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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교사 Feb 28. 2022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

냉정한 국제사회에서 미국 활용법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야만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비난이 전세계적으로 거센가운데 간혹 우리나라 진보진영에서는 도리어 미국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세계의 경찰이라더니 왜 모른척 하냐? 왜 무기 구입만 도와주고 정작 군대를 보내 러시아와 싸우지 않느냐?” 이런 소리. “역시 미국만 믿고 있으면 안 되는 거야.” 이런 소리. 


1980년 5.18 광주 학살때 전두환을 토벌하지 않았다고 미국 문화원에 불을 지른 것 만큼이나 어이없는 소리다.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라고 자처한 적도 없고 될 수도 없다. 미국이 여러 국제분쟁에 자주 개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부분은 자기나라 핵심 이익이나 안보와 관계되었기 때문이지 정의니 뭐니 때문이 아니다. 


경찰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경찰은 Policeman의 번역이다. 굳이 남성형 명사를 쓰지 않고 그냥 Police라고 하는 추세이긴 하다. 그 어원이 그리스의 국가 혹은 정치공동체를 뜻하는 Polis가 어원이기 때문에 유럽어권에서는 경찰을 뜻하는 단어가 다 비슷하다. 프랑스에서도 Police, 독일에서는 Polizei, 이탈리아에서는 Polizia, 스웨덴에서는 원어를 살려 Polis 등. 즉 경찰은 나라일을 하는 사람, 한 마디로 공무원이다. 사실 존 로크 등 근대 민주정치의 창시자들은 정부가 곧 경찰인 국가를 꿈꾸었다. 대부분의 일을 시민들의 자율에 맡기고 정부는 간혹 사회계약을 위반하는 범법자나 처벌하고, 분쟁이나 중재하면 족하다는 것이다.


이제 국제사회로 눈을 돌려보자. 각 나라들이 시민, 지구가 나라라 치자. 그렇다면 여기도 사회계약이 있을 것인데 각종 조약이나 협정이다. 문제는 안 지키는 나라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국제연합(UN)이 명실상부 세계 정부가 되고, 여기에 세계 어느 나라 정부에도 속하지 않는 강력한 군대를 늘 준비해 두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가 깽판을 칠때 가서 혼을 내줄 정도로 강력하면서도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군대라니? 지구방위군? 만약 그 군대를 통솔하는 사람이 도리어 세계정복에 나서면? 그래서 UN에는 상비군이 없고 필요할 때 회원국들이 병력을 갹출하여 평화유지군을 편성한다. 물론 그 조차도 상임이사국 다섯 나라의 만장일치가 있을 때 일이고. 

한 마디로 ‘세계 경찰’이나 ‘세계 정부군’은 존재하지 않고 존재 할 수도 없다. 


문제는 홉스가 말했듯이 무력으로 범법자를 제압할 수 없는 정부는 정부가 아니며, 그 법은 법이 아니다. 정부가 범법자를 제압할 수 없는 곳에서는 누구도 혼자서는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에 같은 편을 긁어 모아 자경단을 만들어야 한다. 이게 국제 사회에서는 국가들 간의 각종 다자간방위조약을 통한 집단방위기구로 나타난다. 다자간 방위조약은 그것을 체결한 나라들 중 어느 한 나라라도 공격받으면 집단 전체에 대한 도발로 간주하기 때문에 상당한 위력이 있다. 사람들이 조폭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조직원 개인이 싸움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놈을 건드리면 깍두기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때문이다.


세계 경찰 따위 없고, 있을 수도 없다면 왜 미국이 세계 경찰이라는 오해를 받게 되었을까?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분쟁에 끼어들기 때문이다. 경찰도 아니라면서 웬 오지랖? 배트맨을 배출한 나라라서? 아니다. 미국이 수많은 다자간 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여러 집단방위기구에 가입해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갑자기 널리 알려진 북대서양조약기구, 즉 나토(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체코, 폴란드, 이탈리아, 발트3국, 루마니아, 스페인, 포루투갈, 네덜란드, 벨기에 등)를 만들었고, 일본과 미일 안전보장조약, 우리나라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었다. 대만과도 기존의 대만관계법은 물론 이를 강화한 대만보증법을 통해 사실상 동맹관계를 만들었다.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는 5 Eyes라 불리는 민감한 정보까지 공유하는 강력한 동맹체계를 만들어 두고 있다. 1970년대 까지는 동남아시아 조약기구, 바그다드 조약기구 등의 상호방위기구도 만들었지만 지금은 동남아시아에서는 필리핀, 서남아시아에서는 사우디 정도를 제외하면 동맹체계에서 빠져 나가는 모습니다.


미국은 왜 이렇게 많은 나라들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을까? 정의감이 넘쳐서? 힘이 남아돌아서? 아니다. 오직 미국의 안보를 위해서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미국의 집단 방위조약 상대국을 보면 미국이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하고 있는 나라들(최우선 감시국: 러시아, 중국, 이란, 파키스탄, 시리아, 북한, 쿠바) 주변의 나라들이다. 물론 미국은 이 나라들이 모두 한 편을 먹고 덤벼도 이기지 못할 만큼 강한 나라다. 하지만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 나라 국토와 국민의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미국은 팽창 욕구가 강한 러시아, 중국과 달리 의외로 상당히 방어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안보란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덜 다치는 것이다. 미국이 세계 여러지역에서 분쟁과 전쟁에 가담하는 까닭은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적의 도발을 초기에 제거하는 자국안보 활동이지 절대 세계 평화, 인권, 정의, 약소국의 보호 따위가 아니다. 미국은 경찰을 자처한 바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결과적으로 마치 경찰 노릇을 하게 되었을 뿐이다. 


이런 비유를 들어보자. 여포가 오늘날 환생해서 살고 있다 치자. 여포라면 어떤 강도가 들어 오더라도 다 때려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포가 의외로 섬세한 면이 있어 자기 집이 개판 되는 게 정말 싫다고 가정하자. 그래서 여포는 집에서 격투를 벌이는 상황이 너무 싫다. 그러다 본차이나 커피잔이나 아이맥이 깨지면 얼마나 아깝겠는가? 원목 바닥에 핏자국 생기는 것도 딱 질색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깡패, 양아치들을 집에서 먼곳에서 미리 때려잡는 것이다. 그래서 여포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범죄자들을 때려잡기 시작했다. 이웃 집에 강도가 들었을 때도 가서 때려 잡고, 버스 정류장 소매치기도 끝까지 추격해서 일당을 몽땅 때려잡고, 밤에 취객들을 터는 퍽치기 단도 한 놈도 남김없이 때려 잡고, 주변을 시끄럽게 하던 폭주족도 다 때려잡고 소음기 제거한 바이크는 보이는 족족 빼앗아서 박살을 냈다.  시민들을 박수를 치지만 정작 여포에게는 정의감도 없고 이웃을 지키겠다는 마음도 없다. 소매치기 강도질 하는 놈, 양아치 짓 하는 놈들은 언제고 자기 집에도 기어 들어올 놈이니 이 참에 미리 다 때려잡아 두는 것이 자기 집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그렇게 할 뿐이다.  그래서 얼른 보면 온 동네 범죄를 다 소탕하는 경찰처럼 보이지만 여포는 절대 경찰이 아니다. 

그런데 여포는 성폭력범을 때려잡는 데는 소극적이다. 생각해 보니 자신과 별로 상관 없기 때문이다. 여포는 남성이며 초선이 죽은 이후 아예 연애에 관심을 잃어버려 독신으로 살고 있다. 그러니 성폭력범은 여포의 안전과 무관한 존재다. 그런데 그 꼴을 본 누군가가 분노하여 “경찰 노릇 똑바로 해. 무슨 경찰이 성폭력을 방조하냐?”라고 소리친다면 듣는 여포가 얼마나 황당하겠나? 만약 여포가 성폭력범도 때려잡도록 하려면 성폭력범이 높은 확률로 강도나 절도 범죄도 저지른다는 것을 보여주던가 아니면 성폭력범 소탕을 정식으로 의뢰하여 사례금을 주거나, 성폭력범을 소탕하면 이 지역이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아져 여포가 운영하는 가게가 대박 날 거라고 설득하는 방법 밖에 없다. 여포는 돈을 좋아한다.


이제 눈을 미국으로 돌려보자. 세계 모든 나라가 미국과 동맹을 맺고싶어 한다. 꼬마 나라들끼리 아무리 집단방위기구를 만들어도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가 기침 한 번 하면 날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꼬마 나라라도 미국과 동맹을 맺으면 중국이나 러시아도 건드릴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은 경찰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 나라 이익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미국과 동맹을 맺으려면 그 꼬마 나라의 안보가 곧 미국의 안보나 핵심적 이익에 직결되어 있어야 한다. 더구나 그 동맹이 영원히 계속되고 미국이 무조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 믿어도 안된다. 미국이 서남아시아 경찰노릇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을 뺀 이유는 셰일 오일 덕분에 석유가 남아도는 미국이 “석유 따위 아무렴 어때?” 입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에 대해 무관심한 까닭도 그 지역의 적대국이었던 베트남이 우호적인 나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려면 우리나라의 안보가 미국의 안보와도 직결되어 있음을 계속 주지시키고 실제로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안보, 핵심적 이익, 가치사슬에서 상당히 중요한 고리 하나를 꿰차고 “나 망하면 너도 꽤 아플걸?”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꼭 경제적인 이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어떤 외적이 쳐들어 오더라도 물리칠 수 있는 튼튼한 국방력을 갖추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하지만 자주 국방은 너무 당연한 것이니 또 거론하지는 않겠다. 사실 미국도 자주국방이 잘 된 나라와 동맹 맺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유사시에 미군이 와서 싸울수 밖에 없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 역시 아주 강력한 안보다. 그것은 미국에 아부 떠는 것으로 얻을 수 없다. 미국에게 오히려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그런 가치로운 것들을 많이 갖추고, 미국 뿐 아니라 미국에게 중요한 나라들과 이중 삼중으로 동맹관계를 맺어 미국이 구상하는 집단방위체제의 중요한 고리를 차지하는 외교적인 힘을 키우고 세계 정세에 늘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노력을 계속 해야 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며 거 봐 미국 믿지마. 한미동맹 필요없어. 중립외교가 짱짱이야 이런 헛소리들이 나오길래 몇 마디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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