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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Expat
Nov 16. 2021
새로운 나라에 도착하여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새롭게 애정할 것들이 생긴다. 애정은 관심이고 배움으로 이어진다.
스리랑카에 도착했을 때, 사실 나는 차를 잘 몰랐다.
언제부턴가 커피에 일상을 내어주어 차를 그리 즐기지도 않았다.
'세렌딥(Serendipity)', 우연히 만난 즐거움이라는 스리랑카의 또 다른 옛 명칭처럼,
여행의 우연한 즐거움으로 실론티를 만났다.
콜롬보 시내를 걷다 보면 어디나 티 카페와 티브랜드샵이 있었다.
시내의 호텔들은 대부분 멋진 애프터누운 티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여행객들은 분주하게 티 쇼핑에 바빴다.
내 선물가방도 다양한 차로 가득 차곤 했다.
예전 실론티 음료수 광고 덕에, 사람들은 스리랑카는 몰라도 실론티는 알았다.
인생이 늘 그러하듯이, 관심을 가지니 다른 세계가 보였다!
차 공부길에서 만난 사람들
어느 날 나의 시야에 들어온 스리랑카의 차에 눈을 돌리자,
마술처럼 차 관련 책 저자, 농장주, 중개인, 수출회사, 브랜드업자들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오랫동안 차는 스리랑카의 주산업이어서, 차 산업 관련자도 많았다.
차 공부 길에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차농장에서 차를 판매하는 옥션으로 중개하는 회사에서 사장님을 만나고,
차 수출 회사에 찾아가 직원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차 150주년 기념 책을 낸 저자와 만나 얘기를 나누고,
차를 관장하는 티보드를 찾아가 인터뷰하고,
차 농장주, 차농장 매니저, 차연구소 직원, 차 농부들도 인터뷰했다.
차 산지 우바에 Amba라는 유기농 차농장과 게스트하우스를 경영하는 부부도 만났다.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대부분 짧은 만남이었지만, 어떤 만남은 꽤 오랫동안 남았다.
Amba 농장의 두 주인, Orzu와 Chales 부부는 오랜 지인이 되었다!
실론티 생산지, 홍차 여행
구불구불 산길을 몇 시간을 달려도 끝없이 펼쳐지는 녹색의 차밭은 인상적이다.
콜롬보에서 출발하여 7시간 동안
캔디, 누와라엘리야, 하푸탈레, 엘라를 관통하는 산악열차를 타면 끝없는 차 밭을 지난다.
불교의 역사, 불치사가 남아 있는 옛 수도 캔디,
홍차의 샴페인이라 불리는 차 생산지, 누와라엘리야,
차밭 아낙들이 수고롭게 손으로 차를 수확하는 엽서 같은 풍경, 하푸탈레,
세계 3대 홍차 산지 중 하나인 우바 지역, 배낭여행자들의 작은 마을 엘라까지,
옛 식민 시대의 유산이자, 이제는 스리랑카의 주요 생산물인 대규모의 차농장이 펼쳐진다.
끝없는 해안가를 달려 다다르는 아름다운 성곽도시 골(갈레)에도
조금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소농들의 작은 차밭이 숨어있다.
식민지 시대의 아픈 역사를 견디고 근대를 거쳐 오늘까지 이른 스리랑카의 차밭에는
농부들의 구슬땀과 삶이 조용히 흐른다.
평생의 차를 마시다.
스리랑카에는 주로 홍차가 많다. 차를 분류하는 연구실에 가보면 종류도 수백 가지로 다양하다.
다양한 차를 마시며 색을 보고, 향을 음미하고, 맛을 기억하려 노력했다.
콜롬보 시내의 차 샵을 돌아다니고,
호텔의 에프터누운 티 프로그램을 찾아가고
여행길에서 주변 차농장을 찾아, 차 제조과정을 설명하는 견학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누와라 엘리야, 그랜드 호텔 딜마 샵에서 호사스럽게 홍차를 마셨고,
엘라 98 에이커 다원 언덕 위 레스토랑에서, 엘라 락과 리틀 아담스 피크를 배경으로 차 칵테일을 즐겼다.
골 옛 항구의 성벽 카페에서 바다의 파도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셨고,
우바 지역의 산속, 유기농 암바 차농장에서 티 테이스팅을 하며 전문가의 설명을 들었다.
첫사랑에 빠진 20대처럼
미지의 즐거움,
홍차의 바다에 빠져,
평생 마신 차보다 더 많은 홍차를 마셨다.
12년 묵은.... 논문!
30대에 시작해 수료만 하고, 졸업 못한 박사!
내겐 오랜 부채였다. 10년에 연장받은 2년, 기한도 끝나갔다.
후회할 것 같았다. 하자!
어차피 차 공부 중이니 주제도 '스리랑카 차 농부의 기후변화와 인권'으로 정했다.
근데 하필 코로나가 터졌다.
스리랑카는 공항도 거의 폐쇄하고 강력한 통행금지를 시행했다.
인터뷰를 할 수 있을지 불안한 날들 속에 논문의 앞부분을 썼다.
공항을 막아 관광업계는 고사 직전이었다.
통행금지로 코로나가 잠잠하자, 기적처럼 여행길이 열렸다.
공항은 계속 막았지만 국내여행이 허가되었다.
스리랑카를 떠나기 일주일 전,
꽤 많은 숫자 400명 설문조사를 끝낼 수 있었다.
다음 해 여름 몰도바에서,
12년 마지막 학기에, 정말 '겨우겨우' 논문이 통과되었다.
코로나로 논문 발표도, 졸업식도 Zoom인 시대.
Zoom 안에서 교수님이 함께 늙은 제자에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존경한다!'.
참 기뻤다!
떠나온 연인에게 보내는 연서!
나는 가끔 대책 없이 일을 벌인다. 나의 힘이다!
물론 시작하고 큰 성과로 끝맺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이라도 즐겁게 했으니 된 거 아냐!" 하는 쿨함 역시 나의 힘이다!
스리랑카라는 산책길에서 만난 우연한 즐거움.
실론티를 여행하며,
홍차의 향기처럼 서서히, 그러나 깊은 느낌으로
지난 150여 년간 스리랑카 근대의 역사였던 차를 배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조용히 소용돌이치며 흘러온 농부들의 삶도 배웠다.
다행히 박사 논문은 끝났지만
스리랑카 실론티 관련 책을 한 권 쓰리라 했던 계획은 초안으로 남았다.
이제 스리랑카를 떠나와 아련한 추억이지만,
브런치의 힘을 빌려 다시 정리해 보려 한다.
이 글은 그러므로
떠나온 연인에게 보내는, 내 나름의 연서이다!
그대를 떠나왔지만
정녕 사랑했노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