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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레오 배 Aug 10. 2022

비 온 뒤 맑음

오늘 점심에 담아 온 서울식물원 사진





아침에 눈을 뜨자 커튼 사이로 설렘의 기운이 느껴진다. 가늘게 뜬 눈 사이로 하늘빛과 하얀빛이 들어온다. 콜록콜록. 습하던 공기가 다시 건조해졌다. 입술이 양 옆으로 길게 벌어져 올라간다. :) 




This too shall pass.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서울이 비에 잠겼다고 보도되었지만, 그건 강남 일대 일뿐. 강남은 원래 사람이 사는 땅이 아니었다. 허영과 욕심과 오만의 지역, 강남. 괜찮냐는 걱정 연락이 올 때 마곡은 평화로웠다. 자정 즈음 나는 가족을 공항에서 배웅하고 서울식물원을 가랑비 맞으며 걷고 있었다. 삶은 양보다 질인 것을. 언젠가 1박에 60만 원이 넘는 강남의 특급 호텔에서 온몸을 크리스찬 디올로 걸치고 근처 클럽에서 원나잇 헌팅에 실패하고 혼자 아침에 체크아웃을 하고 나와 벤츠 G63를 발렛으로 받아 거칠게 몰고 나가는 젊은 남자를 봤다. 돈을 흥청망청 쓰는 걸 보니 자기가 애써 번 돈은 아니리라. 아무리 돈이 많아도 채워지지 않는 그 안의 공허함이 고개를 푹 숙이고 늘어진 어깨 실루엣에서 느껴졌다. 



그랬던 것 같다. 나도 20대엔 화려한 세련이 멋져 보였다. 럭셔리에 나름 탕진했다. 옷도 굉장히 많이 샀다, 나름. 지금 내가 입는 옷은 계절에 서너 벌이 다다. 옷을 샀다 하면 가족과 친구가 놀라곤 한다. 내가 옷을 샀냐며. 속이 충만하면 머리를 겉에 두지 않는다. 나를 완전 다른 사람으로 바꾼 원인을 생각해보니, 그것은 시련이었다. 시련은 비구름이 되어 폭우로 내렸고, 나를 둘러싼 비본질inessentials을 씻어내었다. 지금 나는 맑은 하늘, 그뿐이다. 가끔 하얀 구름이 끼었다 이내 사라지고, 비구름이 되었다 가볍게 내리는, 맑은 하늘이 나다. 



앞이 보이지 않게 막막했던 때가 있었다. 마치 어젯밤까지 내리던 서울의 폭우처럼. 이내 시간은 이를 돌려놓는다. 파란 평화는 이내 돌아오고, 젖었던 땅은 곱게 마른다. 정반합. 화려한 성공에서 처량한 신세를 거쳐 지금은 더 높은 합에 이르렀다. 성공도, 가난도, 맑은 날도, 천둥번개에 폭우 치는 날도, 영원하지 않음을. 고로 나는 맑은 지금을 즐겨야겠다. 철학자이신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 시현. 시간의 중심이라는 이 단어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에 내 온 정신을 집중하라는 뜻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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