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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하는 에스텔 Sep 15. 2024

REMINISCENCIA:30년 된 우리 동네 맥도날드

[목화씨] 프랑스 예술축제 기행문


아비뇽에서 내 눈물을 쏙 빼놓은 공연이 있다.

칠레 출신의 예술가 '말리초'의

<Reminiscencia>다.


이 작품은 구글맵으로 칠레 곳곳을 보여주며

디지털 여행을 떠나는 형식으로

말리초 그 자신을 중심으로

그의 가족, 칠레의 정치를 시간순으로 풀어낸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극이 시작하고 말리초가 태어난 100년이 넘은 병원이 무너져 내린 것을 구글맵으로 보여준다.

무너져 내린 병원을 보여주며 그는 말했다.

이 건물이 담고 있던 추억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그리고 그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유쾌한 모습으로 노래 부르는 장면이 이어진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할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으시며 점점 총기를 잃으시는 과정을 보게 된다.


눈물이 주룩주룩 멈추질 않고 흐른다.

나는 극장 밖을 나와서도 오열했다.


내 앞줄에서 공연을 보시던

프랑스인 꼬부랑 할머니가 내가 우는 것을 보시고

손을 꼬옥 잡아주시고

양 볼에 비쥬를 쪽쪽 해주시더니

따뜻하게 포옹을 해주셨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한다.


추억을 어떻게 보관할 수 있을까요?

내가 이렇게 오열했던 이유는

어쩌면 이 예술가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엔 30년이 넘은 맥도날드가 있다.

아니 있었다.


최근에 영업을 종료했다.


한 동네에서 자그마치 30년간 있었던 맥도날드.


나에게 이곳은 단순히 햄버거 가게가 아니라


소심했던 내가 어린이 놀이터에서

용기 내어 친구를 만들던 곳이고

고등학생, 대학생 때 늦게까지 공부하러 갔던

독서실이자

가까운 지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

친구들과 함께 미사드리고

슬픔을 달래기 위해 대화를 나눴던 쉼터이기도 했다.


이곳이 사라지는 것은

곧 내 어린 시절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영업 종료 일주일 전 나는 맥도날드에 갔다.


굳이 햄버거를 먹고

굳이 핸드폰으로 사진도 남겼다.

굳이 필름 카메라도 챙겨가서 찍었다.


결국 나는 필름 사진 몇 장 남기는 것에서 그쳤지만,

어떻게 하면 나의 추억을 보관할 수 있을까

고민이 이어졌고 슬픔도 이어졌다.



그런데 먼 나라 프랑스에서 심지어 지구 반대편

칠레 아티스트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다니..




말리초의 할머니를 볼 때마다

나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나의 할아버지는 알콜성 치매를 앓고 계시다.


기름칠을 덜 해서 브레이크를 잡으면 끼익하고

소리가 나는 고철 자전거를 타시고

우리 집에 감자를, 고구마를 가져다주시던 모습이

아직 내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할아버지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신다.


미래에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면

나는 할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어떻게 보관할 수 있을까.




여전히 모르겠다.

추억을 어떻게 보관할 수 있을지.


하지만 말리초의 공연을 보며

다 같이 <Sin ti> 노래를 부르던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뜨끈한 게 울컥 올라오면서

어느 순간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난 여전히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비가 많이 올 때

<Sin ti>를 듣는다.




[스페인어] Reminiscencia :
어렴풋한 회상(추억, 기억)


말리초에게 엉엉 울며 공연 너무 잘 봤다고 말했더니 울지말라며 위로해 주고 백스테이지로 초대해 와인을 함께 마셨다. 남미 친구가 생긴 순간이었다. 잊지 못할 추억이 또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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