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괜찮으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좀 마.
밝혀둔다. 난 현재 진행형의 우울증 환자다. 그것도 꽤 심각한.
우울증 뿐이랴, 조울증, 불안증, 공황장애도 같이 가지고 있다.
작년 7월, 이러다 죽을 것 같은데 죽기전에 정신과나 가보자 라는 마음으로 처음 정신과를 방문했다.
문진에서 모든 수치가 최악을 찍었고 첫 상담때 엉엉 울고 말았다.
스스로도 놀랐던 게, 그무렵 나는 감정이란게 없는 사람같았기 때문이었다.
외부의 자극에 무감각해지고 사람을 만날 때 즐겁고 화나고 하는 모든 감정이 수면아래로 가라앉은 듯 착, 가라앉아 있는 상태였다.
그것과 동시에 마음 한 켠에 쌓인 화에 짓눌려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 상태였다.
사실 정신과를 간 것도 반쯤 죽기전에 가봐야할 버킷 리스트 같은 느낌이었달까.
주변에선 정신과를 가는게 큰 하자가 있는 것 마냥 말했고, 너같이 밝고 자존감 넘치는 사람이 무슨 정신과냐며 웃기도 했다. 그래서 정말 막다른 길에 몰려서야 병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밝은데?! 하는 외침을 들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정말 그때의 나는 키우는 고양이가 없었다면 당장에 죽었을 기세였다. 삶에 아무 의미도 없고 앞으로 펼쳐질 남은 시간에 절망하고 또 절망하는 상태였다.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기대조차 없는.
그래서 어쩌면 그냥 하소연을 하러 갔었던 것 같다.
‘제가 지금 세상에, 삶에 절망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죽는게 나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런 이야기를.
그와 동시에
‘아 남들도 이런 감정을 다 느낄텐데. 내가 유난떠는 거 아닌가.’
‘병원에서 정상이라고 하면 어쩌지? 난 지금 이렇게 힘들고 죽을 것 같은데.’
와 같은 걱정을 했다.
오죽했으면 병원예약하고 방문하기까지 스트레스로 잠을 설치는 상태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문진을 마치고 첫 상담에서 선생님은 물으셨다
‘잠은 얼마나 주무세요?’
‘식사는 하셨나요?’
당시 나는, 아니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평일 5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다.
‘오늘은 좀 자고나왔는데.. 두 시간 쯤..? 잔 것 같아요’
‘밥은.. 요즘 입맛이 없어서 하루 한끼 먹는 거 같아요’
그리고 사실 오기까지 많이 망설였다는 이야기, 삶에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
주변에선 밝은 사람으로 보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 주변사람의 기대와 실망이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
사실 정상인데 내가 엄살을 피우는게 아닌가 했던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선생님은 묵묵히 들어주셨고, 그게 참 위로가 되었던게 아닌가 싶다.
이상한거 아니라고, 지금이라도 참 잘오셨다고.
몸아프면 병원을 가듯, 마음이 아파서 병원오신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을 털어내는 방법으로
햇빛받고 걸으세요,
운동하세요,
사람만나세요,
등
여러 방법을 내놓곤 한다.
그런 해결책을 볼때마다 자신의 노력이 부족해서, 게을러서 생기는 것 마냥 죄책감이 생기곤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약 먹으면 충분히 좋아진다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다.
사실 정말 우울증이 심한 사람들은
나가서 걸을 수도 없고, 운동을 할 수도,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물론 경도의 우울증엔 도움이 될 수 있을테지만.
주변에서 정신과를 다닌다고 하면,
어쩐지 안쓰러움과 불편함이 섞인 시선을 함께 받곤 한다.
하지만 나는 당당히 이야기한다.
더이상 이게 내 잘못으로 생긴 문제가 아님을 알기에.
더이상 이게 내 엄살이 아님을 알기에.
그래서 이야기한다.
네, 우울증 환자인데요. 그게 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