넷을 헤매고 백화점과 가구거리를 헤매 보아도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일단 마음을 접어야 한다. 사야 한다는 압박감을 버리고 여유를 갖는다.

이사시기에 맞춰 소파를 구입한 적이 있다. 백 퍼센트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헌 소파를 버리고 이사하는 것이라 써야 할 시기에 맞춰 서둘러 구입했었다. 하지만 두고두고 조금은 아쉬운 가구가 되었다.

소파 없이 지낸들 별일이 있었을까?

드넓은 거실공간과 바닥생활의 여유를 그저 즐겨보았어도 좋았을 것이다. 조금 더 집의 분위기와 익숙해진 장소를 눈에 담고 골랐다면 나는 훨씬 만족스러운 소파를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오랜 여행으로 집을 비우고 집에 들어설 때 편안한 느낌은 가구에서 온다. 피곤했던 몸과 마음이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녹아내린다. 나의 침대가, 나의 안락의자가 나를 반긴다. 레일이 안정적인 오래된 서랍을 열 때, 그것의 친근한 반복이 좋다.

매일 온 가족이 앉아 밥을 먹고 과일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식탁은 두껍고 튼튼한 원목식탁이 좋다. 유리를 깔아 차가운 소리를 내지 않고 찍히면 찍히는 대로  세월이 묻어나는 원목 그대로의 느낌이 따스하다.

매일 앉는 의자와 플로어 스탠드에서  디자이너의 신념이 느껴진다. 아름다움이 매일의 일상에 녹아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으로 데려왔었다.

대를 물려도 좋은 물건을 소유한다는 것은 쉽게 사라지는 많은 것들 속에서 나를 표현하는 일이다. 나의 집에 오래된 가구가 있다는 것은 나의 안목에 믿음을 쌓아가는 일이다.


치킨을 먹는 날에는 어쩐지 식탁이 아닌 오래된 좌탁에 둘러앉아 먹고 싶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눈빛으로 통했다. 견고한 추억이 탁자 위에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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