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결정

K장녀 ..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결정을 하다

by JIUJIU

2022.2.6일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그리고 어려웠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그날도 별다른 게 없는 하루였다.

엄마는 1년 전부터 병원에 계셨고, 급격히 나빠지셨지만, 늘 그랬듯이

언제나 그랬냐는 듯 다시 퇴원 후 집으로 오실 거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지만.

병원 전화번호가 보이는 전화소리는

늘 나를 긴장하게 했다.

그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내 폰은 늘 진동이었다. 하지만 더 큰 불안감 때문에

나는 워치를 항상 차고. 진동을 한 휴대폰을 잘 때도 베개밑어 넣고 잠이 들었다.

중환자실에서도, 1년간 거쳐간 열명이 넘는 간병인이모들의 전화도 놓치는 법은 없었다.


그날. 오후 6시에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간호사 선생님과 통화를 했고, 간병인이모와도 통화를 했다.

조금 기력이 없긴 하지만, 평소와는 별다른 게 없다고.

밤 10시쯤 간호사실에서 올 수 있냐고 했다.

무슨 일이 있냐고 하니, 평소보다 기력이 떨어지셨다며, 보시고 가라라고 했다.

아이들이 4.5살이라. 잠만 재우고 넘어간다고 했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급하게 빨리 오라고 했고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출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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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줄곧.

의젓해야 했고.

담담해야 했고. 믿음직스러워야 했다

이것이 내가 46년간 자라온 K장녀였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외항선 선장이었고, 2~3년에 한 번씩 귀국을 하셨다. 지금은 5~6개월이시지만.

중학교쯤부터는 엄마는 1년에 5~6개월 정도는 병원에 입을 하셨다.

당뇨. 합병증. 간경화. 심장병. 마지막엔 투석.

나열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병을 엄마는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늘 강했다.

항상 무서웠지만, 엄마가 나와 동생을 사랑한다는 것에는 1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빠의 부재를 엄마는 더 강하게 우리를 교육시키셨다.

그러다 보니 난 K장녀가 되어있었다.

아버지가 안 계실 땐 아버지의 일처리를 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많은 책임과 결정권이 주어졌다.

물론 아빠와 엄마가 전적으로 믿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엄마가 병원에 오랜 투병을 하면서, 내가 결정하고 책임지어야 할 것이 많아졌다.

이 치료를 어떻게 할 건지, 수술여부와, 전원여부

마지막에는 연명치료까지.

무조건 한다고 했다.

자식 된 입장에서 왜 거부를 하겠는가.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동맥경화로 엄마다리가 까맣게 변해서 절단해야 한다고 했을 때도

우리 옆에만 계셔준다면 문제없다고 생각했고,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수많은 관을 절개를 하고 호수를 꼽아도 엄마한테 견디자고 했다.

이번만 지나면 집에 가자고.

집에 가고 싶다고.. 퇴원하고 싶다고 말하는 엄마한테 짜증과 화만 냈다.

치료를 받아야 갈 거 아니냐고. 걷지도 못하는데 집에 가서 어떻게 할 거냐고.

화를 내다가 달래다가.

조금만 참아달라고 말했다.

동생이 영상통화로 엄마에게 사랑해라고 할 때.

나 보고도 너도 해라고 말할 때

목에 무언가 막힌 느낌이 들었다.

부끄럽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큰 아이에게 대신 할머니 사랑해~ 해야지 이렇게 시키기만 했다.

그게 머라고.

그 말 한마디가 뭐라고.

엄마는 우리에게 우리 딸 사랑해.라고..

코로나로 한 달에 몇 번 만나지도 못해서 영상으로라도 그렇게 말해주었다.

살면서 엄마가 나에게 사랑해라고 말한 적은 거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럽고 힘들었다. 낯설었다.

너무나 소중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큰딸과 엄마의 관계는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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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차 안. 내려서 병실로 가는 길이 너무나 멀었다.

엄마가 침대에 누워있고

8명의 의사들이 엄마에게 심장충격기를 하고 있었다

온몸에 호수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얼굴에서 배에도. 안 그래도 투석하는 몸에 뭘 저리 많이 연결을 해놨는지...

엄마가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에 내가 보이질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또 물어봤다.

더 하실 거냐고.

엄마가 눈을 뜨고 있잖아요!!

왜 이런 순간마저 나에게 결정을 맡기는 것일까.

왜 내가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계속 부탁드린다고 했다.


결국 그날 우린 나의 조여사를 보내드려야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이 3번째 조여사의 기일을 며칠 앞두고 있어서 글로나마 조금이라도 써내려 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횡설수설한 나의 글을 써내려 가면서도

마무리를 못할 글을 지금 쓰면서도.

아직 조여사를 보내주지 못했나 보다

이틀 전 추모공원에 가서도.

매달 추모공원에 가면서도 부끄러워 낯설어 사랑한다는 말을 아직 하지 못했다.

그렇게 후회했으면서.

바보같이.. 사랑해.. 그 말 머라고.

엄마에 대해 내 마음을 다 긁어 써 내려갈 때쯤

그 글의 끝마다 말할 수 있을까.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