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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Nov 25. 2022

메뚜기도 한철, 인생도 한철

 눈 뜨자마자 학교, 집, 학원, 집을 뱅뱅 돌고 돌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또 사랑을 하며 젊음을 불태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를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날도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엊그제 같습니다. 


 사방에 활짝 핀 꽃들, 그 옆에 핀 이름 모를 잡초들, 주위를 노니는 동물들의 여유로움은 물론

 하늘이 뻥 뚫린 듯 내리는 장마, 세상을 집어삼키는 태풍, 손발을 꽁꽁 묶어 버리는 폭설의 두려움도

 질풍노도의 사춘기, 패기만만한 청춘, 두 번째 스무 살인 불혹, 중년과 작별을 고하는 갱년기까지

 지나고 나면 찰나의 순간,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모래와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생명체는 생애 주기를 따릅니다. 미성숙한 유년기를 지나 육체적으로 건장한 성년기를 거쳐 노년기로 접어듭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혈기왕성한 시절에는 제때를 만난 듯 멋모르고 날뛰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을 풍자적으로 일컫는 속담이 있습니다.

 '메뚜기도 한철이다.' 


 메뚜기는 여름철이 되면 온 들판에 퍼져서 마치 세상의 주인인 마냥 번성합니다. 그 왕성했던 활력과 번식도 여름이 지나면 한풀 꺾여 자생력을 잃고 사라져 버립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나름 전성기가 있지만 성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 오직 한때에 불과하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도 예외일 순 없겠죠. 


 '메뚜기도 여름철이 한철이다'라는 속담을 들은 매미가 발끈합니다. 한철 속담의 주인공은 메뚜기가 아닌 매미 자신이라면서요.

 어두컴컴하고 무서웠던 기나긴 땅속의 시간을 오로지 여름 한철을 나기 위해 겨우내 기다렸습니다. 땅속에서 긴긴 시간을 견뎌내다 대를 이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땅 위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을 목이 터져라 짝을 부릅니다. 햇빛은 이글이글 끓어오르고 불에 덴 듯이 뜨거운 날을 온몸으로 받고 부딪치면서 말이죠.

 고독한 땅속의 시간과 치열한 땅 위의 시간, 매미로서는 어떤 시간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매미보다 조금 더 길게 생존하는 메뚜기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언제나 지금에만 충실한 게 생명의 본업이니까요. 




 옥수수도 한철, 자두도 한철, 오이도 한철, 수박도 한철.

 꼬꼬마 철부지도 한철, 파릇파릇한 청춘도 한철, 늙어가는 이 시간도 한철.

 한철인 게 어디 메뚜기뿐이겠으며 인생에서 한철 아닌 게 어디 있겠습니까? 살아온 모든 순간이 지나고 나면 한철이었습니다.  


 오늘 상황이 죽을 만큼 안 좋다고 해서 슬픔에 잠기고 기분이 다운되어 축 처져 있을 필요 없습니다. 지금 하는 일마다 술술 풀린다고 호들갑 떨고 자랑할 이유도 없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라고 합니다. 바꿔 말하면 모든 게 한철이라는 뜻이겠죠. 


 사는 게 다 순간입니다. 짧게 잡든 길게 잡든 한철, 안 좋다가도 또 좋은 순간이 오고, 좋다가도 안 좋은 때가 오는 게 인생살이, 성공했다고 우쭐하고 뜻을 이루었다고 의기양양하지만 메뚜기 한철처럼 오래 지속될 수 없을 테니 겸손하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늘 겸손한 자세로 인생을 살자... 너무나 뻔하지만 겪고 나면 옳은 말 아니던가요? 




 한철을 살며 한철을 버티며 한철을 살아내는 것, 삶이라는 게 한철 한철이 모여 여정을 완성해가는 과정입니다.

 오늘 이 순간도 늘 한철에 머물고 있습니다. 가버린 어제도 한철이었고요, 아직 오지 않은 찬란한 미래도 한철일 테죠. 어떤 게 중요하십니까?


 두말하면 잔소리,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지금(present)이 선물(present)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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