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다고 생각했다. 종교적인 부분에 있어 딱히 선입견을 품고 살았던 적은 없건만, 힘들고 아픈 사람만 가득한 병원에서의 포교는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살기 위해서 더럽게 애쓰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죽어서 천국에 가려면’이라는 표현을 하다니 잔인했다. 그날 이후로 내게 ‘천국’과 ‘지옥’이라는 단어는 오로지 불쾌함만 떠올리게 할 뿐이었다.
“저기 좀 봐, 사람들이 모두 저기가 천국 같대.”
TV를 보던 엄마의 환호에 노트북에서 눈을 떼고 시선을 옮겼다. 천국의 해변이라 일컫는 보라카이가 지나친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잠시 출입을 통제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장 갈 수도 없는 곳이라면서, TV에서는 역설적이게도 그곳의 지나치게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줬다.
몇 개월 뒤 언니가 뜬금없이 해외로의 첫 가족 여행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어디 가고 싶은 데 없어?” 언니의 물음에 나와 엄마가 동시에 대답했다. “보라카이!”
우리는 그렇게 재개장을 앞둔 보라카이로의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나름 여행을 다닐 만큼 다녀봤다고 생각했는데, 보라카이도,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해외여행도 처음이라서 따져봐야 할 것이 많았다. 특히 한참이나 여행객의 출입을 통제했던 장소라서 특별한 정보를 얻을 곳도 없었다. 출발을 며칠 앞두고 호텔 측의 사정으로 숙소 예약이 취소되어 그야말로 ‘멘붕’을 겪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모랫바닥에서 잘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밤이 새도록 숙소 관련 정보를 찾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보라카이는 마치 ‘천국’ 같다던 말만 믿고 결심했다.
꼭 갈 거야. 가서 엄청나게 재미있게 놀고 올 거야. 나는 살아있으니까, 좋다는 곳은 다 가볼 거야.
#2 새벽 4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6시 비행기를 타서 약 4시간 뒤에 내렸다. 그 후 봉고차를 타고 2시간 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려 까띠끌란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은 사람으로 터져나가기 직전이었다. 통통배를 타고 30분을 더 가는 동안 속으로 침을 스무 번 정도 뱉어가며, 이런 교통 불편한 곳에 다시는 안 오리라고 결심했다. 배에서 내려 여러 사람과의 경쟁 끝에 ‘툭툭이’를 잡아타고 약 20분 후에야 겨우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내식도 먹지 않고 왔으니 우리 가족은 오후 네 시 반까지 공복인 셈이었다. 도저히 밖에 나갈 힘이 나질 않아 호텔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까짓 거 호텔이니까 비싸도 별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배가 터지게 먹었는데도 우리가 지불한 금액은 5만 5천 원 남짓이었다.
배가 부르니 아름다운 경치도 눈에 들어오고, 계산해보니 물가도 싸고, 정말 여러모로 ‘천국’이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그러나 문득 한 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한 테나 천국이지, 여기 사는 사람들에게도 이곳이 천국일까?’ 물가가 싸다는 것은 곧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필리핀 사람들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은 금액을 받고 일한다. 나의 이런 생각을 발전시키다가 결론지은 것이 있는데, 이름하여 ‘바나나 이론’이다.
부모님은 어린아이처럼 내내 모든 것을 신기해하셨다. 특히 엄마는 별것 아닌 것에도 까르르, 소녀처럼 웃음이 터지곤 했다. “들어봐, 아까 나갔다가 무슨 일이 있었게?” 듣자 하니 부모님은 아침 산책을 하던 중, 호텔 뒷골목에서 몽키 바나나를 파는 필리핀 할머니를 만났다. 상태도 별로 좋지 않은 바나나지만 그냥 호기심에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하우 머치?”
“백 페소.”
필리핀 할머니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한국말로 또박또박 100페소 (약 2,300원)을 불렀다고 한다. 작고 상태가 좋지 않은 바나나인데 생각보다 싸지도 않아서 발걸음을 돌렸다고 한다.
점심에 바닷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도 할머니를 만났다고 한다. 바나나는 얼추 거의 팔리지 않은 것처럼 보였단다. 그래서 부모님이 또 물었다고 한다.
“하우 머치?”
할머니는 부모님을 기억하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단다.
“오십 페소.”
그 정도면 가격이 괜찮은 것 아닌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바다에 다녀오던 길이라 주머니에 지폐가 없었다고. 그런데 저녁에도 할머니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바나나를 팔고 있었단다. 이번에는 오십 페소에 살 요량인데도 습관적으로 가격을 물었다고 했다.
“하우 머치?” 그러자 할머니의 대답이 예상 밖이었다.
“이십 페소.”
부모님과 바나나를 까먹으면서 생각했다. 이 바나나의 적정 가격은 대체 얼마일까? 똑같은 바나나가 아침에는 백 페소, 점심에는 오십 페소, 저녁에는 이십 페소라니. 혹시 우리가 본의 아니게 길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할머니를 놀린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는 천국 같은 보라카이가, 현지인들에게는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은 아닐까? 결국, 세상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무언가 절대적이지 않은 것을 볼 때면 ‘이런 게 바나나 이론이지’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무언가 대단히 새로운 것을 발견한 느낌이었는데, 이제 와 글로 적으니 개똥철학이다.
#3 나라면 이곳을 ‘밀가루 해변’이라 불렀을 거라고 생각했다.
보라카이의 화이트비치는 말 그대로 백사장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림같이 늘어진 야자수와 투명하기까지 한 바다가 참으로 조화로웠다. 생수처럼 맑은 바닷물이라서 마치 아무 맛도 안 날 것 같았는데, 스노클링을 하다가 코에 물이 들어가고 보니 참으로 짰다. 파도 위로 쉴 새 없이 부서지는 햇빛이 마치 유리 조각처럼 반짝거리고 뾰족했다. 바다도, 날씨도, 부모님의 쉴 새 없는 웃음도 온통 빛났다.
“나는 잠깐 앉아있을게요.”
온 가족이 물질하는 해녀처럼 온종일 바다에서 나올 생각이 없었다. 잠깐 풍경을 눈에 담고 싶어서 혼자 떨어져 나와 바다를 지켜보고 앉았다가 그대로 누웠다. 하얗고 따뜻한 모래의 보드라운 느낌이 좋아서, 모래 속에 손가락과 발가락을 파묻고 계속 꼼지락거렸다. 하늘이 바다처럼 파래서 마치 그 둘의 경계가 어디인지 헷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