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꽤 꾸준히 하고 있다. 누군가 취미를 물었을 때 운동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기까지. 그러니까 햇수로는 한 7년 8년 정도 된 것 같다.
습관이 되기 전으로 기억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중학교 3학년 때였을까. 친구 따라 통학길에 있는 헬스장에 다닌 것이 내 인생에서 자의로 시작한 첫 운동이다.
그땐 PT라는 개념도 없었는데 일단 등록을 하고 나니 젊은 남자 선생님이 살을 좀 빼는 게 좋겠다며 운동을 가르쳐줬었다. 헬스장에 빼곡한 낯선 기구들을 쓰는 법도 배웠지만, 나와 친구는 주로 매트 위에서 스트레칭 같은 걸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일 년에 키가 8cm씩 크던 때였다. 나름 재미를 붙여 열심히 다녔던 것 같은데 얼마 안 가 선생님이 그만두고, 이어서 친구가 그만두자, 나도 금방 흥미를 잃고 그만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열여덟-아홉 무렵엔 친구들과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뱅글뱅글 걷다 오는 날이 많아졌다. 고3에게 운동이란 학교 주변 산책과 체육관에서 치는 배드민턴 정도가 전부이던 시절. 산책은 운동을 핑계로 친구와 수다라도 마음껏 떨 수 있지, 배드민턴은 뭔데 저렇게 쉬는 시간마다 열심히일까. 공부하기도 바쁜데 운동에 에너지를 쏟는 몇몇 친구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스무 살-스물한 살은 다이어트에 집착하던 시기였다. 이때까지도 운동=다이어트였고 그래서 주로 살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실내 자전거를 타거나, 트레드밀 위를 걷거나, 줄넘기 등을 하는 유산소 위주의 운동만 찾아 단기간에 열심히 했다. 매번 그렇게 목표 체중이 오면 그만두고, 그만두고, 그만두길 반복했다.
본격적이라고 할만한 때는 역시 스물다섯여섯 그즈음이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와 처참하게 실연한 뒤 멘탈이 무너져있었고, 매일 밤 술이나 마시며 신세 한탄을 하던 때였다. 매일 먹는 술 때문인지, 20대의 절반 이상을 집착하던 다이어트에 끈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이도 저도 안 되겠구나 싶은 마음이 매일 아침 숙취와 함께 들었다. ‘운동이라도 시작해야겠다.’ 좀 더 솔직한 마음으론 혹시 모를 재회의 가능성을 열어뒀기에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헤어진 기간을 기회로 그동안 나 자신을 가꾸자는 마음. 살 빼고 예뻐지면 네가 안 흔들리고 베길까. 그렇다. 결국 또 이유는 다이어트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다른 어떤 때 보다 굳은 의지로 열심히 했던 덕일까. 눈앞의 달라진 숫자나 결과가 아닌, 과정이 즐거웠다.
다음날 못 걸을 것 같은 근육통이 신기했고 자꾸 하니 나아지는 운동 능력이 놀라웠다.
무엇보다도, 내 몸을 혹사하는 이 시간 동안은 잡생각을 떨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겨를이 없었다. 그게 너무 소중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시간. 별것 아닌 일상 하나하나가 마치 중요한 사건의 단서라도 되는 마냥. 떠오르지 않으려 해도 자꾸 묻어나는 기억과 사람을 숨차게 달리고 있는 동안은 완전히 까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니 실연의 상처는 아주 많이 회복 되었고, 나는 몸을 움직이면 마음까지 건강해진다는 느낌을 ‘몸소’ 알게됐다
그렇게 종종, 마음이 힘든 날인 밤마다 어딘가를 계속 달렸다. 어떤 날을 엉엉 울면서 달리고, 어떤 날을 울음을 삼키며 달렸다. 술 마시는 것보다 후련했고, 회복의 속도 또한 빨랐다. 그렇게 점점 모든 게 나아졌다.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운동의 참 매력을, 시련을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세상 일은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몇 걸음 떨어져서 보면 순탄하기만 해 보이는 나의 일상도 한 면 한 면 하루하루를 쪼개 보면
끊임없이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계획하거나 생각한 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들과 자주 마주한다.
그런데 정말 내가 쏟은 '노력'만큼의 확실한 보상을 주는 일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내 몸일 것이다.
어떤 핑계도 통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아닌 온전한 나의 노력만으로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
외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수행 능력이나 내면의 건강까지 아우르는 얘기다.
타고난 어떤 것은 바꿀 수 없다.
뼈를 깎아 붙이지 않는 이상 변할 수 없는 골격이라던지, 선천적인 문제와 같은 것들..
극복 못할 이것을 일찍 단념하고 부정하자는 얘기가 아니고, 그렇다면 타고난 것, 내게 주어진 것 외에
온전히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 얼마든지 향상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걸 깨닫고 나자 나는 더 이상 마른 몸매를 동경하지 않게 되었다.
타고난 마른 몸은 있어도, 타고난 근육질 몸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대신 탄탄한 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 온전히 스스의 노력으로 만든 멋진 작품 같은 몸들 말이다.
요즘은 헬스장 웨이트 존에도 여자들이 많아지고,
스쾃이나 런지 동작 정도는 다들 기본자세로 익히고 있는 것 같다.
'난 못해' '난 그런 거 싫어해'라고 단정 짓지 말고
오늘 당장 만만한 2kg부터 들어보자.
10개를 들어 올렸다면 내일은 12개를, 다음 주는 20개를 해 보는 거다.
내가 들인 노력에 나의 몸이 어떻게 보상을 해주는지, 작은 변화라도 몸소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