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몇몇 유튜브 콘텐츠엔 자주 등장하는 댓글이 있다.
얼마 전 찾아 본 ‘새천년 건강 체조’ 영상에도 어김없이 비슷한 댓글이 있었다. 나는 그 댓글 아래 공감의 따봉을 한 번 꾹 눌렀다. 90년대생에겐 국민체조 못지않게 익숙한 그 체조. 중간중간 탈춤을 연상시키는 동작들이 있고, 명상원에서 흘러나올 것 같은 음악이 흐르던 체조.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기억에 오래 남은 이유는 아마도 이 체조를 '외워서' 시험을 쳐야 했던 체육 시간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나는 체육 과목을 싫어했다. 운동을 잘 못 하기도 했고, 야구나 축구 따위를 보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체조 시험도 그랬다. 이런 걸 외워서 남 앞에서 보여줘야하는 게 싫었다. 두 팔을 쭉 뻗어 하늘을 올려다보는 동작이 우스꽝스럽다 생각했다. 나만 그랬던 게 아니었는지, 선생님의 시범에 지켜보던 반 애들도 저게 다 뭐냐며 웃어댔다. 리듬에 맞춰 한 발로 콩콩 뛰는 동작에선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시범이 끝나고 조별로 돌아가며 앞에 나와 동작을 익힐 땐, 키득거리는 남자애들의 웃음소리가 나를 향하는 것만 같아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뭐냐고?
최대한 쭈뼛쭈뼛 하는 거였다.
'나 하기 싫어요.' '억지로 하는 거예요' 티를 팍팍 냈다. 그런 태도로 임하면 아무도 나를 향해 웃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관심 밖이 되었다. 아이들의 타겟은 '열심히는 하는데' 어딘가 결정적인 부분에서 스텝이 엉키거나, 박자를 놓쳐 슬랩스틱 코미디같은 웃긴 상황을 연출하는 친구였다. 건성건성은 괜찮았다.
체육 시간뿐이었을까.
자신 없는 일엔 자신 없다고 솔직히 말하지 않고, 무심한 태도로 대하는 일이 많아졌다. 결과가 좋은 건 내가 잘나서 잘한 거고, 결과가 안 좋은 일은 내가 열심히 안 했기 때문에, 내 '능력'이 아닌 '노력'이 부족해서 결과가 아쉬웠다고 생각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 노력은 나의 '선택'인 것이고, 그러니까 나는 시간과 열정만 있었다면 더 잘하는 사람인데, 이 일이 내게 그 정도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라는 비겁한 변명을 일삼는 사람.
스스로 이걸 깨닫고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든 지금은 전보다 더 도전적으로 살고 있다. 움츠러져 있을 때 보다 일단 뭐라도 했을 때의 삶이 재밌단 걸 알았기 때문이다.
다시 체조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렇게 어느날 문득. 한동안 잊고 지낸 새천년 건강 체조가 떠올랐다. 유튜브에 없는 게 없는 세상. 검색창에 입력하자 익숙한 썸네일이 보였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어쩐지 정겨운 마음이 드는 전주에 맞춰 몸을 들썩이다, 화면을 흘끗거리지 않고도 몸이 알아서 기억하는 다음 그 다음 동작들을 이어갔다. 개운했다.
"지금 보니까 하나도 안 부끄러운 거 있지"
"사실 그렇잖아. 지금은 남 눈치 보고 쭈뼛쭈뼛 대충대충 하는 게 오히려 더 바보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땐 그냥... 하늘에 팔 찌르기 같은 게 너무 바보 같은 동작이라 생각했어. 다시 해보니까 골고루 스트레칭도 되고, 코어 근육에 힘도 들어가고... 좋은 동작이 참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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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때 우스꽝스러운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체조 동작이 아닌, 태도를 가르치고
아이의 시각을 넓혀주는 교육 말이다.
얼마 전 TV 예능 프로에서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가진 어린아이에게 처방한 교육법을 보고 큰 인상을 받은 일이 있다. '언니는 너무 뚱뚱해' '난 엄마처럼 예쁘지 않아' 같은 말을 자주 하는 아이에게, 부모가 함께 잡지를 보며 다양한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시각을 넓혀주라는 솔루션이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생긴 것 같아?라는 물음에 뚱뚱해/예뻐/못생겼어 가 아닌, 표정이 강인해 보여/그렇다면 의지가 굳은 사람인가 보다. 까지 확장해서 바라보는 방법. '사람이 갖고 있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다양하게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이야기였다.
약간 핀트가 벗어난 사례 같지만 본질은 같다.
체조를 열심히 하는 게 왜 부끄러운 일이었을까? 체조 그 자체가 아닌, 남에게 보이는 모습에 신경 썼기 때문이다. 괜한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체조를 통해서 난 더 강해졌다!라는 생각이 제대로 들었다면, 오히려 웃고 있는 친구들이 우스웠겠지.
그래서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하늘을 찌르고 싶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에
지금 당장 돌돌 말린 요가매트를 펼쳐, 거실에 누워있는 남편이 보건 말건 어떤 땐 탈춤 같고, 어떤 땐 격투기 같은 동작을 곧게, 시원시원하게 해낸다.
땀이 조금 나고, 몸이 한 결 가볍다.
이 모습이 좋다.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