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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작업 Jan 12. 2023

ESSAY / 집중해 주세요

사랑의 지속시간은 집중력에 기인한다


집중력?
저는 '찍먹파'인데요



브런치를 시작하고, 처음 쓴 글의 소재는 '집중력'이었다. 집중력은 내게 늘 하중이 한껏 가해진 단어였다. 나는 무언가에 쉽게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순간, 그 대상에게만 최선을 다하기엔 걱정과 상념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 불필요한 '만약에'를 범벅해 대는 사람. 내가 지금 이거 하는 동안 다른 걸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지금 여기 있는 동안 다른 데선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동안 받지 못한 연락은 없나? 끝나고 뭐 하지? 심지어 한 군데만 정성을 쏟아붓지 못할 거면 멀티라도 잘 되던가, 그건 또 아니었다. 쓰고 나니 정말 답이 없네. 알고 있다. 집중력 결여는 내가 가진 가장 큰 단점이라는 걸.




그나마 다행인 건, 단점을 오로지 단점으로만 남기기엔 내가 또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은 강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내 단점을 활용해 볼 순 없을까? 하나에 집중하지 못한 채 쩔쩔매는 시간들을 다른 방향으로 틀어서 흘려보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 채로 작년이 하반기에 들어설 즈음, 나의 산만함이 드디어 어설프게나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평소엔 그렇게 관심 없던 전시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매일 마시는 커피에 대한 관심과 고찰이 늘었고, 난데없이 재즈 음악이 귀에 꽂혔으며, 독립 영화라는 판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정말로 별안간 일어난 일이었다. 한 분야에만 온전히 '숨 참고 러브-다이브' 하지 못한 것도 참 나다웠다. 어차피 멀티는 안되니까, 뭐 하나 내 걸로 만들지 못한다 해도 수심 깊은 물에 발이라도 담가봤다는 용기를 위안 삼기로 했다. 내 취미 생활은 도장(道場) 깨기보단 도장(圖章) 찍기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겠다.




이번 글은, 그렇게 지내 온 반년 간의 찍먹식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여기엔, 그간 관찰한 경이로운 양과 질의 집중력이 담겨 있다.
















세상은 참으로 진부하게도 매 순간 성실하게 변화하고 있고, 그에 맞춰 사람을 만나는 방식 또한 끊임없이 발전한다. (발전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 방식 중 하나가 소규모 오프라인 커뮤니티다. 등산 동호회, 러닝 크루, 독서 모임 등 많기도 많다. 주기적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줘야 하는 ENFP에겐 딱이었다. 플랫폼도 다양해서 그중 자신의 목적과 형태가 비슷한 모임에 참여하면 된다. 나는 그중에서도 <넷플연가>라는 커뮤니티에 관심이 있었고, 그곳에서 재즈 청음회를 발견한 순간 그 관심은 행동으로 옮겨졌다. 나 같은 재즈 문외한이 그 세계를 잠깐이나마 훔쳐보기에 좋은 틈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하루키의 소설 속 재즈라니.. 정말 홀린 듯이 이끌렸다.




그날의 호스트는 내가 언젠가 가보겠다며 위시리스트에 담아둔 재즈바인 성수의 '포지티브 제로 라운지'의 음악 감독이었다. 내가 두 번째로 일찍 도착한 사람이었는데, 자리에 앉은 순간부터 그 자리를 뜨기까지 참으로 일관되게 재즈에 몰입한 그의 모습이 놀라웠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그 방법을 누군가에게 설득력 있게 전수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재즈 음악을 디깅 하는 법을 차근차근 배울 때마다 당장에라도 실천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강의(?) 동안 호스트님의 반짝이던 눈과 살짝은 격양된 듯 했던 목소리가 아직 생생하다.








나는 그 덕분에 재즈 음악의 악보가 생각 이상으로 단조롭다는 걸, 그토록 풍부한 선율이 이토록 단조로운 반복에서 매번 다르게 창조된다는 걸 알았다. 악보를 보여줄 때마다 사람들은 '정말 이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거예요?' 하며 의심했다. 정말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뒤이은 감탄 연발. 가장 단순한 코드만 심어 놓고, 나머지 여백은 연주자의 내공과 표현법으로 메운다는 말이 특히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매번 연주할 때마다 곡의 느낌이 달라진다고. 이토록 대단한 사실 앞에서 나는 벌어진 입의 크기만큼 감명받았다.




2시간가량, 재즈의 세계에 들어갔다 나온 나는 다른 무엇보다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부러웠다. 내 예상보다 훨씬 본격적이었던 그들의 태도를 기억한다. 닮고 싶은 집중력이었다. 물론 본인의 직업이기에 더 그렇겠지만, 호스트님의 재즈에 대한 가치관과 지식이 질투 났다. 뒤따르는 참여자들의 몰입 또한. 아, 이 정도는 되어야 재즈 음악을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뭐, 무언가에 빠지는데 깊이가 중요하겠냐마는, 나는 빠지는 것 이상의 '사랑'이 신기하고도 부러웠다. 돌아오는 길에 추천받은 곡을 들으며, 참여하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내가 서울에서 가장 사랑하는 동네는 누누이 말하지만 서촌이다. 사람 없고(평일 한정), 한적하고, 건물이 높지 않은 몇 안 되는 장소. 특히 어딜 가나 인왕산이 보이는 점은 완벽하다. 그런 서촌에서도 언젠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는데, 바로 '노멀 사이클 코페'라는 커피 전문점이다. 카페라는 심플한 단어를 두고 커피 전문점이라 늘려 쓴 까닭은 내가 이곳에서 느꼈던 인상과 관계가 있다. 여긴 정말, 오로지 커피로만 온몸과 마음을 적실 수 있는 공간이다.




커피를 좋아한다는 말에 친구의 추천을 받은 곳. 인스타그램 게시글을 두 세장 보자마자 뜸 들이지 않고 사로잡혔던 곳.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는 애매함에 방문을 자꾸만 유보했던 곳. 그러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근처에 볼일이 있어 아주 잠깐 동안만 서촌에 체류할 수 있게 된 날, 나는 드디어 망설임 없이 노멀 사이클 코페로 향했다.




전반적으로 크게 눈에 띄는 외관이 아니었기에, 입구를 찾는 데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겨우 간판 모양 같은 스티커를 발견하고는 한 층 한 층 계단을 오르면서, 정말 영업하는 건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러나 입성한 이후로부턴 무용한 걱정들이 정말로 무용해졌고,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해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원산지 표기 스티커. 사진엔 적어 보이지만 공간 전체에 도배되듯 붙여져 있었다.




사장님은 내가 근래 본 사람 중 가장 멋진 사람이었다. 멋있다는 표현에 나만의 정의를 내린 이후로, 멋있다는 말을 잘 쓰지 않기로 다짐했던 나다. 이 단어는 꼭꼭 품에 안고 아껴뒀다가, 정말로 느낌이 왔을 때만 사용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찬사로만 활용해야지. 그래, 바로 이럴 때.




이 사람이 설명하는 커피는 내게 더 이상 마실 것의 한 종류가 아니었다. 잠을 깨기 위해 사무실에서 어거지로 흡입하는 '아아'가 아니었고, 감성 사진과 근황 공개를 위해 커피보단 공간을 고민한 카페에서 마시는 액체류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애정, 철학, 고집을 정성 들여 볶아 그만의 방식과 속도로 내려주는 한 잔을 어찌 감사히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Americano', 'Latte'로 퉁쳐진 메뉴판과는 다르게, 혹시나 이 커피에 대한 해석을 한 줄이라도 놓칠까 꾹꾹 손으로 써 내려간 소개들도 사랑스러웠다. 한쪽 벽면에는 커피 원산지 표기 종이들이 배열 없이 부착되어 있었는데, 지금까지 내린 원두들의 종류라고 하셨다. 아마 서울에서 가장 커피를 사랑하는 공간이 이곳이지 않을까 싶었다.




테이크아웃은 안되지만, 잠깐 앉아 커피를 느낄 시간은 제공한다는 말에 나는 천천히 갓 내린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사장님은 끊임없이 설명하셨다. 커피는 가장 뜨거울 때 꼭 뚜껑을 열고 마셔야 한다. 그때의 향을 기억해라. 식었을 때의 맛은 또 다른데, 그 순간이 하이라이트다.. 한마디 한마디 놓치지 않으려 오랜만에 정신을 집중했다. 물론, 이 사장님의 집중력을 따라갈 순 없었지만. 이곳을 방문한 건 작년 12월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가게를 나온 시점부터, 다 마신 커피잔을 손에서 놓을 때까지 노멀 사이클 코페의 공기를 잊을 수 없었다.












사랑의 지속시간은 집중력에 기인한다.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세상을 찾을 것이다.







내 산만함을 이용해 들렀던 경험들 속에서 나는 그에 반대되는 집중력의 가치를 더욱 절감했다. 사람이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 그 반짝임을 온몸으로 목격하고 마음속에 아로새겼다. 나도 그들처럼 나만의 영역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리고, 사랑하고 싶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이 땅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와 동일한 양만큼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찾은 사랑의 의미는 '얼마만큼 집중하느냐'다. 발만 담갔다 빼는 것과 흠뻑 잠수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대상을 더 사랑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진리를 위의 두 경험으로부터 깨우쳤다. 재즈에 집중하는 어떤 이, 커피에 집중하는 어떤 이. 나도 감히, 그 사랑스러운 반열에 오르겠노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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