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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 김무명 Jan 26. 2021

#5. 고백에 의한 고백

너무 좋아해서 그랬다

2012년, 봄



내 대학 생활은 집, 학교, 아르바이트가 전부였다. 아침에 학교에 가고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마치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와서 잤다. 빈틈없는 반복 안에서, 나의 시간은 쉼없이 달렸다. 


20대 초반의 나이, 이성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로맨스 영화 같은 아름다운 사랑을 꿈꿨다. 수업이 없는 공강 시간에는 학교 도서관에서 과제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 


© getcroissant, 출처 Unsplash


건너편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여자분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괜히 마음에 바람이 불었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까 봐, 내 자리에 쌓인 책의 제일 윗자리는 가장 멋진 제목을 가진 책이 차지했다. 


2012년 봄, 생애 첫 소개팅이 잡혔다. 우리는 만나기 일주일 전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아동문학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기 때문에, 군대를 다녀온 나보다 어리지만 벌써 직장인이었다.


메신저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던 그 시간 동안 난 이미 그녀에게 반해있었다. 문장에 녹아있는 따뜻한 배려가 좋았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다정함이 좋았다. 


만나기로 한 날 하루 전에 약속 장소인 홍대로 나왔다. 서울에서 지낸 지 몇 년이 되었지만 홍대에 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와의 첫 만남에 헤매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데이트 코스 사전 답사를 했다.


© sigmund, 출처 Unsplash


그리고 다음 날 저녁. 나는 홍대입구역 8번 출구 앞에 있었다.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메신저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했다. 손을 흔들며 웃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고,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렇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연애의 무게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서 돈이 조금 더 필요했다. 돈 없는 대학생이었지만 직장인 여자 친구를 데리고 김밥 천국만 갈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싶었고, 즐거운 데이트로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르바이트 구인 광고를 찾아봤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눈여겨봤던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가산에 위치한 택배 회사였는데, 담당자에게 문자를 보내고 몇 분 후에 연락이 왔다. 아침 일곱 시부터 시작이니까 여섯 시 삼십 분까지 오면 된다고 했다. 


아침 일곱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일하면 하루 오만 원 정도 받았던 것 같다. 한 달만 넘게 해도 백만 원 이상 벌 수 있었다. 


편한 옷을 입고 물류 센터에 도착했다. 간단한 서류 작성을 하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창고로 들어갔다. 


Ohmynews


축구장 두세 개는 될 법한 넓은 물류 센터의 이질적인 분위기에 압도됐다. 높은 천장에 컨베이어 벨트가 어지럽게 엮여있었고 화물을 쌓아두는 빠레트 위에 택배 상자들이 쌓여있었다. 


창고의 양쪽 벽면에는 수십 개의 거대한 셔터들이 다 열려있었는데, 대형 트럭이 후진으로 들어와서 택배 상자들을 꺼내기도, 채워 넣기도 했다.


일곱 시가 되자 아르바이트생들을 불러 모아서 간단한 교육을 하고 지역 배정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오래 일한 사람들은 비교적 덜 힘든 지역에 배정되고,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신참들은 일이 많은 인천 지역에 배정됐다.


업무에 익숙한 고참 한 명과 신참 한 명이 하나의 라인을 담당했다. 상냥한 말투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택배를 트럭에 싣고 나면 빈 트럭이 곧장 들어온다. 자리를 비우면 고참 한 명만 남기 때문에 화장실도 가기가 어렵다. 쉴 수 있는 시간은 트럭이 나가고 다시 들어오는 시간뿐이었다.


blog.naver.com/dh6571/221929131106


땀을 많이 흘려 목이 탔다. 물을 마시고 온다고 말하고 정수기로 뛰어갔다. 정수기 위에는 종이컵이 아닌 커다란 흰색 플라스틱 대접이 놓여있었다. 가득 채운 물을 두어 번 마시고 난 뒤 다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뛰어갔다. 


길고 긴 하루가 지나고 퇴근할 즈음엔 온몸이 뻐근했다. 다리는 힘이 빠져 덜걱거리고, 핸드폰을 잡은 손은 힘이 빠져 떨렸다.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에서는 땀냄새 때문에 눈치가 보였다. 


그러다가도 여자 친구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확인하는 순간,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됐다.


다음 날 아침이면 무거운 몸을 끌고 다시 물류 센터로 향했다. 노동으로 버는 돈에 비례하여 살이 급격하게 빠졌다. 한 달 만에 내 몸무게는 칠 키로가 줄어 있었다.





고백에 의한 고백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 당연하게도 씀씀이가 늘어났다. 어딜 가든지, 무엇을 먹든지 돈을 써야 했다. 여자 친구와 거의 반반씩 냈지만 그것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다.


여자 친구와는 만 원이 넘는 파스타를 먹었다. 버스를 타기 힘들 때는 함께 택시도 탔다. 100일을 기념하는 날엔 백화점에서 처음 물건을 사봤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잘해주고 싶었고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다.


개강이 다가오면서 나는 택배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기로 하고, 고수익을 벌 수 있다는 생동성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생동성은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의 준말이다. 생동성 시험의 목적은 임상 시험을 통과한 복제약이 기존에 나와있는 약과 동일한지 확인하는 것이다.


여자 친구에게는 비밀로 하고, 고혈압 약을 먹는 생동성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1차 입원, 2차 입원까지 하면 60만 원 정도의 괜찮은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 Big_Heart, 출처 Pixabay


1차 입원 이전에 지원자의 적합성을 확인하기 위한 신체검사를 했다. 병원에 방문하여 피를 뽑고 혈압 검사를 하는데 혈압이 너무 낮았다. 최고 혈압이 80 정도밖에 나오지 않아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신체검사 전날까지 택배 상하차를 했고,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급격하게 체중이 줄었던 것이 저혈압의 원인인 듯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생각했다. 


나에게는 익숙한 가난이 새삼 참, 거슬렸다. 여자 친구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여자 친구에게 할 말이 있다고 연락했다.


© silviarita, 출처 Pixabay


우리는 자주 가던 공원에서 만났다. 나는 오늘 생동성 아르바이트를 갔었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생동성이 뭐 하는 것인지에 대해 물어봐서 설명했다. 그렇게까지 돈을 벌어야 하냐는 여자 친구의 말에 나는 연애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했다. 


우리 집이 조금 어렵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보증 빚이 많아서 스무 살부터 독립했다고, 생활비며 학비며 감당하느라 바쁘다고 말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말했다. 내가, 보통의 연애를 하는 게, 나한테 좀 버겁다고, 나는 사실 좀 가난한 것 같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그렇게 공원에 서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서로에 대해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여자 친구는 내가 헤어지자고 말할 줄 알고 걱정했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꼬옥 안아주면서 고맙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고백에 의해 가난을 고백했다. 너무 좋아해서 그랬다.




혼자일 때는 괜찮았다. 두 평 남짓 반지하 방에 사는 것도, 낡은 옷을 입는 것도, 선착순으로 판매하는 천오백 원짜리 백반을 먹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영역에 들어오면서, 가난은 죄책감이 된다. 나의 일상에 우리의 일상을 맞추게 된다.


나만 참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참게 해야 할 때, 가난은 더욱 아프게 와닿는다.



... 6편에서 이어집니다.


☞ #6. 가난엔 낭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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