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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Aug 14. 2018

역사책방

역사와 함께 노닐다

역사를 좋아하는 전직 IT기업 임원이 역사 전문서점을 시작했다. 백영란 대표가 운영하는 이 서점의 이름은 ‘역사책방’이다. 경복궁 영추문 근처에 있어 ‘영추문 앞’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한적하고 운치 있는 서촌과 어울리는, 서촌으로 이사 가고 싶게 만드는 책방이다.


역사책방 내부.


“몇 년 전 어느 날 직장 다니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한 친구가 서점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너무 좋다고 호응하면서 저도 서점을 생각하게 됐죠.”

백 대표는 석사과정까지 역사를 전공했다. 이후 경제학 박사를 마치고 IT업계에서 외도하다 좋아하는 역사로 돌아온 것이다.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퇴직 이후 1년 정도 준비 기간을 거쳤다. ‘주 52시간 근무’가 화두지만 5월 2일 책방 문을 연 이후 주 7일 근무 중이다. 오전 10시 30분 오픈이라 늦어도 10시까지 출근한다. 초기에는 저녁 9시에 문을 닫았는데 퇴근하고 오기 애매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한 달 만에 10시로 연장했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하루 12시간을 책방에서 보내는 셈이다.




주민들이 지나가다 들르는 책방


역사책방 외관.


책방 문을 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동네 주민 3명이 들어왔다. 거의 매일 들르는 단골이란다. 주민들은 길을 오가며 들르고, 밤에 산책하다 들러 책을 사고 주문도 한다. “손님들은 남녀노소 정말 다양해요.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도 있어요.”

역사책방 자리에는 원래 상패와 트로피 만드는 공장과 가게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실내가 꽤나 널찍하다. 카페와 다락방처럼 오붓한 모임공간도 있다. 대형서점과 독립서점의 중간 정도 규모다. 이웃들에게 서점이 들어오면서 골목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얘기를 듣고 있단다. “역사 전문서점은 사대문 안, 궁 근처에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원래 사직동과 창덕궁 근처를 중심으로 자리를 알아봤는데 이곳을 찜해두고 비교해보니 여기만 한 곳이 없더라고요.”


역사책방 내부.


역사책방에는 역사 전문서적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책이 진열되어 있다. 책의 면면을 살펴보면 모든 것에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처음에는 무겁고 어려운 역사책만 가득했지만 문을 연 후 손님들의 이런저런 제안을 적극 받아들여 책의 분류와 진열을 바꾸면서 구성이 다양해졌다. 원래 역사와 여행은 같이 가는 거라는 얘기에 여행 섹션을 추가하고, 하루에만 3명의 서촌 주민이 얘기해서 서촌 코너를 만들고, 손주를 데리고 온 분들이 찾아서 어린이 역사책도 들여놓는 식이다. 주변에 건축이나 미술 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건축사와 미술사도 포함됐다. 초기에 생각했던 역사책의 범위가 주민들을 만나면서 넓어진 셈이다. “제가 철학을 전공했다면 사람들이 어려워했을 텐데 역사를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 같아요.”

지금 비어 있는 서가에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수집해 보관하고 있던 책들을 갖다놓을 예정이다. 반헌법 행위자 400명을 기록한 책의 출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한 교수가 내놓은 귀한 책을 역사책방에서 대신 판매하는 것이다.


다락방처럼 오붓한 모임공간.




통인동의 문화 플랫폼

역사책방에서는 6월 7일 ‘신병주의 조선 돌아보기’를 시작으로 매주 1회 이상 강연이 열리고 있다. ‘통인 플랫폼 12’라는 이름으로 소통의 거점이자 열린 강단을 지향한다. 주로 서울시민들이 오지만 지방에서 올라와 참석하는 이들도 있다. 최근 신간 <애인이 있는 시간>을 낸 신현림 작가에 이어 7월 18일에는 유시민 작가, 7월 26일에는 윤후명 작가의 북 토크가 열렸다. 8월 9일에는 홍순민 교수의 한양도성과 궁궐 이야기 강연이 있고, 8월 11일에는 세종대왕 즉위일에 맞춰 인근 생가터를 중심으로 답사를 진행한다. “강연은 주로 홀에서 하는데 미처 몰랐던 장점은 밖에서도 잘 보인다는 거예요. 지나가는 사람들도 볼 수 있어 좋아요.” 강연 이외에도 전시와 음악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한다. 지난 6월에는 첫 전시로 아마추어 작가 2인의 <펜으로 그린 서촌전>을 진행했다. 8월 15일에는 동네 주민들을 위한 첫 번째 작은 음악회를 열 계획이다.

유시민 작가의 북토크는 돌베개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해 열게 됐다. “책 제목이 <역사의 역사>이니 역사책방에서 해야죠.”(웃음) 문을 연 지 얼마 안 됐는데 여기저기에서 좋은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사람이 계속 많이 모여야 해요. 지금까지는 주로 직접 기획했지만 앞으로는 주변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받고 출판사와도 연계해서 하려고요. 공간은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야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책방 자체가 개인 공간 같은 느낌이 들면 안 되거든요.”

서점을 준비하고 운영하면서 각박한 현실을 체감했다는 백 대표의 소망은 단순명료했다. ‘오래 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서점 일에 행사 기획과 운영까지 겸하다 보니 정신이 없고 놓치는 일도 많아요. 마음을 급하게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만큼만 천천히 하나씩 하려고 해요.”


강연을 진행하는 홀.





글 전민정 객원 편집위원

사진제공 역사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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