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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Aug 10. 2020

죽음에 관하여

20대 암환자의 여행_낙타의 관절은 두 번 꺾인다_스페인_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에서의 1월 1일, 빵을 사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말연시이니만큼 ‘혹시 대단한 구경거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작은 기대감이 들었다.

 그러나 정작 내 눈에 보인 것은 하얀 천에 덮여있는 사람의 맨발이었다.

표백한 것처럼 하얗고 쪼글쪼글한 작은 발. 구급 대원들은 들것에 사람을 실어 옮기고 있었다. 구경하기엔 어쩐지 죄책감이 들어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집에 돌아오고 저녁이 되어서야 낮에 사 온 빵을 꺼냈다.


식어서 딱딱하게 마른 빵이 또 아까 본 발을 떠올리게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정돈된 형태의 죽음만 접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죽음 하면 떠오르는 것이라고 해봐야 ‘영정사진, 국화꽃, 장례식장’ 정도였다. 흰 천과 발바닥은, 태어나서 처음 마주친 날것 그대로의 죽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뒤로도 종종 그 작은 발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몇 달이 지나 귀국한 나는 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아나운서는 미국 워싱턴 주에서 세계 최초로 매장이나 화장 방식이 아닌, 새로운 장례 문화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이른바 '퇴비 장례'로, 사람의 시신을 퇴비로 만들어 진정한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란다. 빠르게 자연 분해되는 수의에 대한 아나운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할아버지가 '재수 없는 소리를 한다'라며 채널을 돌려버렸다.


죽은 후에는 모든 것이 멈춰버린다고도 하고,
살아서는 볼 수 없는 어떤 길을 간다고도 한다.

살아있는 이상 어느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사람의 몸은 죽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안토니오 가우디는 카사 밀라를 지으면서 밀라 부인의 화장대가 들어가는 자리에 ‘인간은 한 줌의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라는 문구를 적어 넣었다. 밀라 부인은 그 문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후에 석고로 덮어버렸다고 한다. 퇴비 장례 이야기를 듣자마자 채널을 돌려버린 할아버지처럼, 밀라 부인도 가우디의 말을 재수 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중증 환자로 비교적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되고 나서, <그 주제>로 이야기를 하기가 더욱 불편해졌다. 상대가 누구든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 분위기는 가라앉고, 어떤 금기를 거스르는 듯 찝찝함이 한가득 남는다. 그러나 죽음에 관한 관심은 본능적이다. 나도 한 번쯤 가까운 사람들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언제 어떻게 죽게 될지’, ‘어떤 장례절차를 따르고 싶은지’ 등.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내가 암에 걸린 것을 아는 사람은 과도하게 슬퍼할 것이고, 모르는 사람은 재수 없는 얘기를 한다며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누구도 영원히 살 수는 없다.   

 

영화 '코코'의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코코에서는 죽음을 슬프게만 표현하지 않는다. 실제로 멕시코에는 2003년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지정된 ‘죽은 자들의 날’이 있다. 매년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를 떠났던 영혼이 돌아오는 날로 여기고 축제를 연다. 죽음에 관련된 행사이지만 무겁고 침울한 분위기가 아니라, 사랑했던 이들을 춤, 노래와 함께 반긴다고 한다.

 

나도 언젠가 죽음을 마냥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탄생만큼 자연스러운 ‘삶의 마무리’로 여길 수 있을까? 한 작가는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이며,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각하는 인간은 분명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안다.*’고 했다.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마무리까지 만족할 수 있으려면 죽음을 마주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죽음이야말로 좋든 싫든 죽을 때까지 절대 외면할 수 없으니.

 

*인간은 한 줌의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가우디는 카사 밀라의 건축 의뢰자 밀라 부인(도냐 로사리오)의 화장대 옆에 이 문구를 새겼다. 불만을 가진 도냐는 가우디가 죽은 후, 그 위에 루이 15세의 로코코 장식을 가미해 석주와 석고를 발라 리모델링해 버렸다.

*(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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