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스리랑카는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을까?
스리랑카와 서울간에는 대한항공 직항이 있다.
이병헌이 '내부자들'에서 슬프고도 해맑게
"모히또 가서 몰디브니 한잔 할까?" 했던 바로 그 산호섬.
최종 목적지인 몰디브 말레로 비행하는 중간,
수도 콜롬보를 2시간여 기항한다.
커플티를 맞춰 입은 신혼 여행객들은 2시간여 콜롬보 공항 기항 동안
선물로 실론티만 사고 콜롬보에 내리지는 않는다.
한국 문화에서 촉박한 신혼여행 휴가를 몰디브에서 다 쓰는 바람에 시간이 없다.
인도나 동남아처럼 배낭여행객들도 많지 않다.
일단 한국에서 출발하면 동남아에 비해 서남아는 비행기표가 비싸다.
호불호가 있지만 중독성으로 여행자를 끌어당기는 인도에도 밀린다.
한국에서는 인도에, 동남아에, 몰디브에 밀렸지만
스리랑카는 유럽과 호주에는 꽤 알려진 휴양지이다.
2018년 세계적 베스트셀러 가이드북 론리 플레넷이
오랜 내전으로 알려질 기회가 적었던 스리랑카를 2019년 최고 여행지 1위로 선정했다.
그런데 하필 2019년 3월, 스리랑카 부활절 테러가 터졌다.
2020년에는 코로나가 전세계의 여행시장을 강타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스리랑카는 지금쯤 꽤나 핫한 여행지가 되었을까?
남한 3분의 2 크기의 이 인도양의 작은 섬에는 여행자를 끌어들이는 다양한 매력이 있다.
우선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된 문화가 존재한다.
인도 남동쪽에서 불과 35km로 끊이지 않는 분쟁과 교류의 역사,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약 450년간의 식민지 역사,
그렇게 오랜 기간 동서양의 영향으로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존재한다.
무려 6개의 UNESCO 문화유산이 주로 문화삼각지(Cultural Triangle)에 모여 있다.
고대도시 폴로나루와(Ancient City of Polonnaruwa)는
여러 왕조가 건축한 도시 유적지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연상시킨다.
성스러운 도시 아누라다푸라(Sacred City of Anuradhapura)는
다고바의 도시로 네팔의 카트만두와 닮아 있다.
시기리아 바위성 (Ancient City of Sigiriya)은
숲 한가운데 우뚝 솟아나 페루의 마추픽추를 떠올리게 한다.
담불라 벽화 (Rangiri Dambulla Cave Temple)는
인도에서 사라진 불교예술의 정화가 남아 있다.
옛 수도 캔디 (Sacred City of Kandy)는
식민지 시절전의 역사속으로 여행객을 부른다.
불교의 종주국이지만 힌두교에 흡수된 인도와 달리
스리랑카는 불교가 가장 큰 종교로 지금까지 번성하고 있다.
인도에서 불교가 전해졌다는 미힌탈레 유적
석가모니의 치아가 남아있는 불치사 등은
불교 신자들의 순례여행지이다.
마지막 UNESCO 문화유산, 골 성곽 (Old Town of Galle and its Fortifications)은
서쪽의 해안지대에 진주처럼 돌출하여 위치한다.
성곽에 오르면 포르투갈의 식민 역사가 바다를 향해 조용히 흐른다.
적도에서 북위 4도
우거진 녹음과 다양한 자연의 보고로,
2개의 UNESCO 자연유산도 보유하고 있다.
실론티의 주요 산지인 중앙고원지대 (Central Highlands of Sri Lanka)와
신할라자 산림지대 (Sinharaja Forest Reserve)이다.
근처에는 신성한 산 아담스피크가 위치한다.
이슬람과 기독교인에게는 아담이 하늘에서 쫒겨날데 처음으로 디딘 땅
불교도에게는 부처가 너바나에 도착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발을 디딘 땅
힌두교도에게는 시바경이 서 있던 땅
그 덕에 순례자의 산 5,200계단은 항상 붑빈다.
나라 전역에 촘촘하게 자리잡은 야생국립공원이 이어지고,
여행길에서 대수롭지 않게 야생동물을 만난다.
도시에도 정글에서나 볼 듯한 아름드리 가로수길이 대부분이다.
나무가 자라 길이 부서지면, 나무를 베지 않고 길을 고친다.
서퍼들을 유혹하는 멋진 파도,
동서남북 끝없는 해변의 바다 빛깔은 아름답다.
스리랑카에서는 바다를 피해 여행하기는 불가능하다.
중앙산맥위에서도 멀리 바다가 보인다.
서쪽 바다
콜롬보에가 위치한 서쪽 해안선에는 여행객을 부르는 특급 호텔과 부티크 호텔들이 줄을 이룬다.
신혼여행객을 유혹하는 럭셔리호텔에서 배낭여행자들의 숙소까지 다양한 숙소들이 바다를 끼고 자리잡았다.
콜롬보의 특이한 점 하나는 기차가 해안 바로 옆을 달린다는 거다.
까페며 식당들은 해안가 기차길에 해변을 내주고 물러앉았다.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골(갈레)까지 이 바다를 끼고 달리는 기차를 타면 파란 해변들이 남쪽 해안선까지 이어진다.
남쪽 바다
스리랑카는 작지만 아직 구불구불한 길이 많고 차선이 좁아 여행할 때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그나마 최근 완공된 고속도로로 콜롬보에서 3시간이면 남쪽의 도시 마타라에 이른다.
근교의 작은 어촌 미리사에서는 새벽부터 부산하게 고래를 찾아나선다.
동쪽의 항구도시 함반토타를 지나면 얄라 국립공원에 이른다.
흙곰, 표범, 조류, 코끼리..를 만나고, 해변의 사구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다가,
좀 더 동쪽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면 파도타기 서퍼들의 성지 아루감 베이다.
이국적인 젊은이들과 전통적인 문화가 뒤섞인 명랑한 흥청거림,
배낭여행객들이 모인 타운은 바람의 냄새가 다르다.
동쪽 바다
서쪽 콜롬보에서 동쪽 해안에 이르려면 중앙고원지대를 넘어야 한다.
기차로도 차로도 8시간의 긴 거리다. 서쪽의 해변보다 접근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덕분에 바티칼루아에서 트링코말레까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천혜의 해변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고요한 해변에서 아직도 주민들이 집단으로 고기잡이 그물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만난다.
동쪽 트링코말레에서 피죤섬으로 보트를 타고 들어가면 몰디브의 비췻빛 바다가 펼쳐진다.
서쪽 바다에서 이런 빛을 기대했는데,
산호가 자랄 정도로 물이 얕아야 비췻빛이라는 간단한 사실을 피죤섬에서 알았다.
그 많은 여행과 푸른 바다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다니...
여행은 정말 아는만큼만 보인다!
북쪽 바다
내전의 상처를 아직도 치료 중인 북쪽 해안에는 파아란 바다와 모래둔덕이 펼쳐진다.
스리랑카의 최대 민족은 싱할리인으로 주로 불교도이고, 인도계인 타밀족은 주로 힌두교이다.
타밀족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 인도와 가까운 북쪽 자프나 지역이다.
총알자국이 선명한 집들, 푸른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힌두의 신전들의 빛에 눈이 시리다.
인공위성에서 보면 아직도 바다밑에 인도와 이어진 다리가 보인다는
마나르 아담의 다리 근처는 마른 모래밭이다.
인도와의 국경으로 지금도 밀항으로 오고가는 사람들 때문에 긴장이 흐른다.
덕분에 해안선에 군부대가 많고 경계도 삼엄하다.
야생조류와 야생동물 국립공원을 지나 칼피티아 지역으로 들어서면 아름다운 해변들이 이어진다.
비운의 영국 황태자비 다이아나가 전세계에 중계된 행복했던 결혼식에 받았던
굵직한 블루 사파이어 반지. 바로 스리랑카산 사파이어다.
그리고 신밧드의 모험 7개의 여행 중 여섯번째 여행
좌초된 전설의 보물섬, 세렌디브. 바로 그 섬도 스리랑카다.
스리랑카 90% 지역에서 보석이 나온다고 한다.
콜롬보 시내에는 보석상이 많다.
신밧드의 후손들이까?
이슬람인들이 보석업을 많이 한다.
보석의 도시 라트나푸라에는 손에, 가방에 보석을 펼쳐 든 사람들이 부지런히 관광객에게 다가온다.
물론 가짜가 많으니 조심해야 하지만, 작은 채굴현장도 볼 수 있고, 보석을 깍는 보습도 볼 수 있다.
지도에 지역마다 다른 보석 조각을 넣은 기념품을 팔기도 한다.
신밧드의 보물섬 스리랑카에서
영롱한 빛들의 보석반지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인도의 눈물! 이라 불리는 지정학적 위치.
전체적으로 불교가 가장 강하지만, 북쪽으로 가면 힌두교의 문화가 강하다.
섬의 동쪽과 내륙에는 이슬람교도 복장을 한 사람을 만난다.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교회들도 많이 지어졌다.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종교, 인종, 문화가 공존한다.
2009년 26여년간의 민족분쟁이 종식되고 치안이 강화되었다.
2016년 도착한 콜롬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크게 안전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카오스의 인도를 여행한 여행자들은 스리랑카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내전으로 더욱 각박할 것 같은데, 왜 더 순박한 느낌일까?
섬 중앙의 산악지대와 바다로 이어지는 지역을 수놓는 녹색의 차밭 물결
빛나는 섬 스리랑카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실론티로 알려진 세계 최고 홍차 산지이다.
중국에서 시작되어, 아편전쟁의 빌미가 되기도 했던 홍차는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케냐로 전파되어 여러나라에서 재배되고 있다.
요새는 기계화로 대량의 차를 재배하는 곳이 많지만,
스리랑카는 아직도 정통의 방법으로 홍차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정글을 베어낸 자리에 단일작물 재배.
아픈 영국 식민지 역사에서 시작되었지만,
차산업은 지난 150여년간 소용돌이치는 역사속에서도
스리랑카 산업의 근간을 형성하며 성장하였다.
실론티라는 브랜드 네임을 세계에 각인시키며,
홍차의 품질로는 차의 종주국이라는 중국이나 인도에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발전하였다.
독립과 내전을 거치며 스리랑카는 실론이라는 식민지 이름을 버렸다.
하지만 실론티라는 브랜드는 버릴수 없었다.
실론티는 아직도 스리랑카의 대표 브랜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