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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김무명 May 08. 2021

#9. 고기를 먹다가 울었다

우리의 이야기

마이너스 4천만 원에서 1억 원을 모으기까지



2020년까지 네 개의 부업을 하면서 아내와 함께 열심히 돈을 모았다. 회사를 마치면 과외를 하러 가면서 고구마나 바나나로 저녁을 때웠다. 주말에는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컵라면으로 한 끼를 해결했다.


종종 재테크 관련 영상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쉽게 돈을 버는 것 같았다. 쉽고 편하게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유튜브 영상들이 매일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일주일에 하루의 휴식도 없었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했다. 일을 마치고 저녁에 집에 오면 책을 읽으면서 투자 관련 공부를 조금씩 했다.


머리 자르는 돈을 아끼려고, 중고 바리깡을 하나 사서 머리를 집에서 깎았다. 물론 미용을 전혀 배워본 적이 없는 아내이기에 서툰 솜씨였지만. 유튜브를 참고해서 내 머리를 짧게 잘랐다. 삐쭉 빼쭉하기도 하고 군데군데 많이 잘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 lerakogan_art, 출처 Unsplash


회사에서 사람들이 내 머리를 보고 웃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우린 언제나 행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상황은 아주 천천히 나아지기 시작했다.


대출 4천만 원을 모두 상환하고 조금씩 종잣돈이 모였다.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부동산과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종잣돈이 작았고 안전하게 투자하다 보니 수익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관심을 갖고 시도했다.


2020년 말, 취업 후 4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1억의 돈을 모았다. 아내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미용실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우리는 옷도 사지 않고 신발도 사지 않았다.


학자금 대출을 제외하고, 부모님께 드린 3천만 원과 결혼자금 천만 원을 모두 상환한 후 모은 돈이 1억을 넘어섰다. 이것이 이 기간 동안 어떠한 사치 없이 우리가 모을 수 있는 최대한의 돈이었다.






고작 1억 모았다고 이런 글을 쓰나 싶을 수도 있다.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가상화폐로 수억 원, 수십억 원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요즘, 1억 원이라는 돈의 가치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돈으로 내 인생의 불확실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앞으로도 예기치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모두 이겨내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1억 원의 돈을 모은 것은 나에겐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기적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나는 늘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 것이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돈은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수단으로써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최선을 다해서 돈을 벌고 모아나갈 것이다.





고기를 먹다가 울었다



어느덧 이야기가 현재까지 왔다. 나는 보통 회사에서 글을 쓰는데 지금 이 글 역시 그렇다. 점심시간에 불이 꺼진 사무실에서 내가 지나온 길을 조용히 돌아보면서 다양한 감정과 만난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을 마치고, 부모님과 식당에서 싸우다가 울었던 적이 있다. 삼촌이 오랜만에 고기를 사주겠다고 가족들이 다 함께 고깃집을 갔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부모님과 다투게 되었고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밥을 먹으면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했었는데, 아버지가 나에게 대학에 가서도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고 노력하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었다. 별 이야기도 아니었다. 대수롭지 않은 그 이야기가 그날은 유독 듣기 싫었다.


수능을 치르고 대부분 친구들은 대학 갈 준비를 하면서 운전면허를 따거나 여행을 다녔는데. 나는 수능이 끝나자마자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집에 보탰다. 그리고 학자금 대출을 준비했다.


나는 전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지냈었는데, 은근히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있었던 것 같다. 그날따라 아버지의 노력하라는 말에 너무 화가 났다. 늘 어른처럼 행동하려고 했었는데, 화가 나고 눈물이 나면서 아이처럼 이야기했다.


여기서 뭘 더 노력해야 하냐고 말했다. 엄마, 아빠가 노력하라고 이야기 안 해도 나는 죽어라 노력하면서 살 거니까 그냥 가만히만 있어달라고 소리쳤다. 날 걱정하는 부모님의 그 말이, 그 당시 나에겐 폭력으로 다가왔다.


© nickkarvounis, 출처 Unsplash


나는 큰소리로 원망과 불평의 말을 부모님께 쏟아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당황하면서도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고깃집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바로 옆 테이블에도 손님들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 눈치를 많이 보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크고 서럽게 울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의 노력하라는 이야기에 화가 난 것 때문인지, 내가 날카로운 말로 부모님 가슴을 아프게 했던 게 미안해서인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아주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그때가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울어본 날이다. 아이들도 들어줄 사람이 있을 때 운다고 했던가. 그때 이전에도 이후에도 나는 한 번도 내 마음에 쌓여있는 말을 쏟아내면서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다.


난 언제나 혼자 버텨야 했었고, 누구에게 도움을 받거나 기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아주 강한 사람이었고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이 시간이 되면, 이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코끝이 찡하다. 한 줄 한 줄 글을 쓸 때마다 과거의 나를 만나고 그 시절로 돌아가면서 눈 주변이 뜨거워진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현재에 감사함을 느낀다.


어느 평범한 직장인의 이야기. 이러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시는 분들의 따뜻한 공감과 응원은 내 마음에 쌓여있는 말들을 쏟아낼 수 있게 해주는 큰 위로다. 그 덕분에 아이처럼 솔직하게 나의 감정과 기억을 글에 담아 내비칠 수 있었다. 들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이야기의 흐름 때문에 글에 다 담아내지 못한 부분이 많다. 앞으로도 나의 생각과 경험에 대한 글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우리의 이야기



바쁘고 성실하게 일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일하고,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힘든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삶에 최선을 다한다.


한때 나도 성실하고 꾸준하게 일하다 보면 언젠간 어느 정도 잘 살게 되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제대로 계획하며 살지 않는 사람에게 "잘 살게 되는 언젠가"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삶을 통해 배웠다. 막연한 노력의 결과는 명확한 실패다.


안대를 끼고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출발선 주변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지금의 삶과 큰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달라지지 않는 삶을 버텨나가는 미래의 희망은 신기루와 같다.


그럭저럭 버틸 만하다고 해서 먹고사는 것으로 만족하면, 먹고만 살게 된다. 만족은 삶을 이어나가는 힘을 주지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 눈 감고 싶은 현실이어도 눈을 크게 뜨고 개선할 점을 찾아내야 한다.






지금까지의 기록들과 마찬가지로, 앞으로의 이야기에도 엄청난 성공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의 이야기들처럼, 앞으로도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해나가고 싶다.


높은 수익의 투자를 하거나 특별한 아이디어로 사업을 추진하지 못해도,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좋은 사람들이 조금씩 인생을 변화시키는 이야기.


일하지 않아도 매 달 몇 백만 원을 벌거나 조기 은퇴를 하지 못해도, 행복하게 일하다가 은퇴하고 가족들과 여행도 다니는 이야기.


슈퍼카를 몰고 좋은 아파트를 사는 게 아니어도, 우리 가족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작은 집을 마련하고 소소한 여가생활을 하는 이야기.


나를 나답게 하기 위해서 돈을 사용하고, 우리 가족이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발전하는 이야기.


소박한 꿈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꿈같은 이야기. 나는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조금씩 앞으로 걸어갈 것이다. 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착한 사람들이 잘살면 좋겠다. 그리고 그 과정이 너무 외롭거나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 aliceka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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