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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Feb 28. 2022

균형외교로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인조와 호란의 경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며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서방에 기대려다 전쟁을 자초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이른바 민주진보 쪽에서 자주 나온다. 우크라이나를 생각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해지는 상황에서 대놓고 중국편을 들수 없으니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미국편도 중국편도 들지말고 중립을 지키며 실리를 추구하자며 듣기 좋은 말을 한다. 물론 궤변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미국과 동맹인데 중립을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중국쪽으로 한참 치우친 발상이다. 그런데 그들이 자주 예로 드는 것이 병자호란이다. 광해군은 명과 청 사이에서 균형외교, 즉 등거리 외교로 영리하게 처신하여 전쟁을 막았는데 인조가 그만 명나라 편을 들어 청의 침공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역사에 가정을 집어넣는 것은 위험하지만, 그래도 만약 광해군이 계속 보위를 지키고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정말 명과 청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며 전쟁을 피해갈 수 있었을까? 아마 광해군 스스로 그리 믿지 않았을 것이다. 광해군이 어려운 국제정세 속에서 나라의 살길을 고민하던 군주였다는 환상도 그만 버리는게 좋다. 그런 군주가 신하들은 그렇게 많이 숙청하나? 하여간 그건 다른 주제고. 


물론 명과 청이 계속 대립만 하는 상황이라면 사이에서 솥발의 형세를 이루는 등거리 외교도 나름 의미 있다. 하지만 명은 청을 용납하지 않고 청은 중원을 집어삼킬 목표가 있는 상황이다. 청이 만리장성 넘어 중국의 정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한 지정학적으로 만주의 배후인 한반도는 반드시 평정해야 하는 곳이 된다. 따라서 청의 중원 정벌 계획이 무르익으면 반드시 최후 통첩이 오게 되어 있다. 명과 관계를 끊고 청에게 복속하라는. 이 최후통첩이 왔을 때 광해군이 과연 실리를 위해 명을 버리고 청을 선택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균형외교, 등거리외교로는 절대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잠시 침략을 유예시킬 뿐이다. 청은 조선이 확실하게 자기편이라고 대답하지 않는 한 군사적인 방법으로 배후를 안정시키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또 흔히 떠드는 것 처럼 인조가 균형자 외교를 포기하고 재조지은의 은혜를 갚는다는 명분 때문에 명과 손을 잡아 전쟁을 자초한 것도 아니다. 물론 반청친명이 인조반정의 명분이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명분이고 반정 3년이 지나 정권이 안정된 다음에는 슬슬 청(당시 후금)에도 빨대를 꽂고 간을 보고 있었다. 심지어 요즘 마치 수구보수의 본류 취급을 받는 서인들조차 송과 금을 동시에 섬긴 고려의 사례를 들며 이를 정당화 했다. 인조가 균형외교 대신 친명으로 노선을 변경한 것은 명분 때문이 아니라 명나라의 명장 원숭환이 영원성에서 청(후금)을 격파했기 때문이다. 뽀록으로 청나라를 한 번 이긴 수준이 아니었다. 청태조 누르하치를 격파하고 그 뒤를 이은 청태종 홍타이지도 격파했다. 그것도 그냥 격파한 것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격파했다. 누르하치는 영원성 패전 이후 활력을 잃고 시름시름 앓다 죽어버렸고, 홍타이지는 거의 혼이 나갈 정도로 우왕좌왕하다 간신히 퇴각할 정도로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누르하치, 홍타이지가 어떤 인물인지 감안한다면 보통 승전이 아니다. 홍타이지 스스로 자신이 원숭환의 방어선을 뚫지 못할 것임을 인정했다. 그러니 당시 상황에서 균형외교를 버리고 명나라에 줄을 댄 것이 그렇게 잘못된 선택이 아니다. "명나라는 지는해인가?" 그랬다가 "어, 아직 살아있네? 역시 오랑캐는 안되는구나" 대충 이러는 분위기였다. 물론 나중에 원숭환이 모함을 받아 억울하게 멸문지화를 당하고 명나라가 자멸 테크를 타지만 누가 그것까지 어떻게 예상했겠는가? 그건 그냥 결과론일 뿐이다. 당시 명나라는 절대 지는 해로 보이지 않았다.


물론 명나라에 줄을 대면 청나라의 침공은 필연적 결과다. 그리고 예상과 달리 인조는 여기에 대해서도 철저히 준비했다. 북방 유목민족이 성과 요새를 우회하여 기병으로 빠르게 도성으로 진격하는 말하자면 전격전을 구사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여기 대응하는 신속대응군까지 편성해 두었다. 이 부대는 임진왜란 실전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군사 1만2천명으로 이루어진 최정예 부대였다. 문제는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서북면에 이런 대규모 정예부대를 보내는 것이 몹시 껄끄럽다는 것이다. 만약 이 부대가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조선은 바로 멸망각이다. 그러니 인조는 이 부대를 자신의 최측근인 이괄에게 맡겼다. 이괄은 인조가 왕위를 탈취하던 인조반정때 실질적인 지휘관 역할을 한 사람으로, 한성부판윤(요즘으로 치면 서울시장), 좌포도대장(요즘으로 치면 검찰총장+경찰청장)을 맡길 정도(이 자리들은 도성에서 병력을 거느리는 자리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왕을 확 이럴 수 있는 민감한 자리들이다)니 인조의 심복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하필 그 이괄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이 ‘이괄의 난’이 얼마나 엄청난 사건이냐 하면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라 역사상 반란군이 제대로 도성을 함락시킨 사례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외에(음, 이건 승자의 기록이라 반란으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것이 유일할 정도다. 이괄 부대가 평안도 안주에서부터 한양까지 수백리 길을 강행군 한 기록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험한 길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군했다. 더구나 교묘한 기동으로 관군들의 동선을 흐트러뜨려 결집을 방해한 뒤 각개격파하고 돌파하는 모습을 보면 부대도 정예부대이며 이괄도 인조가 총애할만한 탁월한 지휘관이다. 반란만 안 일으켰으면 말이다.

이렇게 강력한 반란군을 진압 하려면 또 얼마나 많은 병력이 소모 되었을까? 가장 강력한 부대는 반란군이 되어 버렸고, 남은 부대중 그나마 제대로 된 병력은 반란군을 막기 위해 소모하는 최악의 상황이 바로 마탄전투다. 여기서 관군은 이괄의 반란군에게 참패하고 장수들도 무수히 참살 당했다. 임진왜란으로 단련된 정예 병력(요즘 말로 하면 노련한 상사나 원사들)이 이렇게 서로를 녹였다(이순신 장군의 아들도 이때 전사했다). 그나마 정충신의 활약으로 이괄의 난을 진압하기는 했지만 - 그 정충신마저 이괄의 친구였기 때문에 처형당할 뻔 했다- 이미 조선에는 제대로 된 병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7년간의 임진왜란의 성과인 실전경험 풍부한 직업군인들이 이렇게 아군끼리 싸우다 다 날아가버리고, 그 동안의 노하우로 구축한 신속동원 체제가 빈 깡통이 되어 버렸으니 정말 허무하다 못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이로써 조선은 청과 접경 지대를 지키는 병력이 사실상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더구나 이괄의 잔당은 청에 귀순하였다. 청을 막자고 키운 부대가 반란을 일으키고, 결국 그 일부가 청의 군대가 되어버린 기막힌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특전사가 반란을 일으켜 서울이 일시 함락되고, 그래서 일반병을 갈아 넣어서 어찌어찌 간신히 진압은 하지만 막대한 병력을 손실하고, 패퇴한 특전사 잔존병력은 월북해 버렸다 그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청(후금이지만 이하 청으로 통칭)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기회를 놓칠리 없다. 그래서 일어난 전쟁이 정묘호란이며, 병자호란이다. 


영화 ‘남한산성’을 보면서 “도대체 조선은 변변한 병력도 없이 저렇게 한심 하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사실 경험많고 유능한 장군들은 남아 있었다. 다만 그들이 지휘할 군사가 없었다(영화에서 이 점도 잘 묘사되었다). 이괄의 난이 진압된 뒤 이괄을 대신하여 관서군을 이끌고 청을 막으라는 어명을 받은 정충신, 남이흥은 인조 앞에서 대놓고 “아니 고작 이런 병력으로 청을 어떻게 막습니까?” 하며 대들었다. 인조는 “장수가 훌륭하면 군사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며 넘어갔지만 정충신은 “쳇 장수탓 하지 마쇼. 내가 군사 10만만 있으면 청나라도 정복한다고요.”라고 불경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인조도 터무니 없이 적은 병력만 남은 현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불경한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모피, 비단등을 주어 달랬다고 한다. 훗날 남이흥은 정묘호란때 분투하다 “군사도 변변히 없이 이게 뭔 개죽음이야!”라고 너무 억울해 하며 순국하고 말았다. 이 분은 나중에 영화나 드라마 만들었으면 한다. 쾌활하고 재치있고 임기응변이 능하면서 시원시원한 맹장이다.  아 정충신도 영화감이다. 정충신은 심지어 외모도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래서 권율과 이항복이 사랑(어허! 쿨럭)


어쨌든 균형외교에 대한 환상은 깨자. 조선이 청의 침략을 받은 까닭은 균형외교 대신 명에게 줄을 댄 것 때문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부대들을 내전으로 날려먹었기 때문이다. 이괄과 정충신이 서로 싸우는 대신 굳건하게 관서군을 이끌고 있던 시절에는 조선이 아무리 친명반청을 내세워도 홍타이지가 전면전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원숭환을 등 뒤에 두고 만만치 않은 조선을 공격한다? 인구가 적은 유목국가가 이런 짓은 못한다. 그랬다간 거란 멸망 시즌 2 찍는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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