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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udel Sep 21. 2020

딸을 위해 끝내 손자를 살해하다.

오페라 '예누파' - 야나체크 (9월 18일 스팅레이 클레시카 방송)


'예누파'는 체코 모라비아 출신의 레오시 야나체크(Jeos JanacekL 1854-1928)가 만든, 그를 대표하는 오페라입니다. 야나체크의 곡은 하루키의 소설 1Q84로 알게 된 신포니에타 정도 밖엔 안 들어 봐서... 그리고 관악연주가 많은 그 음악이 제 취향엔 안 맞아서... 잘 듣게 되진 않았지만 뭔가 신비하고 특이하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그가 민속음악을 좋아했다고 하니 그쪽 색깔인가 하고 생각했었네요.


'예누파'는 가브리엘라 프라이소바의 희곡 '그녀의 수양딸'을 원작으로 야나체크가 대본을 쓰고 작곡했어요.  야나체크가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만든  '예누파'는 그가 만든 10여편의 오페라 중 대표작품이 되었네요.



무대 구성이 너무 특이하죠? 막이 오르고 나면 아랫부분 조명이 들어오는 박스에 무용수들이 춤을 추고 있어요. 그 춤이 체코의 전통춤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용수들이 입은 옷은 체코 전통 의복이긴 해요.^^

그리고 무대 위쪽은 영화같이 그래픽 화면으로 처리해서 계속 그림들이 바뀌는데요. 사진을 보시다 보면 떠오르는 화가가 있을 거예요.



네 맞아요^^ 알폰스 무하. 1894년 파리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 주연의 연극 <지몽스타>의 포스터를 그리면서 아르누보의 대표적 인물이 된 화가예요. 그 알폰스 무하도 모라비아의 작은 마을 출신이랍니다.

1900년대를 풍미한 화가와 작곡가가 같은 곳 출신이면서 현재까지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니, 너무 재밌네요.



색다른 무대 구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무대를 상하로 나눠서 2층엔 합창단을 배치했는데요. 마을 사람들의 역할을 맡으신 분들이에요. 주요 등장인물만 무대 앞쪽으로 나오고요. 모라비아 전통의상을 입은 가수와 무용수들이 마치 인형같이 움직여요. 게다가 의상이 빵빵해서 3등신으로 보이니 더 인형 같기도 했어요. 마치 잘 구성된 인형극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의상이 너무 특이하고 예뻐서 일부러 찾아봤어요. 소맷단 가득한 레이스들이 화려하고 예뻤어요. 특이한 건 남자들의 의상도 레이스를 많이 쓰고 굉장히 화려했어요. 그리고 모자도요. 모라비아 여인들은 머리카락을 남에게 보이지 않는 전통이 있데요. 그래서 늘 모자를 쓰고 있는데 색색깔의 꽃으로 장식해서 굉장히 화려해요. 남자들 모자도 깃털 같은 걸로 화려하게 장식했더라고요. 미니멀한 무대도 좋지만 이렇게 특별한 무대도 너무 좋네요.



모라비아의 어느 마을. 커다란 방앗간이 하나 있어요. 위쪽 사진에 보이는 둥근 바퀴처럼 생긴 것이 계속 회전하는데 물레방아를 의미한 거였네요.

대부분 농사를 짓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방앗간이. 

부리요브카 할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혼자 방앗간을 운영해서 아들들을 키웠어요. 할머니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두 아들과 세 며느리는 모두 세상을 떠나고 둘째 아들의 두 번째 아내인 며느리 코스텔니카만 살아있죠.  할머니의 큰 아들은 첫 번째 부인에게서 아들 스테바를,  그리고 다른 여인에게서 아들 라카를 낳았어요. 그리고 둘째 아들은 첫 번째 부인에게서 딸 예누파를 얻었죠. 예누파는 생모가 죽고 계모인 코스텔니카를 어머니 모시고 살고 있어요. 주인공인 예누파스테바, 그리고 라카 4 촌간이에요. 

부리요브카 할머니는 나이가 들어서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자 집안의 재산을 모두 장자인 스테바에게 상속해요. 이런 배경을 가진 이야기가 이제 시작됩니다.



1막은 축제 날로 마을 사람들 모두 전통의상을 입고 있어요. 뒤쪽에 춤추는 무용수들이 보이네요. 근심이 가득한 예누파(샐리 매튜스)의 노래가 막을 엽니다. 오른쪽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는 분이 할머니(캐롤 윌슨)예요. 왼쪽에 앉아 있는 남자가 라카(찰스 워커맨)인데 그는 예누파를 사랑하죠. 하지만 예누파는 장자인 스테바와 서로 좋아하는 사이예요. 예누파는 뭔가 말 못 할 비밀이 있다고 얘기하면서 어머니에게 들킬 것을 몹시 두려워합니다. 그녀의 어머니인 코스텔니카는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로 등장인물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인물이에요. 오늘은 스테바의 징집이 결정되는 날이에요. 드디어 스테바가 군대에 가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은 예누파는 크게 안도하며 스테바를 찾아요. 하지만 이미 술에 취한 스테바는 자기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보라며 예누파에게 마을 처녀들에게 받은 꽃을 자랑하죠. 상처 받은 예누파는 아이를 가졌다고 말해요. 스테바는 신경도 쓰지 않죠. 한편 울고 있는 예누파에게 다가온 라카가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예누파는 절망에 빠져 그를 돌아보지 않죠. 라카는 들고 있던 칼로 예누파의 아름다운 얼굴을 그어 버립니다.



화려한 1막에 비해 너무나 미니멀한 2막이라 깜짝 놀랐어요. 눈 내리는 창문에 기대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예누파가 보이시나요? 결국 어머니에게 의탁해 아이를 출산한 예누파는 오늘도 오지 않는 스테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예누파의 추문을 걱정하며 사람들 눈에 띄지 말라고 하죠.  그리고 스테바에게 오늘도 오지 않으면 너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전갈을 보내요.



드디어 스테바가 왔네요. 스테바 역에는 테너 니키 스펜스가 노래했는데요. 개인적으로 테너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데, 그의 미성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게다가 그 성량이라니... 녹화본인데도 불구하고 확연히 드러나는 목소리가 너무나 매력적이었어요. 역할은... 정말... 인간쓰레기였지만..ㅜㅜ

코스텔니카는 스테바에게 예누파가 네 아들을 낳았으니 책임지라고 해요. 심지어 무릎을 꿇고 애원하죠. 예누파의 명예를 지켜 달라고요. 스테바는 자기 아들을 안아 보고는 곧 돌려주며 양육비는 줄 수 있지만 얼굴에 상처가 나서 괴물 같은 그녀와 살 수는 없다고 말하죠. 그리고 이미 시장의 딸과 약혼했노라고 말하며 도망쳐 버려요. 코스텔니카는 생각하죠. 이제 어쩌지?



코스텔니카의 집으로 찾아온 라카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예누카를 사랑한다고 말해요. 코스텔니카는 라카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해요. 그녀가 스테바의 아이를 낳았다고요. 라카는 너무나 놀라죠. 그러고는 자기한테 스테바의 아들을 키우라고 할 셈이냐며 소리쳐요. 그러자 그녀는 아이는 죽었다고 말하죠. 라카가 돌아가고 나자 코스텔니카는 심한 갈등에 빠져요. 아이를 데리고 자신이 멀리 떠날까? 아니야 아이는 너무 짐이야. 아이는 어떻게 하지? 아직 죄짓지 않은 아이니 하느님께 돌려주는 게 맞겠어.

아아~ 어쩌면 좋지. 인간적 고뇌를 너무나 잘 보여주는 미셸 샤보네트의 연기가 정말 감동 적이었어요. 연기도 연기지만 가사와 딱 떨어지는 음악소리에 깜짝 놀랐어요. 현악과 관악이 갈등을 표현하듯 서로 다투는 소리였어요. 이 오페라를 수작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딸의 앞날이 너무나 걱정되고 또 딸이 받을 비난이 너무나 걱정되고 아이 아빠에게 버려진 딸을 보니 너무나 참담하고 그렇지만 아이가 없으면 라카가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하니 한가닥 희망이라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리고 그녀는 손자를 바구니에 넣어 내다 버립니다.



3막 시간이 흘러 봄이 되었어요. 예누파의 결혼식 날입니다. 신부의상이 검은색인 게 특이하죠. 반면에 1막에서의 축제 의상은 눈부신 흰색이었는데 말이죠. 예누파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 의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머니는 다른 대안이 없다며 예누파를 설득합니다. 라카가 너를 받아들이기로 했으니 라카와 결혼해서 살라고 말이죠.  이해할 수 없는 전개예요.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라카는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얼굴에 평생 지울 수 없는 흉터까지 만든 남자인데 어떻게 그에게 가라고 할 수가 있는 거죠..ㅜㅜ



철도 없고 속도 없는 스테바는 약혼녀인 시장 딸을 데려와 자기의 사랑을 숭배하며 자기랑 결혼 해 주지 않는다면 자살할 거라는 노래를 합니다. 남의 결혼식에 와서 뭐하는 짓이람. 정말 어이가 없어서... 결혼식을 위한 하객들이 모여들고 마을 사람들도 와서 노래를 불러 줍니다. 그런데 누군가 뛰어와서 물레방아 옆에서 꽁꽁 얼어서 죽은 아기를 발견했다고 해요. 예누파는 자기 아이인 것을 눈치채고는 고통스러운 노래를 합니다. 그러자 코스텔니카는 자기가 아이를 죽였다고 고백합니다. 딸이 받을 비난이 두려웠고 딸의 행복을 바랐다고, 자신이 죗값을 치르겠다고 말이죠. 그러나 딸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딸을 잘못 키웠다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았던 거죠. 여인들의 삶이란 결국 모든 책임을 본인이 지고 가야 되는 거겠죠.



예누파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곁을 지키는 라카에게 사랑을 느낍니다. 스테바는 모든 게 자기로부터 시작되었다며 소리면서 그제야 후회하게 됩니다. 그의 약혼녀는 약혼을 파기하고 떠납니다.



막장 드라마도 이런 막장 드라마가 없습니다. ㅡㅡ;;;  시대적 특성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내용도 많은 게 오페라지만 예누파만큼 막장이긴 힘들 것 같아요. 이렇게 파격적인 대본을 쓴 이유가 대체 뭘까요? 혹자는 죄와 구원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라고 이야기하고 혹자는 이게 바로 현실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던데요. 보고 있다가 극의 내용에 정말 충격받았습니다. 야나체크의 음악도 평소 듣는 음악들에 비해 굉장히 현대적이어서 좀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내용과 음악이 너무나 딱딱 들어맞아 소름. 계속 놀람..ㅡㅡ::

야나체크 특유의 민속음악 같은 색채가 뚜렷한데 개인적으로는 서곡이 제일 좋았어요. 그리고 전쟁 같은 2막. 코스텔니카의 아리아와 연기가 너무나 훌륭했던... 국내 무대에 잘 올리진 않는 오페라인 것 같아요. 저는 처음 보는 작품이고 자료도 많지 않더라고요. 오페라라기보다 진한 연극을 한편 본듯한 느낌이었어요. 이야기보다 더 자연스러웠던 음악을 오래 기억할 것 같아요. 체코만의 색깔로 가득 채워진 무대와 음악이라 더 특별했던것 같아요. 세심한 연출에 감탄했어요. 다시 보고 싶네요.



https://youtu.be/xcyvqIArZ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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