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봄이 찾아왔고 보라빛 자카란다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런데 여전히 바람이 불면 왜이렇게 추운건지. 햇볕 아래 느긋하게 몸을 말리고 있는 도마뱀의 마음을 공감하게 되는 날씨이다.
봄 나들이 나온 도마뱀들, 제발 집에는 들어오지 말아주겠니.
나의 데일리 커피를 책임지는 '소호'카페이다.
워낙 자그마한 카페들이 많아서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른 카페로 외도를 많이 하지만, 언제나 결국 소호로 돌아가게 된다. 커피가 부드럽고 맛있는 건 물론이고 집에서 제일 가깝다는 것도 크게 작용한다. 호주의 커피가 맛있기로 유명하다지만, 특히 우리 동네 커피 맛은 최고이다. 나는 라테만 마시지만 카페마다 라테 맛도 원두 종류나 우유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고 진하기도 다르다. 소호는 우유맛이 좀 더 많이 나는 편이다.
오전 시간에 끊임없이 몇몇 사람들이 테이크어웨이 커피를 받아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카페라면 어디든 분명 맛있는 커피집이다.
우리 집 고기를 책임지고 있는 '빅터 처칠' 정육점.
원래 한국에서는 전자책을 불편하다고 무시했지만 호주로 건너오면서 아이들 책을 한국에서 가져오기만도 벅차서 내가 읽을 책은 꿈도 못 꾸다가 전자책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고 이제는 전자책이 더 편해져서 종이책을 읽으면 오히려 집중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전자책을 서핑하다가 우연히 <고기의 모든 것>이란 책을 빌려보았다. 저자 앤서니 푸하리치는 크로아티아에서 호주로 건너와 도축업을 시작한 아버지 빅터 푸하리치의 대를 이어 정육점을 하고 있다고 한다. 육식이 환경오염 유발 등의 여러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요즘, 저자는 올바른 고기 소비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있는 사람이었다.
정육점은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울라아라 쇼핑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처음 간 날, 완전 정육점에 반하고 말았다. 정육점이 이렇게 럭셔리할 수 있는 곳인가. 고기는 종류별, 가격별로 유리 진열대에 저마다 어디 출신 어느 부위인지 적힌 팻말을 꼽고 예쁘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과 같이 고기를 저며서 진열하지는 않지만 얘기하면 원하는 두께로 즉석에서 잘라 포장해 준다. 우리는 주로 kg당 80~150불 정도 하는 스테이크용 소고기를 사 오는데 어느 부위를 말하는 건지 정확히 영어를 이해하지 못해도 맛에 있어서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대개는 좀 저렴한 고기로는 양념을 해두고 비싼 고기는 사온 그날 구워 먹는다. 소고기뿐 아니라 오븐에 굽게 양념된 닭, 개별 포장된 오리고기, 돈가스처럼 튀김옷을 입고 있는 비프와 닭도 맛있고 가게 한 편에서는 닭과 돼지고기를 통구이해서 팔기도 한다.
정육점 근처에는 예쁜 샵들도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특히 카페 'Taste Providore'에는 오전 내내 빵과 커피를 사려는 사람들로 줄이 긴데 캄포스 원두로 내려주는 커피도 맛있지만 바게트가 정말 맛있다.
호주에 관광 오셔서 호주 소고기가 유명한데 마트에서 사서 구워 먹었더니 질기고 맛이 없어요, 풀만 먹어서 그런가 봐요 하는 분들 많으신데 여기까지 찾아오기 힘들다면 가까운 데비드 존스 백화점의 식품매장 정육점 고기를 이용해보시길 추천한다. 값은 마트보다 비싸지만 확실히 다르다. 우리 동네 데비드 존스 백화점의 정육점 아저씨는 타즈메니아산 소고기임을 강조하며 무슨 요리를 해도 맛있는 고기라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여기 고기는 갈비찜하면 정말 맛있다. 백화점 정육점 옆에는 그 자리에서 얇게 저며주는 프로슈토 가게도 있는데 100g 정도씩 그때그때 사서 와인이랑 먹으면 분위기 있다. 우리 집은 애들도 좋아해서 두배로 필요하다. 아, 호주에서 고기 많이 먹여 아이들 쑥쑥 키우고 한국에 돌아가면 고기반찬 없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