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릴없이 흘러가는 것들을 인지한 이후로부터
조금 이르게 눈이 떠졌으나 몸이 무겁지 않은 아침, 전날 미리 내려놓아 바로 즐길 수 있는 차가운 드립 커피, 어제와는 다르게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도로변의 꽃들, 예기치 않게 찾아온 한가로운 평일 오후,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변함없이 밝은 표정, 가장 좋아하는 문장을 읽는 순간 틈새로 비춰오는 햇빛의 따스함, 숲과 비의 냄새가 동시에 번져 오는 묵직한 산뜻함, 새로 산 파자마를 두어 번 세탁했을 시 느껴지는 특유의 복실한 포근함.
나는 어느 순간부터 스쳐 지나가는 하루의 순간들을 의식하려 애썼다. 만끽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시간들이 꽤나 잦고, 길어졌다고 생각했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고전적 문장을, 어떠한 순간에도 마음 깊숙이 저장해 놓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이 찰나는 먼 훗날 나의 삶이라는 롤에 어떤 모습의 필름으로 기록되어 있을까 끊임없이 되물으며.
모든 것이 짜증스럽고, 격양되기만 하는 시기는 덧없이 그리고 쉼 없이 밀려왔다. 그런 주기가 있다. 세상 모든 언어와, 형태와, 무게와, 감각들을 걸림 없이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관대해지는 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내가 아닌 전부를 나에게서 걷어내고 싶을 만큼 부정적 기운으로 휩싸이는 내가 있다. 그 모습들은 서로 순서를 정해놓은 듯 차례로 왔다가 차례로 밀려나곤 한다. 일생 전체에 걸쳐 일어날 기복들이 무서웠다.
피할 수 없고, 피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들쑥날쑥한 향연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기가 아니라 순간으로 살아간다면? 일 년이 아니라 한 달로, 한 달이 아니라 일주일로, 일주일이 아니라 하루로, 그리고 하루가 아닌 지금의 '초'로. 매분 매 초마다 나를 감싸는 주변에만 집중하기로.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은 채, 창 밖을 바라보며 막힘 없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 혈기와 에너지를 집약시키기로.
약 한 달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아침마다 반쯤 뜬 눈으로 무작정 운동복을 챙겨 입는다. 파자마의 쓰임새에 맞게 밤새 한없이 늘어져 있던 몸에 순식간에 긴장감을 돌게 하는 탄탄한 조임이 좋다. 누군가의 권유로 먹기 시작한 레몬맛 콤부차의 시큼한 향이 코를 기분 좋게 찌른다. 운동은 장비빨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고자 하는 집념으로 꾸준히 메고 나가는 스포츠 가방에 에어팟을 챙긴다. 비가 오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웬일로 살짝 축축하기만 한 채 유지되는 날씨가 다행스럽다. 여느 때와 같이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러닝의 시작을 알린다. 새어 나오는 플레이리스트 속 익숙한 목소리들이 반갑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어느덧 많이 길어진 머리를 휘감고 지나간다. 러닝의 끝을 알리는 콧잔등 위 식은땀이 나를 자극한다. 이 모든 장면들은 앞으로도 반복적으로 인화될 것이다.
급류하는 삶에 떠밀려가지 않기로 마음먹자, 나는 일어나 있는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깨어있을 때의 넘치도록 풍요로운 시간들을 적극 활용하게 되었다. 기분이 좋아도, 기분이 좋지 않아도, 지금의 내가 어떤 주기에 살고 있더라도 나는 그저 순간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고, 맘먹은 대로 되는 이루어지는 것 없다 느껴지는 시기여도 일어나 제일 첫 잔으로 마시는 커피의 향이 고소하고 다채롭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일 테니.
해가 커튼에 가려져 있던 시점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커튼 밖으로 움직여 나를 온전히 비추는 지금이다. 오후 5시 23분의 현재가 눈부시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