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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작업 Jun 15. 2022

ESSAY / 바다에서 강으로

서울살이 5년 차 부산러의 험난하고도 팽팽한 성장기



억울하다.

따뜻한 품 놔두고.



최근까지도 많게는 2주에 한번, 뜸할 때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읊조리는 이 말. 억울하다. 넓은 바다와 낯익은 얼굴과 따뜻한 품이 있는 고향을 두고, 나는 왜 서울에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가. 이 푸념은 갓 상경했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내 연약한 정신력을 시험한다. 나도 누군가 반겨주는 집으로 퇴근하고 싶어. 주말에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대화할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어. 혼자서 먹는 밥은 맛도, 멋도 느껴지지 않아. 아무래도 내가 가진 지독한 외향성은 아득한 외로움에서 출발한 듯하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유례없는 더위'로 각인되어 있는 2018년 여름, 나는 서울에 왔다. 그 시절에는 결핍을 느낄 새도 없었다. 엄마의 잔소리는 상사의 쓴소리로, 내 친구의 빈자리는 새로운 만남으로, 내가 속한 공간의 단위는 방이 아닌 집으로, 탁 트여 사랑했던 바다는 물 건너에도 건물이 있는 한강으로... 무언가 낯선 것들이 쉴 새 없이 내 일상으로 침범해 오는 바람에, 나는 어설프게 꽉 채워진 삶을 무던히 견디고 적응해나가야만 했다.










당장 낼

월세도 없는데요.



비로소 한 숨 돌릴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을 때는 여태껏 엉성하게 채워진 것들과 맞서 싸울 차례였다. 상사의 폭력적 언행(반드시 물리적 힘을 가해야만 폭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믿었던 사람들의 이면과 지면 아래 가라앉은, 무엇하나 마음 놓고 들일 수 없는 좁아터진 방. 밖에서 사 먹지 말고 직접 해 먹는 게 좋다며 시중에 떠도는 식단이며, 요리 비법들을 따라 해 볼 공간도, 여유도 없었다. 잘못 채워진 하루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무기력증과 한숨뿐이었다. 아직도 불 꺼진 반지하에서 천장을 보며 몇 시간가량을 울어댔던 그날의 하루가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놓을 수 없어, 표준어와 사투리의 2개 국어를 구사하며 버텼다. (정확하게는 서울이 아니라, 서울에서의 가능성을 놓을 수 없었다) 힘들면 쉬어가라는 기만과도 같은 말에는 적당히 웃으며 '당장 낼 월세도 없는데 어떻게 쉬냐'라고 반문했고, 혹여나 분위기가 어색해질 참이면 '그건 둘째 치고, 아직 이루고 싶은 게 많아서 못 멈춰요'라 덧붙였다. 외지인에게 서울은 잠깐의 일시정지조차 허용하는 세계가 아니었고, 그저 수용하고 맞추어가야 하는 인내의 땅이었다. 사투리를 잃어가는 속도로 증명된 적응에 대한 강박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삶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하고, 기틀조차 마련되지 못했던 이곳 생활의 윤곽을 잡아가며 몸과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이 악물고 어찌어찌 살아가다 보니 성품 좋은 팀원들과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는 친구를 곁에 두게 되었다. 꼬박꼬박 내는 돈은 월세가 아닌 전세 이자로 바뀌었다. 의심했던 직업에서 확신하는 직업으로 옮겨왔고, 운동과 독서를 하는 여유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모두 내 노력의 결과물이다. 나는 지금을 얻기 위해 울었고, 싸웠고, 감정의 바닥을 보았으며, 그 바닥을 기며 노력했다. 최근 겸양적이고 자기 연민적인 글을 자주 썼다 보니 지금의 어투가 스스로도 낯설기는 하다만, 어쩌겠는가. 나는 진짜 노력했는데. 어떻게 얻은 것들인데.










언제까지

서울에 있을 거야?




서울에 와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다. 이상하게도 저 문장을 들을 때면 서글퍼졌다. 저 한마디로, 나는 영영 서울에 소속된 사람이 될 수 없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순수혈통 '서울인'에게는 저런 질문을 하지 않으니까. 물론 '서울인' 신분을 얻지 못해 유감스럽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나는 언제까지도 분류된 상태로 머물겠구나.. 하는 그런 묘한 감정이었을 뿐. 게다가 실제로 나는 은퇴하면 부산으로 내려갈 계획이기에, 정해 놓은 답을 녹음기처럼 리플레이하면 되는 일이었다. 언젠가는 떠나게 될 도시에서 내 인생을 휘몰아치는 희로애락을 절절히 느끼고 있는 내 모습이 대견했다.




잠깐 머물다 갈 이 도시. 서울이란 나에게 뭘까. 한때는 매일 아침 경험했던 지옥철의 따끔한 맛, 어딜 가나 내 자리를 기다려야 하는 기다림의 노고, 평생을 먹지 못하고 일해야만 온전히 내 자산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 꽉 막힌 도로, 더욱 꽉 막힌 하늘. 일주일 중 진심으로 행복한 시간은 10시간 남짓. 10시간도 채 안되려나? 내가 이 도시에게 원하는 것이 뭘까, 아니면 이 도시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뭘까. 인생에서 가장 큰 숙제와도 같은 질문을 마구 던져대는 요즘이다. 동시에, 이 질문의 해답을 얻으려면 절대로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강하게 든다. 나를 휘두를 수 있는 요소들이 속속히 박혀 있는 서울에서 나는 오늘도 숨 쉬고 있다. 부디, 부산을 두고 온 억울함보다 서울의 삶이어도 괜찮다는 안도감이 더 커질 수 있길. 그 짜릿한 역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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