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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락 May 02. 2021

「피카소 : Into The Myth」를 봤다.

영감을 얻었다.

"그림은 보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Un tableau ne vit que par celui aui le regarde.  



나의 취미 중 하나는 그림 모작하기다. 물론 모작이라고 부르기도 창피한 수준이긴 하지만, 시간도 잘 가고, 작품을 좀 더 세심하게 보게 된다는 점에서 재밌는 일이다. 이런 나의 취미의 시작점에 있던 그림은 바로 피카소가 그린 「우는 여인, Femme an pleurs, 1937」이다. 다채로운 색, 왠지 모르겠지만 사람처럼 보이는 피사체의 모습을 보고 형형색색의 싸인펜을 들고 점묘법으로 그림을 그렸다(피카소의 그것을 따라가기엔 많이 부족했지만). 그래서 이번 「피카소 : into the myth」 전시를 보러 갈 때, 조금 들뜬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나의 이와 같은 감정을 제대로 충족시켜 준 전시회였는데, 이를 대변해주는 세 작품을 통해 글을 쓰고자 한다.      


 

 피카소의 작품에 관한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그의 작품관에 관해서 얘기하고자 한다. 피카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작품은 나의 피로 채워진 유리병이다(『PICASSO Into The Myth』, 140주년 전시회 도록, p.32).” 이 말은 곧, 피카소에게 작품이란, 화가 본인의 모습이기도 하며, 화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피카소는 추상 미술이 시도하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무엇을 그린 사람이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삶과 얘기를 말해주고 있다.      

창문 앞에 앉아있는 여인(Femme assise devant la fenêtre), 1937

 위의 그림은 5. 피카소와 여인 섹션에 전시된 「창문 앞에 앉아있는 여인, Femme assise devant la fenêtre, 1937」이다. 큐비즘으로 표현된 이 그림 속 여인은 백발의 머리와 푸른 피부 빛을 지니고 있다. 옆에 있는 그림의 모습 보다 훨씬 더 짙은 푸른색이라, 창백한 느낌 마저 든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다른 그림과 달리 유화와 파스텔을 불규칙하게 파낸 듯한, 혹은 일부러 배경 위에 색을 덜 칠한 듯한 흔적이 있는데, 이를 통해 그림 자체가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치 자연적인 바람에 쓸려 유화가 떨어져 나간듯한 느낌 말이다. 

 이 그림을 좀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그의 뮤즈였던 마리 테레즈 발테르에 관한 얘기를 해보자. 피카소가 러시아 발레단의 무용수 올가 코클로바와 결혼하고 가정을 이뤘던 1926년, 그는 파리 중심가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 앞을 지나는 17세의 그녀를 발견한다(당시 피카소의 나이는 45세였다). 이윽고 그녀가 성인이 된 해부터 아내 몰래 그녀와 불륜(책에는 밀월이라 적혀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륜이 아닌가?) 관계를 시작한다. 이후 1937년 관계가 막을 내리기까지 마리 테레즈는 그의 작품에서 가장 빛났던 뮤즈이자 모델이었다. 

 이제 그림이 그려진 연도를 보고 다시 그림을 보면, 피카소는 위의 그림을 통해 마리 테레즈와의 이별을 암시하는 듯하다. 백발의 머리를 통해 우리는 피카소가 그녀의 나이 든 모습을 그렸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나이 든 여인의 모습을 통해 피카소는 이제는 마리 테레즈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은 느끼진 못하지만, 그녀와 보냈던 추억을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이다.      


 위의 그림은 6. 전쟁과 평화, 한국에서의 학살 섹션에 전시된 「한국에서의 학살, Massacre en Corée, 1951」이다. 일단 그림 자체만을 두고 보면 굉장히 명확하다. 왼쪽에는 자신을 보호할 그 어떤 장치도 없는 여인들과 아이들이 서 있고, 오른쪽에는 중무장한 남성들이 총을 겨누고 칼을 들고 있다. 어떤 여인은 울고 있고, 어떤 여인은 이미 체념한 상황이다. 한 아이는 놀라는 표정이고, 한 아이는 이런 상황도 모른 체 꽃을 보기 위해 몸을 숙이고 있다. 나는 중학교 때 이 그림을 봤을 때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알 수 있다’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그림 속에 훨씬 더 많은 얘기가 담겨 있었다. 

 먼저 이런 질문을 해보자. 왜 그림 속 여인들은 왼쪽에 있고, 남성들은 오른쪽에 있을까? 이에 관한 해답으로 전시회 안에 설명으로 나오는 고야와 마네의 그림을 들 수 있지만, 나는 조금 더 상상력을 가미하고자 한다. 이전에 영화 「조커. 2019」에 관해 썼던 글의 일부분을 인용하고자 한다. 왼손잡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왼손잡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소수였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왼손잡이라고 욕하지 않지만, 남아 있는 단어나 속담이 이를 증명한다. 서구권에서 왼손은 Squiffy(술취한 손)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인도에 가면 왼손은 불경한 행위에 이용하는 손이고, 오른손은 일상적인, 종교적인 의식에 사용되는 손이다. 1992년에는 전 세계에 왼손잡이를 차별하는 시선을 줄이고자 “세계 왼손잡이의 날”을 만들었다. 여성들을 왼쪽에 위치시켰다는 것은,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여성 소수이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약자임을 명확히 드러낸다. 

 그림 속에 여인들과 아이는 표정을 가졌지만, 남성들은 철가면에 의해 표정이 보이지도 않고, 검은 눈만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파블로 피카소가 그림 속에서 공감과 이성을 대비시켰다는 걸 알 수 있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타자는 약하고 헐벗은 자다. 타자는 우리에게 얼굴로 호소하고 명령한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얼굴이 외면적인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림 속 헐벗은 여성들의 얼굴은 레비나스의 말처럼 우리에게 명확히 이렇게 말한다. “살려주세요”, “쏘지 말아요”. 그림은 이를 통해 공감이 결핍된 주체 중심의 전통적 서구 이성과 타자 중심적인 윤리의 대립을 보여준다. 

 위의 그림은 7. 마지막 열정 섹션에 전시된 「칸느 해안, La Baie de Cannes, 1958」이다. 일단 이 그림은 전시회 안의 그림 중 가장 오랜 시간 머무른 그림인데, 그 이유는 보자마자 여름 해안의 청량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청량한 느낌을 들게 하는 요소로 나는 그림 전반에 햇빛을 표현하기 위해 그린듯한 흰색이다. 그림 테두리, 창문, 그리고 바다를 보면 햇빛에 의해 반사된 빛을 표현한 것처럼 흰색이 칠해져 있다. 이것의 존재가 나에게 뜨거운 여름 한낮의 해안가를 연상시키게 만들었다.

 피카소에게 지중해라는 바다는 매우 중요하다.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그는 지중해 근처에 살았으며, 60대에 들어서는 완전히 지중해 연안에 정착했다. 1955년, 그는 자클린과 함께 살며 칸느 해변이 보이는 언덕에 빌라를 구입했다. 이를 고려하면, 그림이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도로 그려진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다른 전시회들 보다 다양한 굿즈를 팔았는데, 특히 도록이 매우 마음에 든다. 전시회에선 소개되지 않았던 피카소에 관한 에세이들도 수록됐고, 작품에 관한 해설도 친절하게 적혀있다. 코로나 19 임에도 5월 1일 당일에는 많은 사람이 방문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방문한다면 안전하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지 않을까. 인상 깊었던 피카소의 문장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겠다.


"내가 어린 아이처럼 그리는 걸 배우는데 평생이 걸렸다."



그림 출처 : 창문 앞에 앉아있는 여인, Femme assise devant la fenêtre, 1937 Femme assise devant la fenêtre - Pablo Picasso - 1937 - Les 3èmes  à Paris - Avril 2016 (weebly.com)

한국에서의 학살, Massacre en Corée, 1951 « Massacre en Corée » de Picasso sera exposé pour la première fois en Corée du Sud :: KOREA.NET Mobile Site

칸느 해안, La Baie de Cannes, 1958 Picasso, le grand Méditerranéen (art-critiq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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