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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김무명 Feb 10. 2021

#6. 가난엔 낭만이 없다

연탄 난로와 옥탑방

괜찮다 괜찮다



대학을 다니면서 성실하게 공부하고 책임감 있게 일했다. 수업이 끝나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친구들과 저녁 약속을 잡아본 적이 없다. 남는 시간에는 도서관에 갔다. 주말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바쁘게 살았지만 희망이 있었다. 이렇게 계속 꾸준히 공부해서 연구원이 되는 게 당시 내 꿈이었다. 부모님이 어려서부터 늘 말씀하셨던 것처럼,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학비 전액 지원과 생활비를 보장받고,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연구에 집중했다.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하고 연구했다. 하지만 대학생활 때 보다 전혀 힘들지 않았다. 공부만 하면 된다는 환경이 안정적이고 즐거웠다. 밝은 미래에 대한 꿈을 꿨다.


하지만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뒤 6개월 즈음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일을 그만 두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강원도에 계신 아버지는 대형 리조트에서 청소부로 일하셨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새벽부터 저녁까지 무거운 쓰레기들을 나르느라 관절의 상태가 안좋아지셨다. 결국 청소부 일을 그만두고 아파트 경비 일을 알아보기 시작하셨다.


부모님의 거주 문제도 신경이 쓰였다. 


© psaudio, 출처 Pixabay


부모님은 집이 없었다. 빚보증을 상환하느라 어머니, 아버지가 30년 동안 모아 온 모든 재산을 날렸기 때문이다. 월세를 구할 보증금도 없어서 친구분의 비어있는 집에서 임시로 지내고 계셨다. 언제까지 그곳에 머물 수 있을지 몰랐다.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으면 부모님은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대학원 생활을 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했다. 이상태로 몇년동안 계속 공부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결국 꿈에서 깨기로 했다. 나는 지금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 Free-Photos, 출처 Pixabay


아버지는 계속 공부하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막연한 희망에 화가 났다.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하나뿐인 기대에 화가 났다. 부모님을 잘 설득하고 진학 1년 만인 2015년 말에 대학원을 중퇴했다. 담담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가난엔 낭만이 없다



대학원 중퇴를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감사하게도, 교수님은 사정을 듣고 취업에 필요한 기사 자격증과 토익을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4개월 남짓 지원을 받으면서 자격증과 토익 점수를 취득했다. 감사 인사를 드린 뒤 대학원 생활을 마무리했다.


2015년 말부터 강원도로 내려갔다. 부모님 집에 머물면서 취업을 준비했다. 안정된 생활이 필요했고, 공기업에 취업하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은 친구분이 사용하지 않는 옥탑방에서 지내셨다. 4층에 위치한 작은 옥탑방, 언제 지어졌는지도 모르는 그 작은 집은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였다. 아버지 친구분의 따뜻한 도움이 아니었다면 부모님은 고시원에서 지내셨을 것이다.


강원도의 겨울은 유난히 춥다. 그리고 우리가 머물던 그 옥탑방도 추웠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거실 한가운데 연탄난로를 들여놨다. 당시 연탄 한 장의 가격은 500원 정도였다. 매 겨울마다 부모님은 연탄을 살 돈이 모자라서 1월에서 2월 사이 가장 추운 기간에만 연탄을 땠다.


출처 Naver image


총 3줄로 9개가 들어갈 수 있는 난로였는데 아무리 추워도 한 줄만 채워서 연탄을 아꼈다. 연탄이 빨리 닳을까봐 공기 흡입구를 거의 막아 놓았다.


우리 가족은 난로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잤다. 방 안은 웃풍이 너무 심해 들어갈 엄두도 못 냈다.


밤중에 연탄이 꺼지면 다시 불을 피울 때까지 정말 춥기 때문에 종종 일어나서 확인했다. 다 타버린 연탄을 옥상에 가져다 놓고 새로운 연탄을 가져다 불 위에 올렸다.


난로 뚜껑을 열면 집에 연탄 냄새가 가득 찼다. 밤중에도 창문을 열고 환기를 했다. 부모님은 다 쓴 연탄을 양손 가득 들고 4층 계단을 매일같이 오르내렸다.


연탄을 때도 웃풍이 너무 심해서 집안이 많이 추웠다. 부엌 테이블에 올려둔 물이 꽝꽝 언다. 집안에서 패딩 잠바를 입고 양말을 두 개씩 신었다. 난로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난로 주변에 샤워 커튼을 쳤다.


그중에서도 얇은 벽으로 옥상과 분리되어 있는 화장실이 가장 추웠다. 변기에 앉으면 찬 공기에 몸이 덜덜 떨렸다. 씻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추운 겨울, 옥탑방과 연탄난로의 낭만은 없었다. 집없는 설움과 매서운 추위, 가난은 현실이었다.




새로운 시작



빨리 취업해야 했다. 가족과 함께 열악한 환경을 벗어나고 싶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전공과 적성검사 문제를 풀었다.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자기소개서를 썼다.


아침마다 책상 위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가족, 여자친구의 이름을 적었다. 묵묵히 나를 기다려주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빨리 보답하고 싶었다.


점심 식사 시간과 저녁식사 시간에만 자리에서 일어났고 하루 종일 앉아서 문제를 풀었다.


© inthemakingstudio, 출처 Unsplash


필기 시험을 합격하고 면접을 치른 뒤에는 합격자 발표일까지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일했다.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면 다시 필기를 공부했다.


최종 면접까지 갔다가 탈락하는 횟수가 쌓일수록 공부를 지속하는 일이 힘들어졌다. 불합격 소식을 가족과 여자친구에게 알리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몇 차례의 최종 탈락 후 2016년도 중순에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 합격했다. 서울에서 다른 회사의 면접 준비를 하다가 합격 통보를 받았는데 소리를 지르면서 뛰었다.


바로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합격 소식을 전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많이 우셨다. 고맙고 축하한다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부모님과 여자친구가 기뻐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나로 인해 가족들이 행복해하는 그런 순간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기억들이다.


6개월 남짓한 취업 준비 기간이 지나고, 우여곡절 끝에 나도 직장인이 되었다.


© benwhitephotography, 출처 Unsplash


취업을 준비했던 기간은 나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부모님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앞으로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였다. 부모님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보면서 더욱 이 악물고 준비했다. 반드시 가난을 벗어나겠다고 매일매일 다짐했다.






평범함의 기준은 늘 상대적이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원하는 것일 수 있다.


2020년 기준 전국 연탄사용가구 비율은 0.4% 정도라고 한다. 연탄 한 장의 가격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치인들이 버스 요금을 모르는 것처럼, 연탄 한 장의 가격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99.6%의 평범함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가난의 그림자에서 해가 닿는 곳으로 손을 뻗고 있는, 사회에서 각자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게 몸부림치고 있는 김무명들이 있다.



... 7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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