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월이 수상하여 돈 받고 쓰는 글도 잔뜩 밀려있는 주제에 돈도 안되는 글을 쓴다. 심지어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 여러차례 나눠 쓰는데, 꼴을 보아하니 소책자 한권 나올 각이다.
문 정권이 처음 출발할 때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한 곳이 두 군데 있었다. 하나가 검찰청이고 다른 하나가 교육부다. 검찰에 대해서는 임기 내내 검찰개혁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교육부에 대해서는 아예 해체 수준의 개혁을 해야 한다고 대통령이 콕 찝어서 말했다. 하지만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이 정권은 “검찰 공화국이 돌아온다.”라며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고, 전교조 등 진보교육권은 “이제 공교육에 피바람이 몰아친다.”며 두려워하고 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 정권이 행정부는 물론 국회의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지자체 단체장과 시도교육감도 거의 대부분 장악한 상태에서 5년이 지났다. 더구나 국회 다수당은 2014년부터 8년째, 지자체와 시도교육감 2/3를 차지하고 있던 시절은 2016년 부터였다. 그 동안 대체 뭘 했기에 아직도 검찰 두려워, 공교육 판 뒤집혀 타령이란 말인가? 저 두개는 대통령이 콕 찝어서 말한 핵심 국정과제들이었는데 말이다.
민주당 정권이 그 정도로 무능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도 자리까지 간 사람들은 절대 바보가 아니다. 가령 윤석열 당선인을 무식하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윤 당선인은 무식하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 대부분 보다 훨씬 유식하고 유능하다. 손가락질 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렇다면 그 긴 시간동안 대체 국정 과제 넘버 1, 2를 다투는 역사적 소명을 하나도 이루지 못한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먼저 검찰개혁 부터 꼼꼼히 짚어 보자. 여기에는 나의 뇌피셜이 많이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고 보기 바란다.
나는 검찰개혁이 그렇게나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는 주장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지만 일단 그 주장이 옳다고 쳐 보자. 개혁을 하려면 먼저 무엇이 문제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오만하다, 건방지다 이런 감정적인 것이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문제는 철저히 공리적으로 따져야 한다. 자, 무엇이 문제인가?
누가 뭐래도 이게 가장 큰 문제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는데 검찰이 정치질을 하니 고무줄 잣대가 생긴다. 검찰이 자기들끼리 서로 봐주고 하는 것 역시 이 정치 검찰질의 부수현상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권력자들이 검찰을 자기 맘대로 다루는 도구로 사용하는데 검사들이 무슨 눈치를 보겠는가? 그리고 권력자들을 위한 사법서비스로 손쉽게 승진하는 떡검들을 보면 머리 터지게 증권 사기 추적하고 성폭력범 잡어넣는 검사들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이건 민생하고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이것도 문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검사 뿐 아니라 그 어떤 권력기관도 개개인의 정의감과 양심을 믿고 운영하면 안된다. 권력기관은 가장 사악한 자가 그 자리를 맡아도 공익을 위해 일할수 밖에 없게끔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 그렇다고 검찰을 너무 옥죄면 범죄자 천국이 되니 바람직하지 않다. 검찰의 권력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펴보고 맥점을 정확하게 잡아야 한다. 검찰의 힘은 사람을 잡아가고 수사하는데 있지 않다. 그런 힘은 죄 안 짓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다고? 그건 부패한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의 변명에 불과하다. 우리같은 서민들은 아무리 털어도 벌금 50만원 약식 기소나 과태료 감만 나올 것이다. 검찰은 그딴 데 관심 없다. 솔직히 나도 검찰이 관심가지고 털 만한 위치에 한 번 올라가 보기나 했으면 좋겠다. 검찰의 진짜 힘은 잡고 터는데 있는게 아니라 마땅히 털려야 하는 사람을 털지 않는데 있다. 누구를 털고 누구를 털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기소재량권이라 불리는 이게 바로 검찰 권력의 핵심이다. 더구나 이건 민생과 직결된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검사를 자기편으로 만들면 아무 탈 없이 살수 있는 세상이라면 강자에게 천국 약자에게 지옥이다. 죄 짓고도 별탈없는 계층이 있다면 그게 바로 신분제 사회다. 그런 점에서 검찰이 멋대로 사건을 덮어도 견제할 방법이 없는 사회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멀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검찰이 검찰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서 기소하지 않으면 처벌할 방법이 없다. 바로 이 때문에 힘있고 돈있는 사람들이 검찰의 스폰서가 되어 주는 것이다.
이것도 아주 중요한 문제다. 특히 교사, 교수, 금융인 등이 피의자가 되었을 때 그 깐족거림과 모욕은 이루 말할수 없다. 사실 이건 일종의 기술이다. 지식인들은 지능적으로 말을 잘 맞추고 나름 법리를 이용하여 방어하기 때문에 먼저 멘탈을 흔들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만들어 말 실수를 노리는 것이다. 이게 우리나라 검사들만 그러는게 아니다. 가령 FBI는 아예 이런 심리전술을 연수때 배운다. 어쨌든 바람직한 것은 아니니까 이 역시 개혁해야 할 이유로 잡아 두자.
이제 문제를 알았으니 답을 찾아보자.
이건 너무 뻔하다. 검찰이 어떠한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롭도록 중립을 보장하는 것이다. 오직 법에 따라 엄정하게 움직이는 검찰. 어떤 외압에도 굴복하지 않는 추상같은 법의 집행자. 황제의 친인척도 가차없이 목베어버리는 포청천. 대충 이런 것이 되겠다. 또 다른 하나는 철저한 능력위주 인사다. 검사가 정치질을 하는 까닭은 그렇게 라인을 잘 타면 승진하는 사례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어려운 사건에서도 범인 잘 찾아내고 재판에서 승소하여 잘 집어 넣는 검사가 승진하는 시스템이라면, 또 그 사건의 경중을 민생과 인권에 따라 가중치를 준다면 검사들은 정치질을 하기보다는 정치질을 요구하는 권력자를 잡아 넣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검찰청이 법무성의 산하기관(외청)이 아니라 병행하는 특별기관으로 되어 있다. 독일같은 경우는 아예 사법부에 속해 정부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미국은 주검사장(한국으로 치면 고검장)과 지방검사장(한국의 지검장)이 아예 선출직이며, 주검사장은 연방검찰총장의 명령도 주지사의 명령도 받지 않는 독립기관이고 지방검사장은 주검사장의 명령을 받지 않는 독립기관이다. 또 연방검찰의 경우 법적으로는 법무부 산하기관인 연방수사국(FBI)이 수사권의 대부분을 행사하는데 FBI는 임기가 보장되며 일단 임명하면 법무부장관(검찰총장 겸임)도 대통령도 간섭할 수 없다.
임명직인 검사가 국민의 대표인 선출직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말도 들리지만 이건 댕댕이 소리다. 그 선출직이 검사를 자기 이익을 위해 활용할지 엄정하게 공익을 위해 활용할지 어떻게 아나? 선출직이 되면 갑자기 탐욕적이고 사심가득하던 사람이 정의롭고 공평무사한 사람으로 변신이라도 한단 말인가? 검찰이 선출직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부터 털어야 한다. 뭔가 쿵큼한 구석이 있는 선출직일 확률이 90% 이상이다. 입법 로비 등으로 잔뜩 해드신 선출직 공무원, 입법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을 이용하여 큰 돈을 번 선출직 공무원이나 그 측근 등. 저 말은 결국 “어이 검찰, 집권당 말 들어.”의 변종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부분이 모호하다. 검찰청이 법무부 산하기관이자 외청으로 되어있다. 그래서 제한적이지만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있지만, 검찰총장의 직급을 장관과 동급으로 정해 놓아(부하가 아님) ‘관례적’으로 독립된 준사법기관으로 삼고 있다. 이 관례적 혹은 판례상 준사법기관을 명확하게 독립된 준사법기관으로 못을 박고, 검찰총장은 여러 광역자치단체에 걸친 범죄나 고위직 범죄만 지휘하고, 고검장은 항소심 사건만 담당하고, 각 지방검사장은 총장이나 고검장의 명령에 복종할 필요 없게 만들어야 한다. 단 이들이 자신들의 독립성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오직 검찰의 비위만 전담하는 준사법기구를 설치하여 견제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공수처처럼 광대역이 아니라.
경찰과 검찰의 수사권 기소권 분리를 말했다면 이건 오답이다. 수사권 기소권 분리하면 어쩔 건가? 그럼 경찰은 자기 스폰서 대주는 사람 편의를 안 봐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가? 실제 서민들이 자주 마주치는 사법관리는 검사가 아니라 경찰관인데, 지금도 피해자는 심각한데 경찰이 가볍게 처리하거나 덮어버려 물의를 일으킨 사건, 심지어 피해자가 살해당한 사건들 뉴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검찰이 가지고 있는 수사권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다른 기관에게 분산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비교적 가벼운 범죄는 경찰이 수사하고, 고위공직자의 범죄는 공수처가 수사하고, 나머지 범죄는 검찰이 수사하고 이런 식으로. 이래봐야 달라질 것은 없다. 가벼운 범죄는 경찰이 아는 사람 부탁 받고 덮고, 고위공직자 범죄는 높으신 분 뜻에 따라 덮으면 어쩔텐가?
답은 기소, 수사권을 조각내어 여러 기관에 분산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관이 각자 수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미국 검사가 우리보다 목에 힘을 못주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에는 지방검사(DA)가 있고, 주 검사가 있고, 연방 검사가 있다. 지방검사가 덮은 사건을 주 검사가 수사할 수도 있고, 그 사건이 주법 뿐 아니라 연방법에도 저촉된다면(대개 중범죄는 겹친다) 연방 검사도 얼마든지 수사할 수 있다. 그 뿐인가? 증권위원회에도 검사가 있다. 재무부에도 검사가 있다. 심지어 교통부에도 검사가 있다. 검사 투성이다. 미국이야 말로 검찰 공화국이다. 이들 모두 나름대로 수사하고 기소한다. 물론 경찰도 수사 한다. 각 도시에 있는 경찰, 카운티의 보안관, 그리고 그 유명한 FBI도 수사한다. 조폐청도 사안에 따라 수사하고, 마약국도 수사하고, 총기국도 수사하고, 심지어 우체국도 수사하고, 국립공원관리공단도 수사한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죄짓고 법망 빠져나가는게 100배 어려운 나라다. 이 놈을 매수하면 저 놈이 나서서 털고, 여기서 덮었더니 10년 뒤에 다른 기관이 터는 식이다. 그러니 힘있고 돈있는 사람은 검사를 후원하고 매수하는 쪽 보다는 차라리 죄를 지었으면 수사는 당연히 받는다고 생각하고 유능한 변호사를 비싼돈 주고 고용해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쪽을 선택한다. 이것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니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검사가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되는 일은 없다. 검사가 권력을 휘두르기는 커녕 유명한 로펌 변호사로 스카웃 되거나 정치권에 스카웃 되기를 바랄 정도다. 그것도 꼭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스카웃 되려면 유명해져야 하고 유명해지려면 힘있고 돈있는 유명인사를 털어서 잡아 넣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렇게 미국은 큰 힘을 가질수록 털릴 확률이 높아지고, 덕분에 변호사들이 돈을 번다.
또 다른 방법은 검찰의 기소재량권을 시민이 통제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이미 도입하여 운영하고 있다.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한 피해자가 민간으로 이루어진 위원회에 사건의 재심을 요청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검찰시민위원회, 일본의 검찰심사회가 그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검찰시민위원회는 자문기관에 불과한 한계가 있다. 일본의 검찰심사회는 법적 구속력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기소처분이 나오면 검사는 강제로 기소해야 한다. 미국의 대배심제는 이와 좀 다르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검사가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사건을 덮지 못하게 하는 제도로 운영되지만 미국은 거미줄 같이 많은 수사기관이 있기 때문에 기소가 남용되는 것을 견제하는 제도로 운영된다. 어쨌든 검찰의 기소재량권을 시민이 통제하는 방법은 선출직이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로(이걸 임명하면 또 집권당의 입김이 들어간다) 선정된 시민위원회가 통제하는 것이 답이다.
이건 오히려 답이 뻔하다. 수사 프로토콜을 엄격하게 만들고, 그것을 위반하면 아예 기소 자체를 무효화 시키면 된다. 이미 이런 쪽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며, 꽤 많이 변했다. 이제 우리나라도 수사 과정에서 검사가 인권을 침해하면 그렇게 수집된 증거는 무효로 하는 판례가 누적되는 중이다. 심문 과정이 녹화되고, 그 녹취물의 원본이 완벽하게 보관된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검사가 심문 과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들을 좀더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규정하고 기소 전에 피의자와 그 변호인이 이를 모두 체크하여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도록 법제화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수 있다. 그냥 내 생각이다. 더 구체적인 방안은 내가 법조인이 아니니 뭐라 말할 수 없고, 다만 이런 것들은 기술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검찰 수사 규정을 분명하게 하고, 피의자와 그 변호인이 수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를 당했을때 이를 호소할 수 있는 (가칭)검찰 인권 소청위원회 같은 것을 설치하여 재판시 판사가 반드시 위원회 의견을 듣는다는지 등의 여러가지 방법이 나올 수 있다.
자, 이제 문제도 나왔고 답도 나왔다. 그렇다면 이 정권은 문제를 잘 풀었을까?
일단 여기까지 써 두고, 다음 편으로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