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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Jul 20. 2020

28세, 병원에서 저보고 유방암이랍니다.

낙타의 관절은 두 번 꺾인다_ 20대 유방암 환자의 여행_프롤로그


키 169cm, 주량 소주 다섯 병.

일주일에 약속을 일곱 개씩 잡는 ‘인싸’이자,

이틀 밤을 새우고도 멀쩡한 체력을 가진 20대 직장인.

다른 것은 몰라도 건강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암입니다’라는 네 글자로 한 순간에 인생이 달라졌다.

 


내가, 암이라고?




 어느 날, 샤워를 하다가 가슴에 작은 멍울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지우개 조각과도 같은, 단단하면서도 물렁한 촉감의 그것은 살이라고 하기에는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섬유선종이라는 것이 있단다. 섬유선종은 20대부터 50대 사이의 여성에게 흔하게 생기는 양성 종양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도 될 것 같았다. 바늘로 종양을 빨아들이는 간편한 맘모톰 시술로 제거할 수 있다니 기왕 마음먹은 김에 얼른 떼 버려야겠다!

 곧바로 직장에 반차를 내겠노라 고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동네의 여성병원으로 향했다.

 

 20년째 살고 있는 동네인데도 그 자리에 여성 병원이 있는 줄도 몰랐다. 산부인과도 한두 번 가본 것이 고작인데 유방외과라니. 유방외과면 가슴...?

괜한 민망함에 한참을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가슴에 멍울이 만져져요."

"아아, 그런 경우가 가끔 있어요. 일단 엑스레이 촬영 한번 해 볼게요."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안심이 되기는 했지만, 유방 촬영이라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방 촬영은 기계를 끌어안고 작은 틈에 가슴살을 밀어 넣어 찍는다. 기계는 서서히 위아래로 압박을 가했다. 마치 내 가슴으로 호떡이라도 만들려는 듯했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짓눌린 가슴의 얼얼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진료실에 들어갔다.


 진료실에는 젊고 잘 생긴 남자 의사 선생님이 모니터 화면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 기계가 가슴을 사정없이 누른다. 겁나 아프다.
 “결혼하셨어요?”
그런 건 뭐하러 물으시나요.

 

 선생님은 대뜸 결혼했냐고 물었다. 한참 모니터를 바라보던 그는 아직이라는 대답을 듣고 나서야 내 얼굴을 본다. 흔한 질문이지만 분위기가 이상했다. 어서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빨리 나가고 싶은데 그런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은 조직검사도 해보자고 한다. 결국 조직검사를 하느라 가슴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그 피가 다 멎고 나서야 진료실을 나설 수 있었다.


 '양성 종양은 문자로 알려주지만, 악성 종양이면 병원으로 오셔야 해요.'

 

 간호사 선생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병원을 나섰다.

 왜 바로 맘모톰 시술을 해 주지 않은 것일까? 조금 이상하다 생각했다. 어쩌면 조직검사 비용까지 한번 더 청구하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닐까, 괜히 의심까지 들었다. 어차피 검사비 20만 원은 실비 청구하면 나올 테니 상관없지만!

 반차를 냈더니 오후 시간이 여유로운 것에 기분이 좋아졌다. 친구를 만나 치킨과 맥주를 사 먹었다. 내내 거슬렸던 조금의 찝찝함은 잘 놀고 푹 자고 나니 사라지고 없었다. 조만간 병원에서 맘모톰 비용으로 백만 원 정도를 써야 할 것 같아 아까울 뿐, 기분도 썩 나쁘지 않았다.

 

 4일 뒤에 암 진단을 받게 될 줄도 모르고.






x 같은 예감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


 뭣.. 까튼 예감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 원래 그렇다. 촉이란 내가 살아온 모든 경험의 총집합체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딱히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던 그 말이 맞는 말이라는 사실을 꼭 이런 식으로 확인하게 되다니. 문자나 보내준다던 병원에서 전화가 4통이나 와있었다. 쎄-한 촉이 느껴졌다.


 하지만 안된다. 아니어야 한다.

 

 연말이라 직장도 무척 바빴고, 바쁜 일을 해결한 후 내년쯤에는 4년째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와 결혼 이야기도 오갈 터였다. 그러나 가슴에서 떼어낸 조직에서는 암이 나왔고, 동네 여성 병원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상급병원으로 전원 하라는 이야기와 함께 나는 암환자가 되었다. 그 이후로는 울 새도 없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수술을 결과 암덩어리는 생각보다 컸다. 수술로 가슴 일부와 오른팔의 겨드랑이 림프를 모두 제거했다. 그러고도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호르몬 치료 등 끊임없이 치료가 쏟아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빡빡 대머리가 되었고 살은 10kg넘게 불어났다. 항암치료를 결정하면서 휴가를 모아 쓰며 악착같이 버텼던 직장도 결국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퇴사 사유에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서'라고 솔직하게 적으려니 쓴웃음이 났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얻는 것, 쌓는 것은 힘든데 잃어버리는 것은 한순간일까.


▲ 어차피 서른도 못 살고 암환자가 될 줄 알았으면 직장은 뭐하러 열심히 다녔고 취업준비는 왜 했으며... 그런 생각들이 가장 괴로웠다. 여태까지 살아온 내 삶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다.


수술, 퇴사,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사라져 버린 20대의 삶.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힘든 치료가 모두 끝났다.

 암 치료로 잃어버렸던 일상도 슬슬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답답하고 앞길이 막막했다. 나는 여전히 암환자이고, 백수였다. 그냥 백수가 아닌 대머리 백수!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은 왜 이렇게 더딘지, 떨어진 체력은 왜 돌아오지 않는 건지.

그런 막막한 나의 상황을 해소하게 된 것은 의외로,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대학 동기의 전화 한 통이었다.


 “오랜만이다. 바쁠 때 전화한 건 아니지?”

 “아냐 괜찮아. 잘 지냈어?”

 “그럼~ 우리 조만간 술 한 잔 하자. 언제 시간 돼?”

 “아... 나 술 끊었어.”

 “네가 술을 끊었어? 왜?”

 

  애는 조금 놀란 것 같았다. 학교 행사에 다 빠져도 술자리는 빠지지 않던, 유난히 술을 좋아하던 내 모습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고 했다. 왜 술을 끊었느냐고 물어보는데 차마 ‘나 암 걸려서 술 마시면 안 돼’라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져서 ‘그냥, 건강관리하려고’라고 얼버무렸다. 동기는 우리 아직 젊은데 유난이라며 웃었다. 나도 그러게 하하. 하고 따라 웃었다.

 딱히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닌데 어쩐지 머쓱해졌다. 갑자기 주사를 많이 맞아서 혈관이 숨어버린 왼팔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나는 잘 버티고 있는 거 아니었나? 문득 내 처지가 퍼져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다녀오지 그래?”

 

 짧은 침묵을 깨고 수화기 너머로 들린 말이었다. ‘여행’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암 진단을 받은 순간부터 수술, 항암 그리고 방사선 치료까지 내 삶의 목표는 오직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살아있는 동안에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나의 일과는 건강하게 먹기, 건강을 위해 운동하기, 시간 맞춰 약 먹기로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이었다. 달라질 것 없는 하루 속에서 나는 때때로 아주 작은 미로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 이상의 목표가 필요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미로 밖으로 나가보자.


 어차피 인생을 헤매는 중이라면 길 위에서 헤매 보자.

 한 번 정도는 가슴 뛰는 순간을 만나보자.

그래서 28세 암환자, 여행을 갑니다.


 내가 처음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온 가족이 말렸다. 조금 더 회복하고 가도 되지 않냐고 했다. 모두가 걱정하고 반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는 끝났지만 사실 모든 치료가 끝난 것도 아니다. 4주에 한 번씩은 주사를 맞아야 하고 10년간 매일 같은 시간에 약을 먹어야 한다. 먹는 약의 부작용이 늘 함께 했으며, 겨드랑이 림프를 다 떼어 낸 오른쪽 팔은 3kg 이상의 무게를 견딜 수 없다.


 그래도 가고 싶었다. 아니, 가야 했다.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이 늘어나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국 떠났고, 돌아왔다. 그 기록이 하나 둘 여갔다. 지나고 생각하자니 좋은 순간도 있었지만 매 순간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가끔 서럽기도 했다. 매일 아침 아홉 시에 먹던 약을 시차가 나는 곳에서는 새벽 두 시에 일어나서 먹고, 야채수와 영양제를 한 보따리 챙기니 캐리어에 공간이 없 옷은 다 빼버리기도 하고, 남들 다 현지의 맥주와 와인을 맛볼 때 혼자 탄산수 먹으면서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그런 내용이다. 현직 암환자의 조금은 짠하고 불편한 여행기.


 남들보다 제약이 많으니 더욱이 대단할 것 없는 여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 대단할 것 없는 여정을 만나며 '나'라는 사람은 단단해졌고, 비로소 살아남는 것 외의 목표를 찾아가고 있다.

 환자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20대의 삶과 여행 이야기 <낙타의 관절은 두 번 꺾인다> 이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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