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리틀 포레스트는 어디 있나요?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아파트가 철거되기 직전이었다. 20년 넘게 살던 아파트에서 이사를 나오던 날, 넓지도 않은 단지를 여러 바퀴 돌았다. 칠이 다 벗겨진 정글짐에 올라 있자니 정신없이 어른이 되는 동안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것들이 떠올랐다. 수년 전에 사라진 정문 건너편 사진관과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소꿉친구의 빈자리도 뒤늦게 실감이 났다. 단지 건물이 부서지는 것뿐인데, 어린 내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 같아 한약을 삼킬 때처럼 쓴맛이 났다.
자전거를 타고 좁은 숲길을 달리던 혜원(김태리)가 어려서부터 살던 집에 내린다. 엄마는 없지만, 쌀도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여전히 그곳은 혜원의 집이다. 서울 생활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은 익숙한 동네에서 사계절을 온전히 보낸다. 눈밭에서 배추를 뽑고, 몸을 녹이기 위해 수제비를 끓이고, 친구들과 나눠 먹을 막걸리를 빚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나 다시 겨울이 오는 동안, 혜원은 떠난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는 버림받았다는 배신감에 구겨버렸던 엄마의 쪽지를 다시 읽어내려간다.
네가 언제든 털고 일어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고 싶었어.
과부가 되어서도 딸과 함께 시골집을 지킨 엄마. 혜원은 그제야 엄마의 리틀 포레스트가 딸에 대한 사랑이었음을 깨닫는다. 본인도 엄마처럼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겠다고 나섰지만, 엄마를 이해한 것만으로 이미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힘든 상황을 의연하게 넘어갈 수 있었던 건 늘 제자리에 있어 주는 '리틀 포레스트' 덕분이었다.
혹자는 시골 생활에 대한 여느 도시인의 동경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나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이 부러웠던 건 아니다. 절망적인 순간에 도망갈 곳이 있다는 게, 애쓰지 않아도 되는 '리틀 포레스트'가 있다는 게 질투가 났다. 그게 설령 도둑이라도 들면 다 털릴 것 같은 집이라 해도.
영화는 은숙(진기주)의 대사를 빌려 조직 생활에 찌든 직장인을 위로하고, 재하(류준열)을 통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응원한다. 그와 동시에 나지막이 묻는다.
당신의 리틀 포레스트는 어디 있나요?
영화관 벽면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관객에게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상영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 / 아스가 파하디
영화가 끝났고, '리틀 포레스트'를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다. 어쩌면 지나온 날에서 발견할 수도 있고, 차차 만들어 가야 할 수도 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이제 그 모습을 잃었지만, '리틀 포레스트'를 찾는 건 개인의 몫이니 억울하지는 않다. 다만 언젠가 그곳에 닿게 된다면, 변화를 피할 수는 없어도 몽땅 사라지지는 않게 잘 가꿔야겠다.
: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