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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작업 Mar 17. 2021

ESSAY / 어쩌다 보니 초록빛

나와 당신의 색이, 세상에 생기를 부여할 수 있기를


좋아하는 색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명확히 어떤 빛깔을 좋아한다 단정 지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당연히 나조차도 그랬다. 어쩔 때는 선명한 빨강이 좋다가도, 또 어쩔 때는 유유한 파랑이, 그마저도 부담이 느껴질 때면 그저 무채색의 단조로움에 몸을 담그는 쪽을 택했다. 세상의 색채가 이토록 다양한데 어떻게 최상위를 꼽을 수 있겠어. 최근에는 바운더리에 보라색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어찌 보면 세뇌가 만들어낸 선호라고 할 수 있겠다. (알만한 사람들은 이유를 알 것이다.)



색은 때때로 선택의 기준이 되어줄 때가 있다. 계절의 전환점에서 새 옷을 장만할 때, 커피 한잔의 여유를 좀 더 기분 좋게 만들어 줄 머그컵을 고를 때, 하양과 검정이 전부였던 시대를 지나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전자기기를 선택할 때. 색은 가장 영향력 있는 기준까진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갈 법한 취향의 갈래가 되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색은 꽤나 보편화된 자기소개의 표현이기도 하다. 가수들은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앨범을 내고 싶어 하고, 브랜드는 자신들을 대표할 색채적 메시지를 찾는 데에 혈안이 되어있다. 또한 이런 특정 인물이나 상황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좀 더 뚜렷하게 해 줄 색의 힘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처음 인턴을 하던 회사에서, 온통 노란색인 사람을 보았다. 머리색도, 책상  사무용품도, 입는 옷도 온통 노랬던 사람. 심지어  회사의 시그니처 컬러도 노란색이어서  또한  사람의 노란 세상에 일조하는 듯했다. ' 사람 설마, 노란색이 좋아서  회사에 들어온  아니야?'라는 생각이  정도였다. 퇴사한 후로도 그처럼 확고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적이 없어서, 나는 노랑을 볼때면 이따금씩 그를 떠올린다. 색이 주는 인상 때문일까. 그와  한번 제대로 섞어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는 통통 튀고도 나이브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고 어설피 짐작한다.



나는 어떤 색의 사람일까. 사실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 속의 색과, '어떤 색깔의 존재가 되고 싶다'라는 문장 속의 색은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자는 말 그대로 물리적, 시각적 의미의 색을, 후자는 개성이나 정체성 따위를 뜻한다. 그러나 그 둘을 굳이 구분 짓지 않아도 된다면, 나는 내가 초록색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기 전부터 무의식은 이미 녹빛의 내음에 이끌렸을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삶에 흐드러져 있던 초록의 존재. 이러한 깨달음은 얻은 건 비교적 최근이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덧 초록을 가까이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불의 무늬, (비록 조화지만..) 화분 속 식물, 커튼의 원단, 좋아하는 니트, 셔츠의 패턴, 그리고 오늘 아무렇게나 손목에 끼우고 나온 머리끈의 색까지도. 초록은 분명하거나 혹은 모호한 형태로 내 삶에 물들어 있었다.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녹빛 이염이 뒤늦게 반가웠다. 무한한 색의 세계 속, 나의 아픈 손가락은 초록이었구나. 침침하고도 큼큼한 도시 속 7평짜리 작은 내 방만큼은 싱그러움을 물고 있길 바랬던 마음, 우연히 살게 된 동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 풀향 가득한 집 앞의 공원이 된 취향,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이면 착장 리스트에 원색의 초록 니트를 1순위로 두는 그런, 그런 사람. 그게 나였다.



초록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 후, 더욱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고 싶어 졌다. 바꾼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시기상조인 이불의 다음 행선색(行先色)을 정해 두었다. 연쇄살풀마라 가당치는 않지만 조화로나마.. 집에 풀들의 향연을 벌여 놓을 예정이다. 다가오는 봄에는 잘고 고운 연두색의 옷을 걸치고 벚꽃이 진 후의 잎사귀만 버젓이 흩날리는 공원을 산책해 보기로 했다. 그때쯤엔 자전거를 배워 따릉이를 타고 다녀보면 또 어떨까. 그러고 보니, 따릉이도 초록을 품고 있구나. 나는 그렇게 청량하면서도 나긋한, 산뜻하면서도 차분한 숲 빛의 세계에 적극적으로 파고들고자 한다.



색은 단순하지만 의미하는 바가 크다. 색으로 누군가의 심리를 유추하는가 하면, 갖다 대는 것만으로도 인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나는 사람마다 고유한 색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정말 그 색을 좋아해서, 그 색의 고유명사가 된 사람도 있겠고 혹은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가 특정 색의 의미와 일맥상통하다는 이유로 결정되기도 하는 그런 정체성 같은 것 말이다.



취향은 의무의 영역이 아니기에, 자신의 색을 찾는 것을 결코 해결되어야만 하는 과업이라고 할 순 없다. 그러나 나의 색채를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작업 아닌가. 지는 노을의 붉으스럼함을 볼 때, 꺼진 방 홀로 빛을 내는 스탠드 조명의 주황빛을 볼 때, 다가올 여름 한 번쯤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에메랄드색 바다를 떠올릴 때. 그 순간들 속 생각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누군가는 이미 자신의 색을 확립한 사람일 테다.



오늘은, 혹은 내일이라도 좋으니 주변을 둘러보자. 나를 둘러싼 세상이 어떤 색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확인해보자.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당신을 볼 때 어떠한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초록빛의 사람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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