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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Aug 22. 2018

장 마크 발레 감독의 <와일드>

마음의 지도를그리는 여행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아픈 기억의 편린이 길 위에 차곡차곡 쌓이고, 단편적 기억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순간 길은 마음의 지도가 된다. 압도적인 자연의 풍광과 그 아름다움을 기대했다면 솔직히 실망할 수도 있다. 사실 거대한 자연의 풍광을 제대로 담아내기만 했다면 관객들은 훨씬 더 쉽게 매혹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와일드> 속 자연은 아무런 표정이 없다. 그렇게 무심한 자연의 표정은 한 여인의 고통스러운 내면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카메라가 향하는 시선은 물기 없이 갈라진 한 여인의 마음이다. 거친 자연은 그동안 그 여인이 살아온 길 자체가 되어, 걸음걸음 마음을 따른다.



길이 끝난 후 시작된 여행

영화 <와일드>는 절망과 방탕 속에 인생의 길이 끝났다고 느끼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그는 미국 서부 4,200km를 도보로 종단한다. 자신의 몸집보다 몇 배는 더 큰 배낭을 짊어지고, 남자들도 완주하기 어렵다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이하 PCT)을 걷고 또 걷는다. PCT란 멕시코 국경에서 시작해 캐나다 국경까지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도보여행 코스다. 거친 등산로와 눈 덮인 고산지대, 9개의 사막과 산맥, 평원과 화산지대까지 인간이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자연환경을 거쳐야 하기에 일명 ‘악마의 코스’ 로 불린다. 

왜 그는 수행과 같은 이 여정 속으로 자신을 던진 것일까? 영화는 내내 셰릴(리즈 위더스푼)이 수행에 가까운 여정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교차해 보여준다. 그는 가정폭력으로 일그러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삶을 지탱해주던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상실감에 빠진 그는 섹스와 마약으로 스스로의 삶을 후벼 판다. 

한없이 너그러운 남편이 옆에 있고 여전히 돌봐야 할 어린 동생도 있지만 한 번 휘청대기 시작한 걸음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법을 잊는다. 나락의 끝에 서서 문득 정신을 차린 셰릴은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극한의 도보여행인 PCT를 선택한다. 주술처럼 엄마가 이야기했던 ‘자랑스러운 딸’로 돌아가기 위해 연간 125명만이 평균 152일에 걸쳐서 완주한다는 그 코스를 94일 만에 완주한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사실 극한의 자연환경 속 혼자 떠나는 트레킹 여행이라는 소재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영화가 과연 관객을 매혹시킬 수 있을지 우려했지만, 영화의 제작자이자 주인공인 리즈 위더스푼은 스스로를 영화에 던지면서 그 우려를 잠재웠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셰릴이 겪었을 여정을 가급적 그대로 겪고 재현하면서 온몸이 멍투성이가 될 정도로 투혼을 발휘한 리즈 위더스푼의 화장기 없는 얼굴에서는, 그동안 로맨틱 코미디에서 보여준 화사함과 깜찍함, 발랄함을 찾을 수 없다. 

영화 속에서 셰릴은 ‘몸이 그대를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라’라는 에밀리 디킨슨의 격언을 방명록에 적는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으로 몸을 괴롭혀 그 조언을 문신처럼 스스로의 마음에 새긴다. 신체적 고통을 훨씬 더 웃도는 마음의 소동을 겪으며 그는 앙상하게 남은 자신의 마음과 대화한다. 그리고 그 거친 길 위에서 발톱까지 빠지는 고통을 겪으며 체현하는 것은 슬픔을 초월하는 방법이 아니라, 고통과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용기다.




그럼에도 다시 삶

어떤 관점에서 보면, 엄마의 죽음이 자신의 삶을 방탕하게 내던질 만큼 대단한 걸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와일드>는 셰릴 스트레이드라는 한 여인의 일탈과 슬픔의 무게 자체에 동감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의 삶 자체에 공감하지 못하는 관객이라도, 영화 <와일드>의 메시지 자체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한 여인의 삶을 보여주고 그를 응원하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묵직한 삶을 받아들여야 하는 여정에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도움에 앞서 우리 두 발로 무거운 짐을 진 채 꿋꿋이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단단한 목소리로 주장한다. 셰릴은 길이 끝난 곳에서 여행을 시작했지만, 여행이 끝난 후 그가 발견한 것은 힘들더라도 내 두 발로 딛고 걸어야 할 새로운 길이다. 

영화에는 줄곧 엄마 바비(로라 던)가 생전에 좋아했던 사이먼 앤 가펑클의 <엘 콘도르 파사>(철새는 날아가고)가 흐른다. 남미에 구전되던 민요에 가사를 붙인 노래다. 영화가 끝난 뒤엔 자연스럽게 그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는데, 주술처럼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면 왠지 나도 용감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최재훈

영화감독이 만들어낸 영상 언어를 지면 위에 또박또박 풀어내는 일이 가장 행복한 영화평론가.

현재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각종 매체에 영화평론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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