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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락 Mar 15. 2021

「Green book」을 봤다. 감동이었다.

미국 근현대사 공부를 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죠



치킨은 못 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린북 스틸컷]



어느 나라든 근현대 문화를 담은 영화는 굉장히 재밌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불과 수십 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인식의 차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각국이 다른 문화를 보여주지만, 그 중심에 있는 건 지배 세력과 피지배 세력의 차별에 근거한다. 남성과 여성, 국가와 개인, 백인과 흑인 등 말이다. 이와 같은 차별로 인하여 개인의 정체성은 말살되고 큰 이름에 의해서만 정의 내려진다. 오늘은 미국의 1960년대 차별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영화 「그린 북」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




「그린 북」은 1960년대에 실존 인물인 클래식 및 재즈 피아니스트인 돈 셜리와 그가 운전사 및 매니저로 고용한 토니 립 발레롱가가 함께 남부로 떠나는 영화다. 작품의 제목은 미국에 실존하던 책 “The Negro Motorist Green Book”에서 유래하는데, 책 속에는 흑인이 지나갈 수 있는 동네, 흑인이 묵기 좋은 숙소 등의 정보를 담았다. 영화 포스터를 봤을 때, 우리는 돈 셜리는 흑인이고, 토니 립 발레롱가는 전형적인 백인이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미국 백인이 아니라 이탈리아인이다. 이 영화가 인종 차별을 주제로 한 다른 영화보다 흥미로운 점은 둘의 국적에 있다.

 우리는 흑인이 극심한 인종 차별을 당했다는 걸 알지만, 과거 미국 사회에서 이탈리아인도 인종 차별을 당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백인들은 같은 백인이더라도 고향이 어디냐에 따라 서로를 구분했는데, 이탈리아인의 경우 가난한 남부 지방에서 온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원래 이탈리아에서 했던 일(거친 일들)을 미국에서도 했는데, 이로 인해 이탈리아계 미국인에 관한 인식도 좋지 않았다. 작중에서도 발레롱가는 이런 말을 한다. “저런 저택에 사는 놈들(백인들)보다 노점상 하는 유대인하고 더 공통점이 많아요, 난.” 또한, 거친 일을 하는 직종이어서 사용하는 말의 표현 방식도 다른 계층과는 달랐다. 영화를 보면, 발레롱가가 아내에게 편지를 쓸 때 돈 셜리가 어휘를 지적하는 부분이나, 발레롱가의 별명이 "떠버리"인 것에 돈 셜리가 질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들이 위와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두 인물은 인종에서 시작하여 조금 더 극명하게 나뉜다. 돈 셜리는 원리와 원칙대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발레롱가는 그런 걸 모른다. 돈 셜리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하대하는 백인들의 행동에 화를 내기보다는 감내하지만, 발레롱가는 그런 백인의 행동에 화를 내고 때린다. 이런 둘의 모습, 그리고 유색인종을 극도로 싫어하는 남부로 투어를 떠난다는 내용 때문에, 극은 초반부터 여러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무거운 긴장감을 준다. 이 작품은 긴장감을 단번에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여러 연출을 통하여 천천히 녹인다. 그중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한 번 얘기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장면은 피츠버그에 도착했을 때, 발레롱가가 이탈리아 말을 들은 순간이다. 작중 돈 셜리를 소개하는 한 여성은 그를 보고 “진정한 비르투오소(virtuoso, 덕(arete)이 있는)”라고 한다. 이때 발레롱가는 “비르투오소, 이탈리아 말이지, 아주 잘 한다는 뜻이오."라고 옆에 서 있는 다른 운전사에게 말한다. 여행 전까지는 흑인을 혐오하고, 왜 이렇게 돈 셜리가 까탈스럽게 행동하는지 이해 못 하던 발레롱가는 그의 연주를 듣고 왜 그가 비르투오소라고 불리는지 깨달은 것 같은 표정을 짓는다.


두 번째 장면은 켄터키 지역에 도착해서 같이 치킨을 창밖으로 버리는 장면이다. 켄터키 프라이트 치킨을 산 발레롱가는 운전하며 그에게 한 조각 먹을 것을 권한다. 담요에 기름이 묻는 게 싫다며 거절하던 그는, 계속되는 권유에 못 이겨 한 조각을 먹게 된다. 접시도 포크도 없이 음식을 어떻게 먹냐고 반문하던 돈 셜리는 닭 다리를 다 뜯은 다음 발레롱가에게 어떻게 처리하냐고 묻는다. 그러자 치킨 뼈를 창밖에 던지면 발레롱가는 “이게 우리 방식이오."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처음에 카메라 초점은 발레롱가를 향하다가 자연스럽게 그의 뒷자리에 앉은 돈 셜리로 초점을 옮긴다. 돈 셜리는 창문을 내리고 팔을 곧게 펴 선을 그리며 치킨을 창밖으로 던진다. 이후 다시 발레롱가에게 카메라 초점이 옮겨지고, 그는 “잘하시네”라고 말한다. 이전까지는 서로 행복하게 웃는 장면은 없었는데, 이 순간 둘은 하나가 된 듯 행복하게 웃는다(물론 이후 음료 컵도 밖에 버리는 바람에 다시 정색하지만).


세 번째 장면은 버밍엄에 가기 전에 나오는 숙소에서 둘의 대화 장면이다. 남부 투어를 떠나기 전 발레롱가의 부인은 그에게 편지를 써달라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쓰고 있던 도중, 그가 편지를 쓰는 방식을 본 돈 셜리는 일종의 교정을 해준다. 그렇게 여러 번 교정을 도와줬는데, 버밍엄의 숙소에서 발레롱가는 그의 도움을 받지 않고 편지를 쓴다. 그 장면을 본 돈 셜리는 “줘봐요, 고쳐줄게요.”라고 말한다. 발레롱가는 “괜찮아요, 이제 나도 감 잡은 것 같으니까.”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들은 돈 셜리는 ‘뭔 소리지?’하는 표정으로 편지를 뺏고 난 다음 천천히 읽는다. 이윽고 그가 쓴 글을 읽고 난 다음 흡족한 표정으로 ‘감 잡은 거 맞네요’라고 말한다.


두 장면 보다 세 번째 장면을 좀 더 정말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흔히 좋아하면 닮는다고 말한다. 먹는 취향부터 시작해서 서로의 행동이나 말하는 표현 방식 등이 닮아간다. 숙소에서 둘의 대화 장면은 이를 잘 보여준다. 편지를 써야 하는 이유조차 모르던 발레롱가는 어느덧 돈 셜리와 비슷한 표현 방식을 가지게 됐다. 늘 언제나 예의 있게 해동하던 돈 셜리는 그가 편지를 준다는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지만, 강제로 편지를 뺏는다. 발레롱가는 좀 더 아름다운 표현 방식을 돈 셜리로부터 배웠고, 돈 셜리는 자기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이 장면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인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게 믿기 힘들 정도로 차이가 큰 두 인물이 친구가 되는 과정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단순히 인종 차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계층 간에 향유하는 문화의 차이를 음악, 옷, 음식 등 다양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래서인가, 비슷한 주제를 다른 영화와 비교했을 때, 굉장히 잘 만든 작품이라고 느꼈다.


코로나 이후 미국 사회에 동양인을 차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를 들으면, 2021년에도 여전히 인종 차별 문제는 유효한 담론이다. 우리는 이미 어떤 인종이 무슨 특성을 가졌다는 얘기가 허무맹랑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잘못했다고, 그가 속한 국가나 사회 전체를 매도할 수 없다. 일반화의 오류가 불러온 참혹한 현장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도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린 북의 존재처럼 구분 짓기에 힘쓰는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를 보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추신 : 영화 속에는 좋은 연출 장면이 여럿 있다. (1) 발레롱가와 많은 대화를 나누기 전에는 그의 뒤통수만 보이는 뒷자리(왼쪽 좌석)에 앉는다. 영화의 후반부에 가면 그는 토니의 옆면이 보이는 뒷자리 오른쪽 좌석에 앉는다. (2) 차가 고장 나서 멈췄을 때, 도로의 중앙선 너머로 농장에서 일하는 흑인들의 모습이 나온다. 차에서 내린 돈 셜리는 냄새가 나서 짜증이 나는 표정을 지으며 손수건으로 냄새를 쫓다가 그들의 모습을 본다. 이후 그들이 자신을 지켜보는 표정을 보고 두 손을 공손히 모은다. 도로의 중앙선과 발레롱가의 존재는 이를 더욱 극대화한다. (3) 처음으로 편지를 교정할 때, 발레롱가는 마지막에 “추신 : 애들에게 키스해 줘.”를 써도 되냐고 묻는다. 이에 돈 셜리는 “그건 마치 쇼스타코비치 7번 마지막에 카우벨 울리는 격이다.”라고 말한다. 발레롱가는 “음... 좋다는 말이죠?”라고 답하는데, 돈 셜리는 “완벽해요, 토니.”라고 말한다. 실제로 1시간 16분 정도 되는 쇼스타코비치 7번의 마지막에 카우벨이 들어가면, 굉장히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자신의 방식으로 교정하지만, 발레롱가의 표현도 존중해 주는 돈 셜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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