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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Jan 06. 2022

피어싱 일기

#2. 피어싱의 달인을 만나다 (부제 : 친구가 고객이 되는 순간)

내가 찾아간 피어싱 숍은 부평 지하상가에 위치한 핑크 골드 피어싱이다. 네이버에 '인천 부평 피어싱'을 검색하다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노련한 사장님이 계시다는 말에 단단히 꽂혔다. 요즘 유행하는 감성적인 상호명이 아니고, 블로그 리뷰도 별로 없었지만 그 점도 좋아 보였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모습이 곤조 있잖아. 그리고 리뷰는 별로 없었을지언정 막상 가 보니 입구부터 손님들로 복작거렸다.


이곳도 여느 지하상가 피어싱 숍처럼 바깥쪽의 진열대에서 물건을 고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그 피어싱을 이용해 귀를 뚫어주는 시스템이었다.


이렇게 붐비는 장소에서 물건을 골라본 것이 얼마만이냐. 내심 감탄하며 당고머리를 한 학생과 번갈아가며 거울에 요리조리 대 보기도 하고, 이게 나을까 저게 나을까 중얼거리며 작은 큐빅이 박힌 피어싱 세 개를 골랐다. '요즘은 이런 게 인기예요'라는 남자 사장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귀를 세 개씩이나 뚫을 생각은 없었다. 그냥 '이런 것이 뭐 얼마나 한다고 고르고 고르냐. 그냥 나온 김에 다 사자'라는 생각이었다. 가격도 안 물어봤다.


마! 이것이 어른의 여유다!

아직도 열심히 고르고 있는 당고머리의 뒤통수를 보며 나는 (여유롭게) 씩 웃어 보였다.




피어싱 숍 내부는, 사실 내부라고 썼지만 진열대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이라 바깥이 훤히 보였다. 좁은 공간 안에 의자 여섯 개가 쪼르륵 놓여있었고 끝에는 냉장고가 하나 놓여있는 것이 전부였다. 나를 제외한 손님은 모두 지하상가에서 길을 잃지 않을 것 같은 나이대였다.

이곳에서는 빈자리에 앉아있으면 여자 사장님이 차례를 기억해놓고 알아서 귀를 뚫어준다. 남이 귀 뚫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좁은 공간에서 대기 중이므로 계속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와.

단언컨대 사장님은 이 분야의 달인이다.

피어싱을 소독하고, 일회용 바늘을 뜯고, 귀에 얼음*을 대고, 1분에 맞춰진 스톱워치를 켜는 동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군더더기가 단 하나도 없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면 멘트가 시작된다. 멘트는 항상 친구야-로 시작한다.


"친구야. 지금 마취하고 있어. 그런데 1분이 생각보다 길어"

"인스타그램 켜자~ 핑크 골드 검색하고, 메시지 창 켜"

"따라 적자. 소염제, 에스로반, 즉시 연락"

"소염제, 에스로반 사서 챙겨 먹고 바르고, 그래도 붓거나 아프면 즉시 연락해~"

질문을 할 틈도, 할 필요도 없다. 그가 말을 끝맺을 즈음에는 이미 손님의 귀에서 피어싱이 반짝이고 있으니 말이다.


이미 달인의 경지로 보이는 기술도 놀라웠지만, 솔직히 그보다는 안 끊기는 멘트 속 친구라는 표현의 적절함에 감탄했다. 기분이 나쁘지 않은 반말과 친구라는 호칭을 계속 듣다 보니 절로 친밀감이 인다. 확실히 친밀함은 긴장을 덜 하게 해 주는 것 같다. 차례를 기다라며 다른 손님들과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는 것도 위안이 되었다.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그렇게 다섯 명의 '친구'가 떠나고 드디어 나의 차례가 되었다.


.

.

.


손님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아니. 뭐야. 사장님. 잠시만요. 왜 저는 친구가 아닌 거죠?

아무래도 지하상가 경력 20년 차의 눈썰미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나의 연령대가 반말로 말을 걸기에는 다소 애매한 것을 바로 알아차린 모양이다. 나이에 친구가 어딨... 아니 친구에 나이가 어딨어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삼켜낸 순간 갑작스레 귀에 닿은 서늘한 느낌에 반사적으로 몸이 떨렸다. 정중한 멘트보다 손이 빠른 사장님이었다. 귀가 시원하다 못해 얼얼해졌다. 오늘만큼은 내 귀에 캔디가 아니라 내 귀에 얼음이다.

앗, 여기서 또 나이 든 티가 나려나?


* 피어싱을 뚫을 때 마취 크림을 발라주는 곳도 많이 있지만, 시간이 30분 이상 더 걸리고 어차피 주변 피부의 통증만 덜어주기에 연골 뚫을 것이면 얼음이 낫다고 한다. 확인된 정보는 아니지만 맞는 말 같다.


ㅡ 투비 컨티뉴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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