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문화재단 Sep 11. 2018

재능문화센터

도시와 조우하는 연장된 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 주변은 5개의 길이 만나 매우 혼잡하다. 로터리 북동쪽의 혜화파출소 왼편으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양쪽으로 2~4층 규모의 조용한 빌라와 상점들이 자리한다. 이 길을 지나 혜화문 방향으로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약 50m 간격을 두고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두 개의 건물을 만날 수 있다. 교육기업인 재능교육 사옥 바로 앞에 위치한 이 두 건물의 이름은 재능문화센터(JCC)이다. 각각 아트센터와 크리에이티브센터로 쓰이는 건물들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했다.



외부로 노출된 계단과 마당으로 비워진 아트센터 매스의 모습.



길과 마당을 통한 문화공간

대지 안쪽으로 이어지는 매스는 ‘V’ 형 기둥이 받치고 있다.

재능문화센터는 재능교육과 안도 다다오가 함께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아트센터는 미술관과 콘서트홀로 구성되어 있고 크리에이티브센터는 스크린 및 음향 시설을 갖춘 오디토리움과 재능교육의 연구개발(R&D) 센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건물은 ‘길’을 테마로 도시와의 경계를 허문다. 

혜화동 길 한 자락은 외부로 노출된 계단을 따라 건물 안으로 수직적으로 이어진다. 이 길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여 비워진 마당과 함께 모든 기능을 연결시킨다. 길과 건물 사이에 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길이 건물 내부까지 깊숙이 이어진다. 재능문화센터의 외부 공간은 마치 동네의 마당 같은 역할을 하고, 건물을 수직으로 연결하는 동선들이 적극적으로 외부에 노출되면서 그곳을 이동하는 사람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게 된다. 

아트센터 외부의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면 마당과 마주한다. 마당의 왼편으로는 넓은 외부계단과 함께 ‘V’ 형 기둥이 받치고 있는 

콘크리트 구조체가 보인다. 이어진 계단을 따라 더 올라가면 휴식을 취하며 도시를 바라볼 수 있는 외부 공간이 나온다. 이 여정을 안내하는 외부 계단은 아트센터 주변을 휘감으면서 건물 꼭대기까지 이어진다. 크리에이티브센터는 진입구에 언덕길의 각도와 흐름을 같이하며 주변과 자연스레 어우러진 외부 공간으로 계획되었다. 사선으로 상승하는 콘크리트 매스는 대지 안쪽으로 이어진다. 콘크리트 매스는 안쪽으로 갈수록 높이가 낮아져 여러 번 꺾인다. 지붕의 꺾인 부분은 계단을 만들어 사람들의 흐름과 휴식을 유도한다. 도로에 접한 매스를 제외하면 중정인 마당을 중심으로 길과 계단을 따라 ‘ㅁ’ 자 형태를 이룬다. 
재능문화센터는 건물 속에 길이 있고, 마당이 있다. 길이 건물 안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비록 하나의 건물 안에 갇혀 있지만 프로그램(기능 공간)은 모두 독립적이다. 마치 개별 건물들이 길을 따라 연결되는 도시 구조처럼, 개별 공간들은 상승하는 계단을 따라 연결되고 관계를 맺으며 길 중간에 놓인 빈 마당에서는 도시를 바라볼 수 있다. 이 건물의 단순하면서도 복합적인 중첩된 매스와 형태 역시 내부 개별 공간들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한편, 건물 외부를 감싸며 형성된 길(계단)과 마당으로 연결된다. ‘문화공간’이란 건물 안의 특정 공간이 아니라 상승하는 길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당 쪽으로 난 개구부들의 크기와 개방 방법은 사람들이 시선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조율됐다.



노출 콘크리트와 나선형 계단

크리에이티브센터는 사선형으로 상승하는 콘크리트 매스가 대지 안쪽으로 이어지면서 ‘ㅁ’ 자 형태를 이룬다.

안도 다다오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노출 콘크리트다. 재능문화센터 역시 건물의 내외부 모두를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했다. 표면을 만져보면 거친 듯하면서도 부드럽다. 거푸집의 재질을 고스란히 반영해 자연스러운 질감을 지닌 탓이다. 시멘트의 회색이 주를 이루는 건물은 절제되고 소박한 느낌으로 주변 지역에 녹아든다. 노출 콘크리트는 회색의 모노톤으로 주변의 색을 모두 받아들이며 자연의 빛에 가장 솔직하게 반응한다. 시간과 빛, 기후에 따라 시시각각 자연과의 오묘한 조화를 만들고, 사람, 자연, 건물, 도시가 재능문화센터 안에서 어우러진다. 

아트센터 내부의 최하층과 최상층을 연결하는 나선형 계단도 독특하다. 감아 올라가는 곡선의 나선형 계단은 기하학적이며 형태적 심미성도 뛰어나다. 나선은 수직적 움직임을 가장 역동적으로 상징하는 형태로 계단 본연의 기능에 잘 부합되면서도 조형물과 같은 역할을 한다. 강한 형태적 특성 때문에 조각적인 요소로 느껴진다. 

1층의 나선형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차가운 느낌의 노출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건물에서 유일하게 나무로 마감되어 따뜻한 느낌을 주는 콘서트홀을 만난다. 콘서트홀을 나무로 마감한 이유는 소리의 울림을 위해서다. 실제로 콘서트홀의 모든 좌석에 소리의 밀도가 균등하게 전달되어 좌석 등급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길이나 마당이란 건물로 사람을 보급해주는 통로가 아니다. 그곳은 사람들이 만나고, 이야기 나누고, 기다리며 머무는 장소다. 재능문화센터는 길의 종점이 아니라 또 다른 길의 연장으로 도시와 조우(遭遇)한다.

아트센터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나선형 계단의 역동성.






글·사진 이훈길 (주)종합건축사사무소 천산건축 대표. 건축사이자 도시공학박사이다. 건축뿐 아니라 건축 사진, 일러스트, 칼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도시를 걷다>와 <건축 사진·스케치 기초부터 따라하기>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