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예법에서는
모자라는 것보다 넘쳐나는 것을 경계했다.
조상님들은 너무 내 스타일이다 싶은 문장이었다. 명절마다 어김없이 나오는 뉴스는 바로 ‘차례상 간소화’
하지만 이 뉴스로 인해 간소화된 차례상을 차리게 된 집이 과연 몇 집이나 있을까?
나이 듦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틀린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일이다. 나 역시 가장 부끄러운 것은 아이들에게 잘못된 말과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과하지 못하는 내 마음이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를 위해 해야만 하는 성장통 같은 것이다. 틀린 것을 바로 잡는 것은 옳은 일이다.
설과 추석에 우리가 지내는 차례란 조상에게 예(禮)를 올리는 간단한 의식을 말한다. 유학자의 예법을 정리한 ‘주자가례’에 따르면 차례란 말 그대로 차를 올려 조상에게 명절이 왔음을 알리는 것으로 술, 과일, 차 한 잔만을 올려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차례상에 제사상을 당연한 듯 올리고 있다.
제사란 기일을 맞은 조상의 영혼을 기리고 달래는 추모의례로 분명 그 뜻과 형식이 다르다.
차례상이 이처럼 제사상화 된 것은 과시욕 때문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인데, 이제 음식으로 신분을 과시하던 시절에 살고 있지 않음에도 이어져 내려오는 악습인 것이다.
성균관에 따르면 원래 유교에서의 ‘예’는 정성과 마음이 있으면 되는 것으로 ‘홍동백서’나 ‘조율이시’는 문헌에 없는 표현이라고 한다. 기름에 튀기거나 지진 음식을 차례상에 꼭 올리지 않아도 된다.
종일 기름과 사투를 벌이며 두통을 앓을 만큼 씨름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애써 만들었지만 데우고 데운 전을 말라서 맛이 없다. 명절마다 겪었던 요통은 필수가 아니었다. 요통으로 인해 가장 중요한 정성과 마음은 퇴색되어 간다.
명절이라면 부담감부터 드니 이런 마음을 과연 조상님들이 바랐을까?
전통 제례에서 남자들이 장을 본다 따위의 남녀의 논쟁을 떠나 예를 올리는 일이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장바구니 물가가 올라 올 차례상 액수는 더욱 올라갈 것이라고 한다.
한국국학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일반 가정 차례 음식이 옛 문헌과 종가보다 평균 5~6배는 많다고 한다.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한 메뉴가 대부분이다.
차례가 차례상 다워진다면 어떨까?
차례상은 간소하게 차리고 가족이 먹을 음식은 각자가 잘하는 음식을 준비해 간다거나(포틀럭 파티처럼) 간단하게 월남쌈이나 샤부샤부도 좋겠다. 바빠서 오지 못하는 가족에게도 우리는 훨씬 너그러워질 것이다.
명절 증후군이란 말이 만들어 지기를 조상님들은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절대 넘치지 말라고 했다. 넘치는 것을 경계했던 조상님들의 지혜는 바로 이런 마음을 내다본 천리안이 아니었을까?
미니멀하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부담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누구에게도 과시하지 않고 본질에 충실하겠다는 말이다.
우리는 과거부터 꽤 미니멀한 민족이었다. 미니멀 라이프라는 말이 생기기 몇백 년 전부터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