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은 신학기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그런데 이 무렵 학교마다 나타나는 씁쓸한 풍경이 있다. 연배가 어느 정도 되는 교사들이 교장, 교감과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피해 다니는 것이다. 질책이라도 받을까봐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럴 짬도 아니고. 눈 잘못 마주치면 부장교사 맡아 달라는 말 들을까봐 그러는 것이다. 나도 제발 맡아달라는 교감의 읍소에 시달리다 결국 연구부장을 맡아 몇년 고생한 기억이 있다.
읍소 할 때는 “제발, 올 한 해만 고생 해주세요.” 라고 하지만 일단 자리를 맡으면 그 ‘부장’딱지는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교무, 연구, 생활지도 삼대 부장 딱지는 전근을 가서도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참임계를 내면 새 학교 교장, 교감의 첫마디가 “전임교에서** 부장 하셨네요? 우리학교에서도 부탁 드립니다…..” 이런 계통인 경우가 많다. 나도자율연수휴직을 쓰고서야 간신히 연구부장 딱지를 털었다.
학교 밖 사람들은 쉽게 이해가 안 갈 수 있다. 그래도 평교사 보다는 부장교사가 더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TV드라마나 연극에서도 의욕있고 혁신적인 교사를 가로막는 기존 체제를 상징하는 인물로 교장, 교감, 그리고 부장교사가 등장한다. 대개 교장, 교감보다 부장교사가 더 갑질이 심하게 묘사된다. “나도 젊을 땐 김선생처럼 의협심 넘친 적 있었어. 그래도 성질 죽이고 이렇게 부장교사까지 된거야.” 이런 얼토당토 않는 대사가 나오는 연극도 있었다. 아무래도 위계서열이 생활화된 K문화답게 기간제교사-평교사-부장교사 이렇게 급나누기를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30년 전, ‘라떼는~’ 정말로 그랬다. 그 때는 부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주임이라고 불렀다. ‘학주’의 어원인 바로 그 주임이다. 당시 주임교사의 위세는 지금 부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대단했다. 그 중 기억나는 대로 몇 개만 꼽아봐도 이렇다.
수업 시수가 현저히 적었다. 평교사와 주임교사의 주당 수업 시수는 적게는 3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 까지 차이가 났다. 동 교과에 22시간~24시간씩 수업하는 교사가 있어도 주임교사는 12~15시간 정도의 시수를 당연한 권리처럼 주장했다. 젊은 교사가 22시간씩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데 같은 교과의 주임교사가 16시간 정도 수업을 하면 엄청나게 인심 쓴 것 처럼 행세했다. 24시간 안 시킨 걸 고맙게 생각하라는 식이었다.
주번이 면제되었다. 주번이란 것이 뭐냐 하면, 교사 두 사람씩 조를 짜서 돌아가며 1주일 간 학교 청소 등등을 감독하고 퇴근도 늦게 하고, 온갖 점검일지 작성하고 토요일에도 오후까지 남아 당직 근무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주임은 ‘예우차원에서’ 주번에서 제외되었다.
CA(지금의 동아리)반 담당도 면제되었다. 아마 50대 이하 선생님들은 “말도 안돼!” 그러겠지만 정말이다.
시험 감독도 평교사의 절반만 돌렸다.
수업 지도안 제출도 면제되었다. 수업연구는 당연히 면제되었다. 그 밖에도 이런 저런 귀찮은 일은 거의 다 열외로 빠졌다.
물론 경력이 많고 그만한 경험과 업적을 쌓은 베테랑 교사를 예우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주임교사라는 것이 베테랑 교사에 대한 예우 따위와는 아무 상관 없다는 것이다. 주임교사는 교사가 이런 저런 교육 경험과 능력을 인정받아 승급한 것이 아니다. 다만 “보직교사를 두어 교무(학교의 이런 저런 행정사무)를 담당하게 할 수 있다.” 라는 법령에 의해 부여되는 보직일 뿐이다. 보직교사는 교사는 원래 교육만 담당해야 하는데, 이런 저런 학교일을 교장, 교감과 직원이 다 감당하기 힘드니 몇몇 교사에게 분담 시키는 근거로 만들어진 것이다. 교사 위에 주임이 있는 게 아니라 교장, 교감, 직원의 일부 분담해서 주임인 것이며,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임이 되기 위한 절차나 자격조건 따위도 없고, 그냥 교장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주임교사들이 휘두른 권위주의는 대단했다. 그 명칭이 부장(이하 부장이라 칭하겠다)으로 바뀐 다음에는 더했다. 1997년의 일로 기억되는데, 당시 어느 교사가 교무부장에게 “같은 교사끼리 잘 지내야 하지 않겠냐?” 라는 취지의 말을 하자 화를 벌컥 내며 “버르장머리 없이 나하고 당신이 어떻게 같은 교사냐?” 소리지르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부장교사가 다른 교사들을 ‘평교사’라 부르며 하대할 수 있었던 권위의 근거는 수업을 잘하는 것도, 학생 지도를 잘하는 것도 아닌, 이런 저런 학교 행정사무를 담당한다는 것이었다. 행정은 중요하고 교육은 다음이다. 행정일을 하는 사람은 높고, 교육을 하는 사람은 그 부하다. 심지어 당시 부장교사들은 그 행정 사무조차 직접 담당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행정업무를 각 부서에 배치된 교사들에게 조각조각 잘라서 맡기고 본인은 총괄만 했다. 아니 그 총괄마저 각부의 ‘기획’들이 했고 부장은 그냥 도장만 찍었다. 교사가 학년이나 교과가 아니라 각 행정업무 중심의 부서에 소속되어 아무 근거도 없이 행정업무를 ‘업무분장’이라는 명목으로 할당받는 악습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결국 부장교사란 교육부, 교육청에서 각 학교에 던지는 각종 사업들이 빈틈없이 수행되도록 관리감독하는 십장에 가깝다. 시니컬하게 표현하면 교사가 교육 따위에 한눈 팔지 않고 행정 업무에 충실하도록 부추기는 역할이다. 이렇게 특별히 우대받아야 할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토록 많은 혜택을 누린 까닭은 그들이 교장, 교감 등 행정직의 일을 대신해 주기 때문이었다. 부장교사들이 교사들을 닥달해서 행정업무를 열심히 많이 하게 할수록 교장, 교감은 학교 생활이 안락하고 한가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교장은 부장교사들에게 특혜를 부여할 수 밖에 없고, 그 특혜는 법적인 근거가 없다보니 결국 평교사의 수업 시수 폭탄, 업무 폭탄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과 정 반대로 ‘라떼는’ 부장교사가 전근 갈 때 부장 자리를 미리 확보할 수 있는 학교를 골라서 갔다.
요즘에는 이런 저런 근거 없는 특혜는 거의 사라졌다. 특히 전교조가 합법화되면서 교사들에게 던져졌던 부당한 업무나 관행이 많이 폐지되면서 열외시킬 거리 자체가 줄었고, 부장교사와 평교사의 시수 차별도 사실상 폐지되었다. 학교마다 교사 수가 크게 줄어 부장교사가 소위 부원들에게 업무를 뿌리고 총괄만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부장교사가 평교사와 별로 차이 안나는 수업시수를 담당하면서 온갖 행정 업무도 직접 담당해야 한다.
사람은 합리적인 존재이니 이런 자리를 기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부장교사 기피 현상은 그 동안 누적되어 온 우리 학교의 비정상적인 상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신호에 가깝다. 그러니 부장교사 기피를 문제삼는 대신 부장교사라는 명목으로 부과된 온갖 교육 외적인 업무들의 폐지를 먼저 거론해야 한다. 교사는 모두 수업에 전념하도록 하고 부장교사는 행정업무가 아니라 교과와 학년의 교육을 총괄하도록 해야 한다. 업무는 교장, 교감, 직원이 모두 담당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정 힘들면 담당 직원을 충원하고, 그게 어려우면 행정혁신을 하던가 업무를 폐지 하던가 할 일이다. 물론 오직 교육에만 삶을 바친 베테랑 교사를 예우할 수 있는 체계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보상은 ‘교육자’로서 존경받고 기여할 수 있게 할 일이지, ‘행정업무’를 담당하거나 지시하는 위치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