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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ue Dec 11. 2020

질리지 않는 한 가지

 빵 굽는 냄새

 무엇이든 쉽게 질리는 나한테 변하지 않는 취미가 하나 있다. 베이킹.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헤맸다. 어렸을 때부터 식사 준비를 하시는 엄마 옆에 찰떡처럼 붙어 참견하기 좋아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향했던 것 같다.


2011. 12. 20. 첫 베이킹_크리스마스 쿠키


 첫 시작은 수능이 끝난 후 만들었던 크리스마스 쿠키였다.

 빵과 쿠키는 빵집에서 사먹어야 하는 줄 알았던 나에게 쿠키를 굽는 동안 오븐에서 퍼졌던 달콤한 향기는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마도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9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질리지 않고 빵을 굽고 있는 것 같다. 




 베이킹을 시작한 후 블로그에서, 유튜브에서 만들어보고 싶은 것들은 주저없이 만들었다. 마들렌과 휘낭시에 같은 구움과자부터 슈, 사브레쿠키, 파운드케이크 등 이것저것 시간이 되는대로 만들어봤다. 처음 도전하는 것들이지만 유튜브가 활성화되며 동영상으로 레시피를 거의 외울 때까지 반복해서 보고 만드니 신기하게도 실패하지 않고 잘 만들어졌다. 만족스러운 결과물과 함께 오븐을 돌릴 때마다 퍼지는 달콤한 버터의 향기는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주었고, 베이킹에 점점 더 매료되게 했다.


 그 와중에 오븐에서 매번 실패하거나 실패도 성공도 아닌 애매한 결과물이 나오는 빵이 있었다. 다름 아닌 모양도 색도 참 단순한 식빵. 평소 샌드위치를 참 좋아하는 나에게 발효빵은 언제나 도전해보고 싶은 베이킹 중 하나였고, 제과류의 달디 단 맛에 지쳐갈 무렵 식빵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이상하게도 식빵은 항상 어려웠다. 블로그 시절, '글루텐을 손가락이 비칠 정도로 잡아보세요' 라는 설명에  몇 시간을 치대고 주물러도 내 반죽은 손가락이 비치기는 커녕 갈기갈기 찢어지기만 했다. '반죽이 두 배가 될 때까지 발효시키세요' 라는 설명에 아무리 둬도 잘 부풀어오르지 않는 것 같았다. 분명 오븐에서 퍼지는 향기는 고소한 식빵 냄새인데 막상 뜯어보면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물만 나오니 제빵은 나의 길이 아닌가보다 하며 다시 제과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종종 손반죽을 하는 발효빵을 볼 때면 일 년에 한 두번씩은 열심히 치대야하는 빵들을 다시 도전해봤던 것 같다. 오븐이 익숙해져 온도 조절도 잘 하고 제과는 점점 더 만족스러워지는데 중간중간 도전해보는 제빵은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 

 제빵과 거리두기를 해야하나...고민하던 끝에 얼마 전에 한 번만 더 도전해보자 싶어 재료들을 다시 사 모았다. 한통 가득 들어있던 이스트 때문인가 싶어 매번 구매하던 이스트가 아닌 소분되어 있는 이스트도 새로 구매했다. 그런데 웬걸 이번엔 뭔가 잘 될 것 같았다. 빨래판에 빨래를 치대듯 반죽을 열심히 치대고 발효를 기다리는데 아주 잘 부풀어오르는 모습에 '성공하려나?' 싶은 작은 기대감이 생겼다. 결과물은 대성공.

    

2020. 11. 28. 식빵 첫 성공

 오븐에서부터 잘 구워지는 모습에 얼른 맛보고 싶어 '앗 뜨거'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식빵을 뜯었다. 내가 원하던 부드럽고 촉촉한 식빵에 감격해 주무시려던 아빠한테 한 입만 드셔보시라고 얼른 뜯어드렸고 언제나 냉정한 고객인 아빠도 따봉을 날려주셨다.


 내가 지치지 않고 베이킹을 할 수 있었던 건 반죽을 하는 동안의 설렘과 오븐에서 돌아가는 동안 퍼지는 달콤한 향기였다. 그러나 긴 시간동안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식빵은 베이킹을 하는 동안 설렘이 아닌 걱정이 앞서게 했고, 오븐에서 풍기는 고소한 냄새도 믿을 수 없게 했다. 식빵을 굽고 나면 길게는 못가도 오븐과 잠시나마 멀어졌던 것 같다. 그러다 버터의 달콩한 풍미가 그리워질 때면 다시 오븐을 켰고, 그 안을 채우는 반죽은 언제나 식빵이 아닌 케이크나 구움과자가 먼저였다.

 그런데 이제 오븐을 더 자주 찾을 이유가 생겼다. 실패율 0에 가까운 버터와 설탕이 만나 풍기는 달콤한 냄새가 아니여도 식빵을 구울 때 퍼지는 고소한 냄새도 이젠 믿을 수 있다. 제과를 할 때 퍼지는 달콤한 향기가 가라앉은 기분을 좋게 해줬다면, 식빵을 구울 때 퍼지는 고소한 냄새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언젠가 나에게 '죽기 전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빵을 굽겠다'라고 답한 적이 있다. 이 세상 걱정을 다 날려버릴 만큼 달콤한 버터의 향기만을 생각하며 말했던 답인데, 이젠 고소한 식빵 냄새까지 그 이유에 추가됐다.

 식빵까지 성공해버린 지금 이런저런 발효빵을 만들어볼 생각이 가득하니 당분간도 베이킹에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베이킹을 계속할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됐으니 아마도 평생 질리지 않고 베이킹을 계속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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