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왜 한국인은 이민 와도 한국음식을 먹을까.
모두가 한 번쯤 궁금했을 그 질문.
왜 굳이 해외에 나와 살면서 열심히 검색해 한식당을 가고, 어렵게 한국 식재료를 구해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을까?
오늘은 그 질문에 대한 이야기.
같은 나라에 살아도, 각자의 민족적(ethnic) 뿌리에 따라 이민의 외로움과 힘듦을 해소하는 방법이 다르다. 특히, 그 해소법들은 각 민족의 문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모두 아일랜드라는 같은 나라에 살지만, 브라질이민자 친구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혹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모여서 춤을 춘다. 브라질리언들에게 초대받은 파티는 언제나 데킬라와 트월킹으로 채워진다. 반면, 아일랜드에서 나고 자란 아이리쉬 친구들은 힘든 일이 있으면, 펍으로 친구들을 부른다. 좁디좁은 아이리쉬 펍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대화를 하고, 가볍지만 다크한 농담 (Dark humor jokes)들로 힘든 상황들을 비꼬며 웃어넘기거나, 토요일이면 펍에 초대받은 동네 밴드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힘든 일들을 넘긴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힘든 일이 있을 때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이 이야기는 이민 온 한국사람들, 혹은 한국계 1.5세, 2세들이 삶의 힘듦과 일상의 지침을 견뎌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나는 힘들 때, 외로울 때, 지칠 때 한국음식을 만든다.
이민 온 한국인에게 한국음식이 가진 의미는 결코 음식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한국음식은 곧 나의 스트레스 해소구이자, 내 삶의 가장 깊숙하게 안정을 느끼는 안전지대 (safe space) 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나와 같이 성인이 된 후, 이민을 온 이민 1세대들은 특히나 힘들 때 기댈 친한 친구와 가족도 많이 없고, 어린 시절부터 성장하며 경험한 문화와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이민 생활을 하는 것이기에 일상의 많은 부분이 긴장의 연속이다. 특히, 직장생활과 일상에서 백인들과 부대끼고 살다 보니, 언제 치고 들어올지 모르는 작고 (micro racism/ migroaggressions), 큰 인종차별들을 마주한다. 처음엔 화가 났지만, 이것도 너무 반복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화보다는 기운이 빠지고 가슴에 돌덩이를 안고 사는 것 같이 무겁기만 하더라.
이럴 때, 유튜브에 떡볶이 황금 레시피를 검색하여, 나의 최애 '떡볶이'를 만들면, 만드는 과정에서 들려오는 동영상 속 한국어에 소속감을 느낀다. 코 끝을 자극하는 고춧가루와 마늘 냄새는 위안이 되어준다. 떡볶이 만들기는 지금 이 순간 한국에 있는 것과 같은 편안함을 준다. 그리고 애지중지 만든 한국 음식을 입 속에 넣을 때면, 지금 바로 학교 앞 떡볶이 분식집에 앉아 있는 십 대 청소년이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행복이 온다. 그래서 나는 힘들 때 떡볶이를 만든다. 재료를 사러 한인마트에 가서 오랜만에 '안녕하세요'라고 한국어로 인사를 주고받는 찰나의 순간부터, 재료를 손질하고 유튜브 레시피를 따라 음식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그 음식을 먹는 그 순간까지 삼박자 모두가 나를 한국이라는 모든 것이 익숙하고,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그 편안한 나만의 세이프 스페이스(safe space) 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해외에 살아도 한국음식을 먹는다.
세이프 스페이스란 맥락에 따라 조금씩 그 의미가 다르지만 주로 개개인이 성적 지향이나 장애여부, 인종여부나 나이 등에 차별받지 않고 보호와 존중을 받으며, 자유롭게 '나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편안한 환경을 의미한다.
최근 본 작품 중 이민자에게 있어 한국음식이 주는 세이프 스페이스로서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이 바로 킬링이브 시즌 3의 시작 장면이었다. 한국계 캐나다인 산다라 오가 주연한 킬링이브의 시즌 3은 한국음식점에서 이브 (산다라 오)가 만두를 빚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이브가 퇴근 후, 한인마트에서 신라면과 음료수를 사가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산다라 오는, 극 중 이브라면, 지친 마음을 달래고자 한국어가 들리고 한국음식이 가득한 공간에서 지내고 있을 것 같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국음식은 이렇듯 이민자들에게 단순히 고향음식을 먹는 의미, 그 이상을 표현한다.
단순히 한국 이민자들만이 이렇게 한국음식에 대해 세이프 스페이스로서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여행 중 한국음식점을 가는 지인들을 많이 만나곤 한다. 그들에게도 한국 음식점은 단순히 느끼한 빵과 버터, 유제품을 먹다 물려서 방문하는 장소로만의 의미는 아니다. 한국 음식을 먹고 한식당을 가는 것은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공간을 여행하며, 항상 긴장을 놓지 못하는 그 유럽 여정에서 잠깐의 휴식과 안정을 준다. 유럽에서 유일무의 하게 익숙하게 벨을 불러 종업원을 호출할 수 있고, 메뉴판에 적혀있는 모든 메뉴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다. 메뉴에 들어간 재료들을 읽지 않아도 무슨 음식을 시킬지 결정할 수 있는 그 편안함과 익숙함을 느낀다. 이런 한식당과 한국음식은 여행에서 오는 긴장과 피로에서 잠깐 쉬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세이프 스페이스가 되어준다.
이민생활이 주는 축복이자 고통은 너무 많은 감정들을 담아내며 살아가아 햔다는 것이다. 다양성의 한복판에서 다양한 인종과 민족, 문화를 경험하며 살아가다 보니, 견문이 넓어지고, 더 많은 감정들을 경험하며, 세계관이 확장된다는 축복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에 살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이나 차별, 혹은 힘듦을 겪을 때면 그 부정적인 감정들에 휩싸여 땅굴을 파듯 세이프 스페이스로 들어가 영영 나오고 싶지 않은 날들도 있다. 그래서 유난히 한국음식이 더 그리운 날이나, 한국음식을 유난히 많이 먹은 달이면, 항상 '아 내가 이번달 힘들었구나.' 혹은 '아, 내 감정을 돌봐야 하는 달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자, 이제, 그러므로... 이민 간 내 친구가, 가족이, 그리고 지인이 한국음식을 많이 먹어도 '왜 나와서까지 한국음식을 그렇게 많이 먹어?'라고 묻지 말자. 대신 요새 일상은 편안한지, 마음은 괜찮은지, 안부를 한번 더 물어주자.
한국인은 밥심이다. 해외 생활 중이라면, 혹은 해외여행 중 한번쯤 한식이 그립다면 그것은 단순히 밥에 대한 그리움만은 아닐 수 있다. 내 마음이 조금 지치고 외롭고, 피곤한 것은 아닐지 체크해 보자. 그건 익숙한 냄새와 정서, 맛을 주는 한식당과 한국음식 만들기로 내 마음을 보살피라고 내 마음이 보내는 마음속 신호일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내 마음을 살펴보자. 내 마음이 행복하고 편안해야, 다음 여행 일정이 즐거울 수 있고, 내 이민생활도 조금 더 편안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