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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Sep 19. 2024

알바에게 비싼 소고기 구워먹이는 전주 고기녹소

장사는 이윤보단 사람을 남기는 거란 장사철학



전주시 송천동에 위치한 소고기전문점 고기녹소에 내가 처음 주목한 건 그 센스 넘치는 이름 때문이었다. 지인들과의 모임이 있어 처음으로 가게 됐는데, 모임 장소 이름이 '고기녹소'라는 얘길 처음 듣는 순간 '어랏, 어떤 베이비인지 아주 매우 많이 센스가 넘치는 걸!!!' 하는 생각이 머리를 강타했다.


불과 네 글자 밖에 안 되는 그 이름 안에 '입안에서 살살 녹는 맛난 소고기를 파는 집'이라는 의미를 기가 막히게 잘 담아냈단 생각이 들어서다. 왠지 이 집에 가면 다른 소고기집에선 맛보기 힘든 횡성한우급 맛난 소고기를 먹을 수 있을 거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던 것.


맛도 꽤 괜찮았던 걸로 기억되지만, 먹는 거보다는 모임에 더 주목해야 하는 자리여서 '제법 쓸만한 소고기집을 하나 발견했넷!' 하는 느낌만 간직한 채 그땐 그냥 가볍게 넘어가고 말았었다. 조금은 점잔을 떨어줘야 하는 자리였어서 음식 사진을 찍는다든가 하는 행동 역시 삼가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느낌 하나만 간직한 채 한동안 그 이름을 잊고 지내던 중 내가 다시 고기녹소라는 음식점에 주목을 하게 된 건 그곳에서 알바를 한 경험이 있다는 후배 직원 덕분이었다. 남의 과거사 같은 건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인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그의 알바 경험담을 듣게 됐고, 그 중 고기녹소 알바 경험담을 듣다 보니 제법 흥미로운 구석이 있었던 것.


사과농사 짓는 농부가 제대로 생겨먹은 사과 하나 먹어보기 힘들다는 말이 있듯이 소고기 장사하는 사람들도 소고기 한 번 마음껏 먹어보기 힘든 게 우리네 현실인데, 고기녹소에서는 사장님이 알바생들한테까지도 틈날 때마다 부위별로 맛난 소고기를 시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얘기가 특히 그러했다.


이유인즉 "일하는 사람들이 소고기 맛을 제대로 알아야 손님들에게 맛을 설명하고, 손님 취향에 맞춰 맞춤한 부위를 권해드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곳 사장님의 장사철학이어서란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많이 먹어보고 맛을 아는 놈이 다른 이들에게도 이거 한 번 드셔보라고 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시라고.


정말 그런 고도의 장사꾼 마인드인 건지, 혹은 고생하는 알바생들한테 핑계김에 맛난 걸 먹이고 싶은 대인배 마인드인 건지는 몰라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시 한번 고기녹소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에만 집중하느라 고기가 맛난지 어쩐지 큰 관심도 두지 않았던 앞선 자리 기억 말고 제대로 각을 잡고 고기맛에만 한 번 집중해보고 싶어진 거다.






그래서 며칠 전 추석 연휴를 이용해 가족들과 함께 고기녹소를 찾았다. 이날 우리 가족이 선택한 메뉴는 살치살 더하기 소갈비살 한 판 1kg이었는데, 주문을 하면서 이게 정말 소고기 맞나 하는 의문이 들어 태블릿 메뉴판을 두 번이나 꼼꼼히 들여다 봤을만큼 가격이 아주 매우 많이 착했다. 국내산 기준 1++급 살치살과 1+급 갈비살이어서 더 그랬다.


투뿔 한우 기준 1인분 200그램에 3~4만원씩 받는 집들이 적지 않은 터에 이곳에선 비록 수입산 소고기라곤 해도 1kg에 10만4,000원으로 100그램당 1만400원 꼴 밖엔 안 됐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고기녹소는 직영냉장물류창고 운영을 통해 중간유통 마진을 없앰으로써 '가격은 전국 최저, 품질은 전국 최고'를 목표로 장사를 하고 있으시단다. 베리 굿이다.


알바생에게 비싼 소고기를 구워먹일 정도로 넉넉한 인심을 자랑하는 맛집이다 보니 이곳에선 모든 게 넉넉한 느낌이었다. 나날이 비싸지는 채소 물가 때문에 야채류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의 경우 다른 고기집에 갈 때면 눈치 아닌 눈치를 보게 만드는 게 상추와 파채 등 야채류인데, 이곳에선 셀프서비스 코너를 통해 거의 무한대로 가져다 먹을 수 있는 게 특히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 투뿔 고기와 다양한 양념장, 매콤한 된장찌개, 사이드메뉴로 팔아도 충분할 계란찜 등 맛난 밑반찬들이 더해지니 그 맛이 아니 좋을래야 아니 좋을 수가 없었다.


직원인지 알바생인지는 모르겠으나 서비스에 임하는 이들의 기민한 대응도 마음에 들었다. 저녁 7시 전후 한창 바쁜 시간대에 고기집을 가본 사람들이라면 많이 공감할 건데, 벨을 서너 번씩 눌러도 직원들이 안 와 속이 터져본 경험들이 많을 거다. 그런데 고기녹소의 경우 바로바로 대응이 이뤄졌고, 들어오는 손님과 나가는 손님들을 향해 서로 앞다퉈 쾌활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는 등 전반적으로 활기가 넘쳤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뭘 좀 먹이면 효과가 있구낫!'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을 정도.





내가 고기녹소를 다시 찾은 이유가 전직 알바생이었던 후배직원의 칭찬 덕분이었던 것처럼 알바생도 알바 옷을 벗는 순간부터는 손님이 되는 법이다. 나중에 손님 신분으로 그 집을 다시 찾을 수 있단 얘기이고, 찾진 않더라도 자신의 생생한 경험담을 토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그 집 음식이나 서비스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단 의미다. 특히 전주 같은 좁은 동네에선 그 파급력이 더더욱 클 수밖에 없는데, 그런만큼 음식점 사장님들이 고기녹소처럼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을 제발 좀 귀하게 대해줬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알바생에게 비싼 소고기를 아낌없이 구워 먹인다는 예의 고기녹소 사장님은 아주 매우 많이 현명하고 장사 잘 하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알바생이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입소문을 내고 다니는 덕분에 결국 나 같은 손님도 그 맛이 궁금해져서 가족들까지 주렁주렁 매단 채 그곳을 찾아가게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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