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살 때 나는 요리를 전혀 못했었다. 초반에는 저렴한 외식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고, 집밥은 인스턴트 파티였다. 라면을 끓여서 낱개 포장된 김치와 햇반을 함께 먹는 식으로. 그러던 어느 날, 조금은 제대로 된 음식이 먹고 싶어 졌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아르바이트 급여일까지는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방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니 수중에 돈이 똑 떨어졌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집에 먹을 것도 없었다. 반찬 통조림과 스팸 같은 것은 진작 다 먹어 버린 지 오래고, 찬장에는 고추참치 통조림만 잔뜩 남아있었다. 전에 같이 살던 룸메이트가 귀국할 때 주고 간 것을,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내팽겨 쳐 둔 것이 분명했다.
먹을 만한 것을 다 꺼내보니 고추참치 통조림과 98엔짜리 파스타 면 한 봉지, 그리고 빵에 발라먹다 남은 작은 버터 조각이 전부였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이걸 어떻게 먹지? 고추참치 캔을 들고 고민했다. 소스는 나쁘지 않은데 그냥 먹자니 비릴 것 같고, 결대로 찢어지는 식감 역시 상상만 해도 싫었다. 그렇다고 파스타면을 그냥 먹을 수는 없고.
인터넷에 ‘간단한 요리’를 검색해봤지만 간단한 요리는 조리 방법이 간단한 것이지 재료까지 간단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파스타면, 고추참치, 버터 한 조각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없었다. 올리브유라도 있었다면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라도 도전은 해 봤을 텐데, 가난한 자취생의 조미료 서랍에는 싸구려 식용유밖에 없었다.
고민하다가 배만 더 고파졌다. 일단 되는대로 먹자며 면을 삶고, 대충 삶은 면에 고추참치를 부었다. 그런데 면이 너무 덜 익었는지 딱딱했다. 간은 나쁘지 않으니 한번 볶으면 익겠지 싶었다. 남은 버터 조각을 털어 넣은 프라이팬에 파스타면과 고추참치 범벅을 볶았다.
레시피는 단순하지만 놀랍게도, 막 만든 이 요리는 상당히 맛있었다. 버터의 향이 고추참치 소스와 만나니 생각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향이 풍겼고, 잘게 부서져서 익은 참치 살은 포슬포슬하고 고소한 맛이 났다. 약간 매콤해서 시판 소스를 대신하기에도 충분했다.
내 최초의 요리인 고추참치 파스타는 그 이후로도 가끔 만들었지만, 전과 같은 맛을 재현하는 불가능했다. 면을 몇 분 삶았고 얼마나 볶았더라? 고추참치 통조림은 큰 것이었나 작은 것이었나? 버터를 얼마큼 넣었더라? 대충 만들었더니 계량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레시피를 재현하는 것을 포기하더라도 조금 더 맛있게 먹어보고 싶어서 초고추장을 넣어보기도 하고, 파마산 치즈 가루를 뿌리는 등 나름의 변화도 시도해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처음 먹었던 허접한 파스타의 맛만은 못 한 것 같았다.
스페인에서 종종 만들어먹은 토마토, 계란, 올리브, 옥수수를 넣은 무언가. 이 요리는 보기보다 엄청나게 맛있다!
일본 생활을 마무리하고 귀국한지도 10년이 넘게 지났다. 나는 여전히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행을 준비할 때, 되도록 숙소는 취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한다. 여행 첫날에 현지의 시장이나 마트에서 마음에 드는 재료를 사 온다. 그리고 딱 한 끼는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찾아보지 않고 내키는 대로 만들어보곤 한다.
레시피를 찾아서 따라 한다면 성공 확률이 높아지겠지만, 여행지에서의 요리는 집에서 하는 것처럼 다양한 조미료와 도구를 다 갖출 수 없다. 나는 여기서 구할 수 조차 없는 재료가 신경 쓰여서 요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만두고 싶지 않고, 되도록 새로운 맛을 많이 만나고 싶다. 일본 생활 내내 혼자 음식을 만들어 먹고 다닐 때도 망한 것은 망한 대로 재미있었다. 어쩌다 그때의 고추참치 파스타처럼, 운 좋게 예상치 못한 조화로운 맛이 되기도 했다. 요리를 성공하면 엄청난 발견이라도 해 낸 것처럼 뿌듯하다.
여러 번 시도해 본 결과, 내 고추참치 파스타에는 계란 반숙이 가장 잘 어울린다. 하지만 누군가의 고추참치 파스타에게는 토마토가, 어쩌면 김치가 더 잘 어울릴 것이다. 어쩌면 파스타에 고추참치 따위는 넣지 않을지도 모르고.
요리와 여행은 닮았다. 특히, 기본적인 재료는 같지만 어떤 결과물이 될지는 나만 아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음 여행에서는 어떤 재미있는 재료와 새로운 맛을 만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