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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udel Aug 31. 2020

클래식 음악 속으로

대구시립교향악단 제465회 정기연주회


정말 오랜만의 콘서트 하우스 나들이였어요. 코로나 19의 영향이 이렇게까지 장기화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겨우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재확산의 조짐이 보이다니, 공연계의 암담함이 피부로 느껴지는 듯한데요.

콘서트 하우스 주변 주택가에 주차하고 걸어가는데 멀리서부터 브라스 소리가 들려서 연습하는 소리가 바깥까지 들리네 하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촉박해 콘서트 하우스 계단을 뛰다시피 올라갔는데 콘서트 하우스 광장에는 다른 연주가 펼쳐지고 있었어요. 클래식 포레스트란 제목으로 광장에 무대를 마련한 작은 음악회였는데 오늘은 5대의 브라스가 등장한 신나는 무대였죠. 흥이 절로 나는 소리였지만 아쉽게도 잠깐밖에 듣지 못했어요. 입구에서 발열 체크를 하고 손 소독, 개인정보 확인, 티켓 수령까지 일사천리로 하고 세세한 방역에 다소 안심이 되었네요.   


 

공연장에 들어서자 표를 구하기 어려운 이유를 알게 됐어요. 한 줄 건너 한 줄에 있는 모든 의자와 관객이 앉지 않는 좌석 두 칸에도 모두 흰 종이테이프가 둘려 쳐 있었어요. 테이프에 적힌 ‘공연이 계속될 수 있도록 안전거리를 지켜 주세요’라는 문구를 보자 울컥했어요. 며칠 전 뉴스에서 영국의 유명한 극장에서 마스크를 쓰고 띄어 앉는 거리 두기 공연을 오픈하자 사람들이 더 슬퍼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비록 환호 소리가 적어도 이런 시국에 공연하는 음악가들도 관객이 고맙고 관객들은 공연 자체가 감사하고 그래서 더 감동적인 거 아닐까 싶네요.    

  

 2014년 4월. 대구 음악계로서는 이미 역사적인 날이 됐습니다. 시립교향악단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로 줄리안 코바체프 님이 부임했기 때문이죠. 이탈리아, 미국, 독일, 터키, 헝가리, 스페인, 한국 등 세게 무대에서 오케스트라 및 오페라 지휘자로 활약하고 있는 그는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태어나 어릴 때 바이올린을 시작으로 클래식에 입문했습니다. 프란츠 자모 힐, 헤르베르트 알렌도르프, 폰 카라얀을 사사하며 지휘 공부를 병행해 1984년 카라얀 지휘 콩쿠르에서 입상하기도 했죠. 세계적인 유수의 오케스트라 지휘뿐 아니라 세계적인 극장에서의 오페라 지휘 그리고 오페라 페스티벌까지 성공적으로 이끈 실력 있는 지휘자입니다. 차이콥스키, 슈만,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전곡,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전곡,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녹음해 발매한 10여 장의 음반도 호평을 받았죠.

 그의 섬세하고 깊이 있는 지휘에 1200석 규모의 대구 콘서트 하우스는 매회 전석 매진의 신화를 기록하고 있고, 대구의 클래식 열풍에 단단히 한몫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클래식 음악 속으로

INTO THE CLASSICAL MUSIC    


그리그 E.Grieg

페르 귄트: 모음곡 제1번, Op.46

Peer Gynt : Suite No.1, Op.46

   1. Morgenstemning

   2. Åses død

   3. Anitras dans

   4. I Dovregubbens hall    

이 호 원 Howon Lee

피아노 협주곡을 위한 ‘영화 속으로’ (2019년 개작)

‘Into the Movie’ for Piano Concerto (2019 Ver.)    

Intermission    

베토벤 L.van Beethoven

교향곡 제3번 Eb 장조, Op.55 ‘영웅’

Symphony No.3 in E-flat major, Op.55 ‘Eroica’

   1. Allegro con brio

   2. Marcia funebre : Adagio assai

   3. Scherzo : Allegro vivace

   4. Finale : Allegro molto    

 

노르웨이의 유명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39세 되던 1867년에 완성한 [페르 귄트]는 그가 노르웨이의 민요 채집 여행에서 얻은 전설적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5막의 시극입니다. 입센은 이 시극이 낭송에는 적합하지만, 무대 상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풍부한 음악필요했어요. 1874년 초 입센은 당시 명성이 높았던 그리그에게 극음악 작곡을 의뢰하지만, 그리그는 자신의 음악적 성향이 서정적이어서 입센의 환상적이고 극적인 시극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 선뜻 수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의욕적으로 작곡을 시작한 결과 그리그의 다른 작품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격렬한 극적 기복이 돋보이는 음악을 작곡하게 되었지요.


 작품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노르웨이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페르 귄트는 아버지가 재산을 탕진한 채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 오제와 가난하게 살고 있었어요. 공상가이자 허풍쟁이였던 페르는 솔베이그와 결혼하고도 방랑벽이 도져 떠돌던 끝에 미국에서 금광을 발견해요. 그러나 귀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무일푼이 되죠. 겨우 귀향을 해서 백발이 된 솔베이그의 품에 안겨 죽음을 맞게 됩니다.


 제1곡은 원곡의 4막 전주곡인데요. 플롯과 오보에. 클라리넷의 목관악기 소리가 청명한 아침을 느끼게 하는 연주였어요. 현악에 비해 관악의 편성이 너무 적은 게 아닌가 싶었는데 크지 않은 소리가 오히려 집중력 있게 들려서 더 깨끗한 소리가 났던 것 같아요.

 제2곡은 오제의 죽음으로 원곡의 3막에 나오는 곡인데요. 내용을 모르고 음악만 들어도 비통함을 느낄 수 있는 현악들이 일제히 울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눈물이 날 뻔했답니다. 섬세한 표현력에 정말 감동받았어요.

 제3곡은 아니트라의 춤으로 원곡의 4막에 나오는데요. 아라비아 사막이 배경인 만큼 이국적인 색깔이 드러나는 마주르카 템포의 춤곡이 흐른답니다.  

 제4곡은 드 브레산 마왕의 동굴에 서라는 제목으로 원곡 2막에 등장하는 음악이에요. 행진곡풍 곡이긴 하지만 왠지 무거운. 그리고 저음이 많이 쓰인 곡인데요. 마왕의 딸을 납치하려는 페르를 막기 위해 마왕의 부하들이 그 주위를 맴돌며 춤을 추고, 큰 폭음과 함께 부하들이 흩어지는 광경을 묘사한 대목이에요. 음악을 들어 보시면 아, 이 음악 어디서 들었는 데라고 생각하실 텐데, 만화영화 형사 가제트의 삽입곡으로 쓰이기도 했지요.

 귀에 익숙한 음악이기도 하고 섬세한 연주가 너무 좋아서 집에 와서 반복해서 들었답니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지휘자의 역량이 돋보인 연주였습니다.  

   

 두 번째 곡은 이호원 님의 피아노 협주곡을 위한 ‘영화 속으로’라는 곡이었는데요. 소리에 대한 시간적 관점 그리고 울림의 다변화가 주된 관심사라는 소개 글처럼 다양한 연주기법을 보여 주었습니다. 현악기도 타악기처럼 연주하고 심지어 피아노도 현을 뜯는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연주였는데요. 예술적 조예가 깊지 않은 저에게는 난해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연주에는 피아니스트 손은영 님이 협연해 주셨는데요. 슈만 음반을 발매하기도 한 실력파 연주자로 풍부한 소리와 성숙한 음악으로 인정받는 피아니스트입니다. 가냘픈 모습으로 피아노 현을 뜯는 퍼포먼스까지 해내셨네요. 여리여리한 모습의 등장에 반해 연주가 시작되자 강렬하게 건반을 점령하는 모습을 보이셨답니다. 화려한 연주경력에도 불구하고 신인 같은 순진함도 보여 주어 연주가 더 강렬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네요.


 올해는 베토벤 서거 250주년이라 그런지 어디를 가나 베토벤 곡들이 연주되는데요. 코바체프 지휘자님의 픽은 교향곡 3번 영웅이었습니다. 베토벤의 전기작가 쉰들러의 견해에 따르면 베토벤은 빈 주재 프랑스 대사 베르나도트로부터 1789년 일어난 프랑스혁명과 이 혼란을 잠재운 나폴레옹의 업적을 듣고 감동하였다고 해요. 이후 시대의 영웅적 면모를 담은 신작으로 이 곡을 완성한 베토벤은 악보 표지에 ‘보나파르트로 제목을 붙이다’라고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보나파르트가 아닌 영웅이 제목이 됐을까요? 베토벤의 제자 페르디난트 리스의 수기에 의하면 책상 위의 총보 표지에는 보나파르트와 베토벤의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일각에서는 시대의 영웅인 줄 알았던 나폴레옹에게 실망한 베토벤이 표지를 찢었다는 설도 있었죠. 현존하는 총보의 표지에는 “신포니아 에로이카”라고 적혀있고 아래에는 ‘어느 영웅을 회상하기 위해’라고 덧붙여져 있다고 합니다.     


 지휘하시는 스타일이 누군가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카라얀이 아니었나 싶네요. 흔들리는 은발과 크지 않은 동작. 격정적인 순간에 나오는 퍼포먼스. 너무 멋졌습니다. 저는 3악장 스케르초 부분이 가장 좋았는데요. 즐겨 듣던 곡이기도 하고 호른 연주가 너무 감미로워서 좋아합니다. 콘트라베이스가 8대나 등장해서 저음부를 많이 보강한 연주였는데, 묵직한 현악 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시향의 정기연주 티켓 구매가 좀 덜 치열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하지만 이 좋은 연주를 많은 사람과 함께 누렸으면 싶기도 하네요. 한음 한음 정성을 다해 연주하시는 연주자 대구시향 연주자 여러분과 아름다운 지휘자님께 다시 감사드려요. 평화로운 시기가 다시 올 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라요.    

(대구시향에서 준비한 리플릿 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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