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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Feb 19. 2022

재벌 체제의 표본, 현대차 그룹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외국인들에게 저평가되는 이유로 비정상적인 지배구조, 간단히 말해 편법과 양아치짓을 통해 오너가 아닌 사람들이 오너 행세를 하며 진짜 주인인 주주들의 이익을 손상시키는 재벌체제를 꼽는다. 그래서 우리나라 재벌그룹의 비정상적인 지분구조의 가장 생생한 사례라 할 수 있는 현대차그룹의 뚜껑을 열어본다. 이 글은 어느정도 경제 상식이 있는 분들은 뻔히 아는 내용이니 굳이 읽을 필요 없고, 이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주린이들을 위한 글이다. 


요즘 오너 일가들의 양아치 짓 때문에 주식시장이 엉망이다. 그런데 현대차 그룹은 양아치 짓을 안한게 아니라 미수에 그쳤기 때문에 지분구조가 거의 개판 그대로다. 말하자면 재벌 시스템의 원형이 잘 보존된 셈이다 . 여기에 비하면 이미 양아치 짓을 완료한 삼성이나 슼 의 지배구조는 굉장히 쉬운 편이다.


오해하지 말자. 현대차 그룹 혹은 정씨 일가가 특별히 더 나쁜 기업, 나쁜 재벌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양아치짓을 기어코 관철시킨 삼성, 엘지, 슼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재벌 체제의 원형이 잘 보존된 일종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다른 약아빠진 재벌들은 이미 무늬만 지주회사로 분칠하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현대는 좀 우직하다.


재벌 체제가 왜 문제일까? 문어발 확장? 소수에 자본이 집중? 그런게 아니다. 도대체 이 회사의 주인이 누구이며 임직원은 누구에게 책임을 져야 하느냐가 모호해지고 왜곡된다는 것이다. 임직원은 당연히 주주 앞에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이 해괴망측한 지배구조에서는 임직원이 90% 이상을 가진 주대신 10%도 안되는 지분을 가진 특정 인물에게 책임을 지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회사는 손해를 봐도 특정 인물, 특정 가문의 이익이 된다면 그쪽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그러니 이런 회사가 시장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을 리 없다. 여기에 귀족노조는 덤이다. 


그럼 현대차 그룹의 내부를 한번 살펴보자.  현대차그룹의 핵심 계열사는 당연히 현대차(45조)와 기아차(33조)다. 이 가치는 어림값이며 조만간 이 보다 더 올라갈(올라가야 ㅠㅠ)것이다. 그래서 합쳐 대략 80조라고 하자. 80조의 기업의 오너 행세를 하려면 얼마나 가지고 있어야 할까? 아무리 못해도 10조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과연 정씨 부자는 그 정도로 부자일까?


우선 현대차의 지분구조를 보자.


현대차(45조)

현대모비스: 21.43%

국민연금: 8.89%

정몽구: 5.33%

정의선: 2.62%


일단 현대차의 주인은 정몽구도 정의선도 아니다. 현대차의 주인은 현대 모비스다. 현대 모비스가 겨우 8% 주인인 정씨 일가와 합쳐 30%의 지분율로 현대차를 지배한다. 그러면 정씨 부자는 현대 모비스의 주인일까? 모비스 역시 시가총액이 21조, 잘나갈때는 30조 정도 되는 기업이었으니, 정씨부자가 현대 모비스의 오너라면 현대차 오너라 불릴만한 자격이 있다. 


현대모비스(21조)

기아차: 17.86%

국민연금: 11.45%

정몽구: 7.13%

정의선: 0.32%

현대제철: 5.79%


어? 모비스의 주인 역시 정씨부자가 아니다. 모비스의 주인은 기아차다. 하긴 기아 농구팀이 지금 모비스 팀이기도 하다. 정몽구는 겨우 7%만 가지고 있고, 여기에 현대제철 5%을 보태 30%의 지분율로 모비스를 지배한다. 슬슬 좀 아리송해지기 시작한다. 

좋다. 그러면 기아차의 주인은 누구일까? 만약 정씨가 기아차의 오너라면  모비스의 오너 자격이 있고, 그래서 쓰리쿠션으로 현대차 오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기아차(33조)

현대차: 33.88%

국민연금: 8.46%

정의선: 1.74%


어허, 장난하나? 기아차의 주인은 정씨가 아니라 현대차다.  심지어 정의선은 기아차에 1.74%의 지분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아니, 그럼 모비스 주인도 아니고 기아차의 주인도 아닌 정씨 부자가 어떻게 현대차와 기아차의 오너라는 소리를 듣는단 말인가? 여기서 현대제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제철은 모비스의 대주주이기 때문에 정몽구, 정의선, 기아차, 현대제철이 연합하면 모비스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고, 모비스는 현대차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현대차는 기아차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기아차는 다시 모비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렇게 굴러간다. 이러면서 정씨 부자의 영향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무슨 등비수열 수렴하는 과정 같다.


그럼 그 현대제철은 누구 것일까?


현대제철(5.3조)

기아 17.27%

정몽구 11.87%

국민연금 7.98%

현대차 6.87%


정씨 부자는 현대제철의 오너마저 아니다. 그나마 정씨 지분이 높은 편에 속하는 회사이긴 하지만 현대제철의 주인 역시 기아차다. 현대제철이 모비스에 힘을 쓰고, 모비스가 현대차에 힘을 쓰고, 현대차가 기아차에 힘을 쓰는데 기아차가 다시 현대제철에 힘을 발휘하고 있다. 머리 아프다. 정말 보통 잔머리 아니면 재벌 해 먹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현대차 그룹에서 정씨 부자가 찐으로 차지하고 있는 계열사는 정녕 없단 말인가? 하나 있기는 하다. 그게 바로 물류회사인 현대 글로비스다. 


현대글로비스(6.5조)

정의선: 23.29%

국민연금: 10%

정몽구: 6.71%

현대차: 4.88%

정몽구재단: 4.46%


드디어 정씨 부자, 특히 정의선이 오너인 회사가 나왔다. 그런데 현대 글로비스는 현대차 그룹의 다른 주요 계열사 어디의 오너도 대주주도 아니다. 정의선은 현대차, 기아차의 오너가 아니라 그냥 현대글로비스의 오너인 셈이다. 그렇다고 정의선이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기아차, 현대차 이사회에서 스카웃 한 전문경영자인것도 아니다. 


이제 정의선의 지분을 계산해 보자. 글로비스 24% 지분이니 대략 1조 5천억, 현대차 지분 1조, 기아차, 모비스 등 1조정도니 넉넉 잡아 3조가 안된다. 그런데 100조가 넘는 현대차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심지어 정의선이 가장 많은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현대글로비스는 그룹 핵심계열사인 현대차, 기아차 지분을 거의 가지지 않았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정의선이 왜 현대차 오너지? 정몽구의 아들이라서? 정몽구 역시 5조 정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글로비스를 뺀 정씨 부자의 지분은 6조 내외일 것이다. 국민연금 보다도 몫이 적은 셈이다. 나머지는 죄다 계열사들이 서로 꼬리물기 하고 있는 지분이다. 


오호 그렇다면 현대차 그룹의 주인은 국민연금인가? 즉 국민인가? 국민이 현대차 그룹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생산수단의 공동소유, 사회주의 강성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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