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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용규 Oct 08. 2020

넌 도대체 뭘 배웠니?#4

배웠으면 써먹어라-학용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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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기업체 신입 1년 차 교육에서 만난 A 씨의 이야기입니다. 출근 첫날, A 씨의 과장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넌 학교에서 도대체 뭘 배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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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황당하고도 억울한 이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A 씨는 과장의 느닷없는 고구마 발언에 마음을 진정시키며 충고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력서에 나열된 스펙(학력, 學歷)이 아닌 배운 것을 써먹을 수 있는 학력(學力)으로 승부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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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구글·애플·IBM 등 미국 다국적 기업들이 대학 졸업장을 채용 과정에서 요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본의 주켄공업은 선착순으로 사람을 채용합니다. 이들 기업에서 학력(學歷)은 애당초 검토 대상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이런 기업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문득 트롯 가수 영탁이 불러 화제가 된 노래 ‘찐이야’가 생각납니다. 학교 밖에서는 누가 “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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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S사 인재개발 센터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채용 합격자는 입사 후 3일간 집체교육을 합니다. 먼저 신입사원들을 식당으로 데려갑니다. 식당에서 밥 먹는 법부터 가르칩니다. 어떻게 줄을 서고 어디부터 앉아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2인 1조로 인사하는 법, 명함 주고받기 등 기본예절교육을 받습니다. 전화는 어떻게 받을지, 선배 이름은 어떻게 불러야 할지. 100 : 1의 경쟁력을 뚫고 입사한 신입사원들을 앉혀 놓고 기초부터 다시 가르칩니다. 이들의 학력(學歷)은 잊히게 됩니다. ‘주식회사-학교’에 방금 입학한 겁니다. 1학년 1반 학동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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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서에 배치되면 처음 하는 일이 서류 복사입니다. 선배들이 작성한 서류를 하루 종일 베껴 쓰다가 퇴근합니다. 영업부서에 발령 난 신입들은 하루 종일 회사 제품을 팔기 위해 매장을 기웃거립니다. 신입사원들이 회사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신입사원들의 퇴직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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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 선배 이야기입니다.

선배는 회사 후문에서 회식을 마치고 기숙사 로 가던 길입니다. 술에 취해 후문 보안요원과 멱살잡이를 했다고 합니다. 다음 날 그 사건이 인사팀에 통보되었습니다. 선배는 경위서를 썼습니다. 취중에 일어난 불상사였기에 회사는 경고 차원에서 이 사건을 덮으려 했습니다. 문제는 선배가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폭발한 겁니다. 선배에게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선배는 보안요원의 멱살을 붙잡고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내가 복사나 하려고 그 힘든 공부 하고 여기 온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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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다음 날, '대학원 진학' 이렇게 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입사 3개월 만에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선배 소식은 알 수 없었습니다.  

 갈수록 일자리가 줄어드는 마당에 한 조사에 따르면 대졸 취업자 중 입사 후 1년 안에 30% 가까이 회사를 떠난다고 합니다. 회사에 남은 30%도 이직을 고민한다고 합니다. 학력(學歷) 부족이 아닌 학력(學力) 부족은 아닐까요? 영화 「메이즈 러너」에서 주인공 뉴트가 친구들에게 의미심장하게 말했던 대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지금 여기서 살아 남느냐야.’


이런 말도 있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학력(學歷)과 관련된 M 방송사의 다큐멘터리가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코스닥 시장에서 천억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CEO 중 메가스터디 손주은 대표를 찾아갔습니다. 손주은 씨처럼 성공한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것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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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와 함께, 33년 전 졸업한 초등학교 6학년 1반 친구들을 모두 추적 조사했습니다. 생활기록부에서 참고한 것은 세 가지- 첫째 지능검사 결과, 둘째 초등학교 6년 동안의 성적, 마지막 셋째는 교사가 평가한 근면성, 사회성 등 5가지 행동 특성입니다. 이중 어떤 것이 미래의 성공과 관련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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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년 전 기록이 현재의 삶을 예언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기록입니다. 결과는 월 소득은 IQ는 전혀 영향력이 없었습니다. 성적은 미미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장 압도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은 교사가 평가한 학생들의 5가지 행동 특성 중 ‘정서적 안정성, 즉 행복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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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서적 안정성이 높은 TOP 20%와 하위 20%의 월 소득은 평균 150만 원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이것을 1년으로 하거나 33년으로 계산하면 엄청난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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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지능지수(IQ)와 학업성적은 미래의 성공(부)과 관련성이 미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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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서적 안정성을 대표한다는 주관적 행복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긍정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만박사는 일확천금의 성공이 아닌 노력을 통한 성취감과 좋은 대인관계를 꼽았습니다. 이것은 학력(學歷)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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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국제 경영개발연구원 발표한 2018년도 우리나라의 교육경쟁력은 조사 대상 63개국 중 37위입니다. 2013년 25위에 오른 이후 계속 하락하고 있습니다. 핀란드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싱가포르(5위), 홍콩(15위), 대만(25위) 일본(36위)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산업 생산성·근로자 기술·기업윤리·사회적 책임 등 여러 가지 지표에서 평균 이하의 교육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학력(學歷)을 맹신한다면 미래가 걱정되는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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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서울대 배철현 교수(종교학과·건명원 建明苑 원장)는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학생들에게 토론을 시키면 상대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가 가진 알량한 지식만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많은 문제와 창의성은 깊이 생각하고 토론을 통해 결정할 일인데 그 시스템이 무너진 상태에서 사회로 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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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입 1년 차 A 씨가 첫 출근하던 날, 과장의 기분 나쁜 짧은 한마디는 오히려 약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학력(學力) 쌓기를 위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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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 해야 하는 살벌 시대, ‘넌 도대체 뭘 배웠니?’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글 :  손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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