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밀양>, 이창동 감독
이창동의 영화는 영화가 재생되지 않을 때 가장 강렬하다. 영화가 끝나고, 그의 영화 속 세계가 사실은 내가 체험하고 있는 현실 세계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 때 나는 가장 슬퍼진다.
완전한 용서와 이해는 신의 일이다. 인간은 신을 닮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신은 인격체가 아니라 햇빛과 같은 비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버지처럼 살 수는 있지만 돌이나 물처럼 살 수는 없다. 그것은 그저 비유일 뿐이다. 신애(전도연)가 신처럼 용서를 하고자 길을 나설 때, 이 영화의 진정한 비극이 시작된다.
신애는 신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그것은 신의 형태가 아닌 인간의 형태이다. 나만의 사랑, 나만 받을 수 있는 사랑, 사랑을 독점하고 싶은 마음. 양장점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신과의 연애 관계를 설파하는 신애의 모습은 꽤 직설적이다. 그녀는 신이 주는, 인간의 사랑을 받고 싶다.
그래서 그 사랑이 배신당했을때, 신이 남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신애는 용서도 사랑도 포기한 채 연인에게 복수하듯 죄를 찾아 나선다.
그 실연이 신애를 파괴할 때, 가장 인간적인 형태인 종찬(송강호)의 사랑은 점점 신의 형태를 띄어 간다. 신애는 영화 초반 허공을 보며 여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한다. 종찬의 존재도 그녀에겐 허공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종찬의 온기는 계속 신애 주변을 맴돈다. 영화 내내, 장면이 시작할 때 카메라가 비춰주는 허공에는 아무 것도 없지만 숨겨진 햇빛이 있다. 인간이 신을 닮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랑, 간섭하지 않는 무제한의 사랑 뿐일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의 일은 인간의 몫이다. 신애는 끝내 정아(송미림)에게 자신의 머리를 맡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깊고 넓은 틈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틈 건너에서, 햇빛 아래 혼자 머리를 자르는 신애 옆에서 종찬은 조용히 거울을 들어준다. 그녀의 죄, 고통과 집착은 머리카락이 되어 하수구로 쓸려간다. 햇빛이 은밀하게 그 하수구를 비춘다.
신은 그저 은밀하게, 따뜻하게.
영화 개봉 당시에 약간의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나는 <밀양>이 강렬한 종교 영화라고 생각한다. 유괴범 박도섭(조영진)이 회개했으니 천국 가는거냐라든지, 영화 속 기독교인들의 행적이 불쾌하다던지 그런 단계의 논의는 이 영화가 다루는 깊이와 영 동떨어져 있다. <밀양>은 그것보다 훨씬 아득한 깊이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한 막막한 질문을 던진다. 종교는 인간의 것이다. 신이 종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종교를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이토록 강렬한 종교영화는 또한 강렬한 인간영화이기도 하다.