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 단편선 : 지금의 자리는 몇 도로 이루어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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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술을 좋아하는 편이다. 술과, 술자리와, 씁쓸한 목 넘김과, 곁들이는 것들을 사랑한다.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술의 종류와 곁들이는 안주는 매번 다르다. 혼자 마실 때면 평소 보고 싶었던 영화를 안주 삼아 치킨에 맥주를 즐긴다. 혹은 난데없이 유튜브의 노래방 자막 영상을 틀어 놓고 흥얼거리기도 한다. 아무래도 넘쳐흐르는 흥을 주체하지 못할 때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기도, 벌떡 일어나 춤을 추기도 하고. 하지만 오늘은 혼술이 아닌 타인과의 술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서로의 표정에 주목하며, 떠도는 대화를 마시는 사이 측정되는 관계의 도수. 나와 당신의 언어는 몇 도로 취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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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일상을 장악하는 사람들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때는 전화나 메신저로, 눈에 보일 때는 특유의 쾌활한 웃음과 너스레로 나를 혼미하게 만드는 이들. 우리 셋은 비슷한 듯 다른 이유로 상경한 경상도 사람이다. 처음 올라왔을 때부터 뭉쳐있던 사이는 아니고, 우연한 기회로 두터운 친분이 생겼다. E는 중고등학교를 함께 나왔는데, 함께 독서실을 다니기도 하고 집에도 들락거리며 파란만장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각자 다른 대학을 가고 자연스럽게 드문드문 만나다, 둘다 서울에 있다는 걸 알게된 후 다시 급격히 친해진 케이스다. 반면 S와는 인턴 활동을 위해 처음으로 올라왔을 때 회사에서 알게 된 동료다. 내 후임 인턴으로 들어와 이것 저것 고민을 공유하다, 그 사이에 우정이 스며들게 된 것이다. 워낙 지인들끼리 안면 터주기를 좋아하는 나이기에 둘을 연결시켜 주었고, 양쪽 다 모난 데 없이 둥글고 좋은 성격이기에 금세 어울릴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서울에 와서 가장 잘한 일 중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지 않을까 싶다.
이따금씩 이런 생각을 한다. 이들이 없다면 서울의 한기를 견뎌낼 수 있을까. 나에게 서울은 모든 계절이 겨울이었다. 뾰족하고 뚜렷한 위선들에 대항하려 나도 모르게 날을 세웠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세운 날은 쉽게 녹슬지 않아, 최근까지도 이따금씩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상처받지 않으려면 먼저 상처주는 편이 나아서, 끊임없이 섀도우복싱을 했다.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악의에는 배로 의미부여했다. 과잉방어였다. 이러한 현상이 극에 달했을 때에는 모두가 나의 유별남에 지쳤을 것이라 생각했다. 쟤는 왜 저렇게까지 꼬여있지. 왜 저리 늘 화가 나있는 거야. 뭐가 문제야 쟤는, 도대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으나 무엇보다도 가깝게 느껴지는 질타들에 허덕일 때, E와 S가 내게 해준 말은 '우리 언제 볼까?'가 전부였다.
그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나를 안아주었다. E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단단한 사람이다. 물론 아주 가끔씩 여린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녀와 함께한 역사 속 대부분은 그러했다. 외압에 쉽게 변형되지 않고, 부정적인 생각은 누구보다 빠르게 떨쳐내며, 우울을 깨고 나오는 능력이 탁월하다. 때문에, E 앞에만 가져가면 내 모든 고민들이 쉬워진다. 이걸 왜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지, 하며 기분좋은 헛웃음이 나온다. 어떤 방법으로 나를 무력화시켰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와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남는 것은 만개한 웃음꽃 뿐이다. 맥락 없이 '너희 집 갈래'라는 말을 내뱉어도, 항상 밝은 조명을 켜놓고 기다려 준다. 사람을 쉽게 싫어하지 않고, 우정에 주저함이 없으며,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아 다행이라는 E. E 또한 누군가의 '가장 좋은 주변 사람'이라는 걸 알까.
S는 결이 사뭇 다르다. 나만큼이나 자주 휩쓸리고, 동요하는 사람. S와는 정서적인 부분의 공통점이 참 많다고 느꼈다. 소심함과 대범함의 갭이 커서 간혹 서로의 눈치를 보는가 하면, 때로는 주저함없이 속 이야기를 꺼내어 놓기도 한다. 그녀가 "너도 그때 이랬어?" 라고 물어올 때, 대부분은 나도 그때 그랬었다. 비슷한 포인트에서 상처 받고, 상상하고, 상황을 확대해 들여다보는 우리. 그래서인지 그녀에게 고민을 말할 때면 정돈된 해결책이나 조언보단, 동질적이고 편안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늘 나보다 먼저 취하기 때문에, 늘 한발짝 빠르게 솔직해지는 사람. 취기에 휩쓸려 속시원한 욕을 시작하기도, 혹은 나보다 더 이입하여 울어주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오늘도 내가 S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고맙다'는 표현이 최상일 것 같다.
E와 S는 술을 잘 마시는 타입은 아니다. 그녀들과의 주종은 맥주 아니면 와인. 그도 두세잔이면 넉다운되는, 어찌보면 가성비 넘치는 주량을 가졌다. 그러면서도, 같이 술 한잔 하자는 말을 언제나 기다리고 있단다. 술 마시자는 말을 들으면 심장이 뛴다는 E, 제발 자신에게 마구 들이대달라는 S. 한없이 떨어지는 자존감과 기력 속에서도 그 사랑스러운 반응들에 용기를 얻어 메시지를 보낸다. 오늘 뭐해, 주말에 뭐해, 다음주에는 뭐해. 혹여나 당장 만나지 못하더라도 만나자는 말 전후로 쌓아지는 '보고싶다', '꼭 보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는 말이 텅 빈 문장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어깨이고, 집이며, 고향이니까. 부산에 내려갔다 올라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우울하지 않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이유에 너희가 있다. 힘든 이번주를 보내더라도 다음주에 만나게 될 너희와의 술자리가 있고, 속사포처럼 내뱉고 끊더라도 그 열기의 여운이 오래 남는 너희와의 전화가 있고, 가끔은 헤어지기 싫어 좁은 집에서 불편한 잠을 자더라도 기어코 한 공간으로 모여드는 너희와의 인력이 있다. 서로가 없던 시절에도 잘만 지내던 우리는, 서로가 없는 서울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도, 너희와 함께 가면 좋겠다 싶은 해방촌의 작은 술집이 떠오른다.
그러니 조만간 만나자. 너희는 기분좋게 취하고, 나는 온전한 시원함을 느끼는 5도짜리 맥주 한잔 앞에서 서로를 달래고, 헐뜯고, 웃고, 위로하자. 나는 매일 너희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