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제철 채소
아직은 바람이 차지만 하루하루 부드러워지는 바람이 봄이 오는 중이라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부드러워진 바람에도 3월을 앞둔 내 마음은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아이들의 새로운 시작을 지켜보는 건 늘 말하지 못하는 긴장감을 품고 있다. 3월 증후군은 2월 마지막주에 찾아온다. 괜히 새벽녘이면 뒤척인다. 이른 기상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부담감과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 복합되어 잠이 깬다.
“계속 방학이면 좋겠어”라고 말하니 남편이 무슨 소리냐며 정색을 한다. 삼시 세끼의 노동은 고단하지만 나는 역시 아이들이 복닥이는 집이 좋다. 언제까지 이렇게 복닥이는 방학을 우리가 함께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늦잠을 자면 나는 아이들의 단잠이 아까워서 그냥 두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며 늘 깨우기 전에 일어났고, 지각 한 번 하지 않으며 엄마의 여유만만한 양육태도가 악영향을 조금도 미치지 못했음을 고맙게도 증명해 주었다.
늦장을 부릴 수 있는 합법적인 나이는 고작 일곱 살까지였다.
나의 3월 증후군은 3월 2일을 기점으로 완벽하게 사라진다. 아이들이 돌아와 들려주는 하루 일과를 들으며 안도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이내 익숙해지며 평온함과 행복감을 느낀다.
“아이들은 역시 나가야 해!”라며 급 반전한 마음으로 봄을 만끽할 준비를 한다.
그래봐야 봄맞이 대청소나 장보기지만…….
가뿐한 마음으로 산책을 하고 마트에 들러 양배추 한 통을 담는다. 이리저리 모양과 무게를 가늠해 보며 진지하게 최상의 양배추를 찾는다. 양배추는 납작한 것보다는 둥근 것, 들었을 때 묵직하고 단단한 것, 겉면이 연한 녹색인 것이 상품(上品)이다.
양배추는 3월이 제철이다. 양배추 앞에 ‘봄’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양배추는 단맛을 뽐낸다.
“봄 양배추는 생식이 최고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단맛이 난다.”는 영화 속 혜원의 대사처럼 3월의 양배추는 생으로도 충분히 맛있다. 아삭한 양배추를 착착 썰어 찬물에 담가 여러 번 헹궈내고 수북이 올린 쫄면도, 입이 터질 듯 양배추를 가득 넣은 샌드위치도 봄에 가장 맛있다.
그저 맛만 좋은 것이 아니다. 봄 양배추는 다른 계절에 수확된 양배추보다 비타민과 칼슘 등의 영양분이 더 많이 들어있다.
흔히 양배추를 농약을 많이 하는 작물로 알고 꺼리는 경우가 있는데 양배추는 초기성장 때 농약을 치고 가운데 부분에 둥글게 결구가 생기면 농약을 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마트에서 만나는 연한 빛의 양배추는 초기의 초록잎을 모두 제거한 양배추 결구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겉잎을 제거하고 물에 잘 씻으면 잔류해 있던 수용성인 농약은 제거된다. 썬 양배추를 찬물에 잠시 담가두면 농약 제거는 물론 아삭한 식감까지 챙길 수 있다.
양배추의 가장 뛰어난 능력은 염증을 줄이는 능력이다.
양배추에는 해로운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수많은 산화방지제가 들어있다. 이는 암 예방, 항당뇨병, 항암, 비만예방 효과를 가지고 있다. 나는 영양제 보다 제철의 식재료가 훨씬 믿음직스럽다.
그렇게 믿음직스러운 동그란 봄을 담아 들고 오는 길,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고민보다 오늘 하루를 건강하게 채워갈 궁리를 하는 것이 백번 나은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잘 해내는 것
양배추가 봄에 충실했듯
올해도 우리는 계절마다 잘 먹고 잘해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