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아서 병원 갑니다.
나는 꽤나 오랫동안 살아가는 것에 의욕이 없었다.
물론 이건 지금도 여전하고, 키우는 고양이가 없었으면 딱히 사는 거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것도 삶의 의미라기보단 의무감이라고 하나, 책임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감정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우울증이라기보단 삶에 질려버린 거라고 해야 하나..
취미가 오조오억 개라고 맨날 말하고 다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삶이 재미가 없어져서 그런 듯하다.
자. 그럼 우울증이라는 걸 자각을 언제 했는가.
나는 꽤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평균 3-4시간의 수면시간이 일상이었다.
근데 이게 2시간까지 줄어들었을 때, 아무리 해도 잠을 잘 수 없는 상황과
끝없는 무기력증에 빠져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인간에 대한 불신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하루에도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감정상태가 뭔가 이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활동하던 SNS에서 정신과 상담에 대한 이야기가 한동안 떠돌았고
그걸 본 나는 음. 죽기 전에 정신과나 가서 수면제나 왕창 받아와서 다 먹고 죽든 잠을 자든 하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이 결심을 하고 나서도 병원을 한동안 방문하지 못했는데,
아마 가정환경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엄마조차도
‘너처럼 자존감 높은 애가 무슨 정신과야’
라고 하셨고
최악의 결과를 받아 들고 나와서도
‘그 병원 믿을만하니? 다른 병원도 가보는 건 어떠니’부터 나왔으니까.
맞다.
우리 집은 전형적인 화목, 평화, 사랑이 모토인 한국가정으로
부모님으로서는 내 자식이 정신병이 있다고?
싶으셨을 거다.
그래서 부정기가 있으셨던 거겠고.
사실 정신과를 방문한 것도 회사에서의 번아웃도 번아웃이었지만,
내가 힘들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부모님에 대한 반발 심리 이기도 했다.
부모님한테서 나는 어릴 적부터 속 섞이지 않는 자식
걱정 안 시키는 자식, 긍정적이고 자존감 높은 자식이었을 테니까.
그게 다 꾸며진 모습인지도 모르고.
어릴 때부터 사고치던 오빠 때문에 이런저런 일이 있어도 부모님께 말을 안 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끊임없이 부정적인 사고를 머릿속에 집에 넣는 엄마 때문이기도 했다.
친구와 통화하면 ‘목소리가 그게 뭐니’
옷을 입으면 ‘옷이 그게 뭐니’
너는 너만 생각하고 이기적인 사람이고
제일 충격받았던 말은 아마
‘엄마인 나도 너를 안 좋아하는데 세상에 널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니’
였던 것 같다.
그리고 사춘기 때 지나가듯 들었던 저 말은
30대 중반이 된 지금에서도 사람에 대한 불신과 불안의 근본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대화가 단절된 사이
부모님과 나에겐 생각보다 깊은 골이 생겼고,
그건 조금씩 시간을 들여가며 나를 좀 먹어 갔던 것 같다.
뜨거운 해가 내리쬐던 여름날
그렇게 처음.
나는 정신과를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