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결정2
사망신고
2022.03.03일
엄마가 돌아가시고 26일째에 미루던 사망신고를 했다.
미룰 수 있는 만큼 최대한으로 미루고 싶었지만.
나라에서 정해놓은 기.한.이라는것이 있어 쉽지는 않았다.
사망신고를 하고 세상에서 당신의 부재를 확인하기에는
며칠이 쇼요 된다고 했다.
그래서 서류상이라도 살아있는 내 엄마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가족관계증명서를 2장을 더 신청했다.
살아있었다.
나의 조여사가.
아직 대한민국의 서류에는 사망이 인정되지 않았음을.
뭔가 아이러니했던 것 같다...
나를 세상에 있게해준 엄마를
내손으로 지워야한다는게
.
.
.
슬픔과 동시에 코로나가 아이들과 동생. 나에게 다가왔다.
지금이야 자가격리도 안 하지만 그땐
방호복을 입은 분들이 구급차로 우릴 격리시설로 실어다 주었다.
3주 동안의 격리.
.
.
일상으로 돌아오자마자
엄마를 세상에서 지우는 책임이 또 지어졌다.
아무리 원스톱서비스라고는 하지만.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세상에서 엄마를 지우는 일을 K장녀는 해야 했다
하나하나 흔적을 따라가면서
엄마의 휴대폰에 찍힌 엄마 셀카를 보고
우리 엄마 참 이쁘다..
곱다..
라는 말을 자주 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23세에 나를 낳았다
지금 내 나이가 46살이니.
엄마가 내 나이엔 난 이미 대학을 졸업한 나이였다.
지금 난 8.10살의 아이의 엄마이지만.
지금도 이렇게 힘이 든데
당신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배를 타는 남편과. 어린 나이에 얼마나 두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었을까.
이제야 조금의 이해를 곁들어 본다.
엄마는 나에게 너무나 큰 사람이었다.
너무나 커다란 사람이라서 감히 올려다보지 못했다.
엄마가 병원에 계실 때도.
나보다 큰 키가 작아 보일 때도.
나에겐 너무나 큰 사람이었다.
나와 동생은 엄마를 조여사라고 곧 잘 불렀다.
애칭. 친근함. 이런 거였던 것 같다.
엄마라는 단어는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괜시리 엄마없는 아이가 된 43세 39세의 두 자매는
세상이 서러웠다.
우린 엄마없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이틀전 3번째 기일을 지내고.
내가 브런치에 글을 써내려가는것도
엄마에게 쓰는 편지처럼. 반성문처럼..
어느정도 일부라도 정리를 하고 싶었다.
잘 이겨냈다고.
이제는 당신에게 부끄럽지 않는 딸이 될 준비가 되었다고.
하지만 역시 이러 횡설수설
두서없는 이야기가 써내려 나가는 것을 보면.
아직은 아닌것 같다.
아직도 나는 너무나 어린데
철이 없는 당신의 큰딸은
다 큰거 같은데 아직도 덜 여물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