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씨] 프랑스 예술축제 기행문
아비뇽에서 내 눈물을 쏙 빼놓은 공연이 있다.
칠레 출신의 예술가 '말리초'의
<Reminiscencia>다.
이 작품은 구글맵으로 칠레 곳곳을 보여주며
디지털 여행을 떠나는 형식으로
말리초 그 자신을 중심으로
그의 가족, 칠레의 정치를 시간순으로 풀어낸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극이 시작하고 말리초가 태어난 100년이 넘은 병원이 무너져 내린 것을 구글맵으로 보여준다.
무너져 내린 병원을 보여주며 그는 말했다.
이 건물이 담고 있던 추억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그리고 그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유쾌한 모습으로 노래 부르는 장면이 이어진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할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으시며 점점 총기를 잃으시는 과정을 보게 된다.
눈물이 주룩주룩 멈추질 않고 흐른다.
나는 극장 밖을 나와서도 오열했다.
내 앞줄에서 공연을 보시던
프랑스인 꼬부랑 할머니가 내가 우는 것을 보시고
손을 꼬옥 잡아주시고
양 볼에 비쥬를 쪽쪽 해주시더니
따뜻하게 포옹을 해주셨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한다.
추억을 어떻게 보관할 수 있을까요?
내가 이렇게 오열했던 이유는
어쩌면 이 예술가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엔 30년이 넘은 맥도날드가 있다.
아니 있었다.
최근에 영업을 종료했다.
한 동네에서 자그마치 30년간 있었던 맥도날드.
나에게 이곳은 단순히 햄버거 가게가 아니라
소심했던 내가 어린이 놀이터에서
용기 내어 친구를 만들던 곳이고
고등학생, 대학생 때 늦게까지 공부하러 갔던
독서실이자
가까운 지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친구들과 함께 미사드리고
슬픔을 달래기 위해 대화를 나눴던 쉼터이기도 했다.
이곳이 사라지는 것은
곧 내 어린 시절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영업 종료 일주일 전 나는 맥도날드에 갔다.
굳이 햄버거를 먹고
굳이 핸드폰으로 사진도 남겼다.
굳이 필름 카메라도 챙겨가서 찍었다.
결국 나는 필름 사진 몇 장 남기는 것에서 그쳤지만,
어떻게 하면 나의 추억을 보관할 수 있을까
고민이 이어졌고 슬픔도 이어졌다.
그런데 먼 나라 프랑스에서 심지어 지구 반대편
칠레 아티스트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다니..
말리초의 할머니를 볼 때마다
나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나의 할아버지는 알콜성 치매를 앓고 계시다.
기름칠을 덜 해서 브레이크를 잡으면 끼익하고
소리가 나는 고철 자전거를 타시고
우리 집에 감자를, 고구마를 가져다주시던 모습이
아직 내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할아버지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신다.
미래에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면
나는 할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어떻게 보관할 수 있을까.
여전히 모르겠다.
추억을 어떻게 보관할 수 있을지.
하지만 말리초의 공연을 보며
다 같이 <Sin ti> 노래를 부르던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뜨끈한 게 울컥 올라오면서
어느 순간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난 여전히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비가 많이 올 때
<Sin ti>를 듣는다.
[스페인어] Reminiscencia :
어렴풋한 회상(추억,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